나는 집안 살림... 뭐 별거 있겠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살림이야말로 절대 별거가 아니었다.
전업주부로 살기 전에도 나는 직장 일을 하면서 집안일을 많이 한 편이었다. 전날 회식이 있어서 술을 먹고 들어와도 다음 날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퇴근 후에도 육아는 물론 여러 가지 집안일을 거들었다. 그래서 솔직히 주부 9단은 아니어도 집안 살림은 어느 정도 잘할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엔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늘 하듯이 집안일을 했는데 그리 크게 어려움은 없었고 오히려 시간이 남을 정도로 여유로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집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내 눈에 하나둘씩 들어오자 일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집안일이 상세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이지 늘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산재해 있는 곳이 집안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씻고 나가고,
다시 퇴근 후 돌아와서 씻고 밥 먹고 가족과 함께하고
그리고 잠자고.
이런 사이클 속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집안일들 있다. 같은 거실 청소라도 바쁘면 사용하는 것들만 청소하고 나머지는 거들떠보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집안일을 하게 되면 모든 것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전보다 청소를 해도 몇 곱절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된다. 게다가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해서 절대로 표가 나지 않는 게 집안일이다. 그래서 전처럼 그렇게 살려고 시도를 해 보았지만 하루 종일 집에 있는 탓에 눈에 들어오는 일거리를 거부할 수가 없다. 이유인즉, 일단 집안일을 하는 역할을 맡았으면 충실해야 아내와 딸로부터 꾸중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전업주부로 전환하면서 집안일이 서툴다는 소리를 더 많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 주부였던 아내의 입맛에 맞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자기 자신이 가정주부로 살았기 때문에 집안일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 보니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것을 먼저 고려하고 해결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나의 실수나 부족함을 쉽게 알아차린다. 결국 모든 질타를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지경에 놓이는 데 고스란히 나에게는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요즘은 아내가 무척 바빠서 많이 봐주는 듯싶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다가도 갑작스럽게 뒤돌아보면 청소해야 할 곳이 넘쳐 난다.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다.
어디까지 정리를 해야 할지 가늠을 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오늘은 이렇게 배치해 두면 내일이면 엄청 지저분해지고. 그래서 내일 달리 배치하면 또 맘에 들지 않고. 아마도 마음을 이곳에 두니 생기는 오만가지 잡념과 고민일 것이다. 그래서 최근 타협이라는 것을 시도하여 조금은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반드시 치우고 나머지는 금요일이나 주말에 처리하는 걸로 미루었다. 그래도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 계속 공부 중에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집안일을 하는 주부들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싶다. 아마도 익숙해질 때까지 늘 최선을 다 했을 것이다.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기 위해서 회사나 조직에서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일을 하듯이 집안일도 마찬가지라 본다. 차이가 있다면 무보수라는 점이고 마치 주부면 가정을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인데 그 차이점이 참으로 억울하고 모순처럼 여겨진다. 어떤 사람들은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무보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서 무보수라 말한 이유는 월급 명세서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에는 주부들의 수다를 이해 못했는데, 요즘은 조금 이해를 한다.
유독 어머님들, 주부들이 밖에 나가면 자신들의 집안일에 대해 상당히 중요하게 어필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남편에게 집안일에 대해서 끊임없이 쏟아 낸다. 개인적으로 이전까지는 대개 남성들이 여자가 집안에 있으면서 놀고 있다고 표현을 많이 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자신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집안일을 저렇게 힘을 주어 이야기 하나 싶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 보니, 집안일도 회사 일과 그 정도가 유사하다면 충분히 대화를 통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고 문제가 발생해서 처리하였을 때 사후 토론이 필요하다고 본다. 가정사는 주부만의 몫이 아닌 가족이 모두 함께 동참해야 하는 중차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내가 지금 전업주부로 집에서 일을 하고 있다면 아내의 가치를 더욱더 재조명하여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다. 사실 나 또한 사회생활을 해 봐서 아는데 정작 8시간 업무시간 중에 노는 시간이 얼마나 많던가. 물론 하는 일의 성격에 따라 노동의 양과 질은 틀리지만 계속해서 집안일에 매 순간 신경을 쓰는 사람보다는 나을 거라 본다. 그리고 밖에서 일하고 온 사람은 집안일을 하는 아내 덕에 적어도 편히라도 쉴 수 있다. 어쩌면 가정의 평화는 서로 간의 일에 대해 존중하는 데서 시작하지 않을까?
요즘 들어 옛 현인들이 말씀하신 “수신제가 치국평천하”가 정확하고 명확하게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