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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삼 Oct 20. 2020

아이들의 집단행동

아이들도 어른처럼 집단을 구성하고, 그 속에서 책임을 회피한다.

동네에 한 아이가 울고 있었다.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지만 작은 어깨가 흔들릴 정도로 서운함이 묻어 나 보였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며 자주 얼굴을 봐 왔던 아이라서 그냥 넘길 수가 없어서 사정을 물어보았다.      

“얘, 왜 울어? 어디 아파? ” 

“아니요. 안 아파요.” 

“누구 하고 싸웠니? 아니면 혼났니? ” 

“싸우지 않았어요.” 

“그럼 왜 울지?” 

“언니들이 저보고 뭐라 해요.”

“언니들이? 맞았어?”

“맞지는 않았어요. 그냥 저보고 나쁜 아이래요.” 

“왜? 우리 이쁜 아가씨가 왜 나쁜 아이지?” 한참을 훌쩍이더니 질문에 답하였다. 

“예전에 어떤 친구를 무시했다면서 왜 무시했냐고 저보고 무섭게 물어봤어요”.      


사정을 잠시 들어보니, 몇 달 전에 동네 아이 중에 한 아이가 귀찮게 해서 같이 놀지 않았고 말을 걸어도 그냥 무시하고 못들은 척하고 집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그때 그 일로 인해 무시를 당했다는 아이는 줄곧 동네 친구들을 만나면 자주 자신을 무시했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다니던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은 그것이 문제 되어 무시당했다던 아이가 친하게 지내는 언니들 몇 명이서 한 아이를 둘러싸고 약간의 강압적인 태도로 다그쳤던 모양이다.      


아마도 둘러싸여서 다그치는 모습에 주눅이 들었을 것이고, 오래전 일이지만 그 일이 회자되어 자신이 나쁜 아이가 되어 있는 모습에 무척이나 서운하고 억울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한참을 이야기를 듣고 그저 해 줄 수 있는 말이 한 마디였다.      

“괜찮아, 언젠가 다른 친구들도 네 마음을 알아줄 때가 있을 거야. 그리고 그것 때문에 울면 너보고 나쁜 아이라고 말한 아이들이 네가 우는 모습을 보고 자기들이 옳은 일을 했다고 믿게 돼.”      

아이는 내 말을 반은 이해하고 반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그냥 별일 아니니 어서 집에 들어가라고 타이르고 나는 내 볼일을 보러 움직였다.      







사실 이런 형태의 집단적 괴롭힘이 비일비재한 것이 요즘 세상이다. 아니,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일은 흔하고 흔한 일이었다. 물론 동네 아이를 무시한 그 여자 아이가 문제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이가 자신의 행동이 나쁘다는 것은 알았어도 자신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본다. 때론 잘못을 했더라도 주위에서 바로 잡아주지 않아서 별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며 지냈을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집단을 이루어서 다그치는 집단행동이 정말 나쁜 행동이라고 생각을 한다. 






어른들도 이런 행동을 많이 하는데, 집단행동의 이점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집단행동은 배가의 힘을 발현시킨다. 

목소리도 혼자보다는 집단을 이뤄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행동도 한 명보다 여럿이서 모여 행동하는 것이 상대에게 위협적이고, 강한 메시지를 전달케 한다.      


그리고 집단행동은 책임을 나눠가질 수 있다는 이유로 좀 더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혼자서 대할 경우,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이 져야 하지만, 집단행동의 경우, 책임문제를 거론할 때 누군가의 뒤에 숨을 수 있다는 여지가 있다. 그래서 평상시에 목소리를 내지 않다가 집단을 형성할 때면 하나같이 목소리를 드높이는 경우가 그러하다. 

만일 자신들의 목표가 달성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내 덕분에 목표를 달성했다고 외쳐댈 수 있고, 반대로 목표가 무산되면, 남에게 책임을 전가 또는 회피할 수도 있으며, 동시에 완전히 전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그런 생각을 말한다.     


다음으로 집단행동은 집단행동에서 얻어지는 결과에 따라 쾌감의 정도를 공유하기 때문에 매우 중독성이 강하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성과를 남들이 알아주기 바라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렇게 큰일이 아니고서는 가족이나 주위 지인 정도로만 알아주기 때문에 더 큰 만족감을 누리는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집단을 형성해서 집단이 바라는 목표를 달성했을 경우, 집단을 이루는 개개인 서로가 인정하기 때문에 만족이라는 쾌감의 정도가 매우 높다는 데 있다. 특히 만족도가 높은 이유 중에 의외의 원인이 있는데, 집단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집단이 이룬 성과를 같이 누리기 때문이다. 사실 집단을 이뤄서 행동을 할 때 주로 주동자는 정해져 있다. 대부분은 흔히 말하는 병풍 역할만 할 뿐인데 병풍 덕에 주동자는 힘을 내어 목소리를 높이고, 만일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병풍을 섰던 사람들은 주동자가 아니니 크게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 집단행동이 가지는 내제적인 효과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집단행동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문제를 손쉽게 공론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공론화되었다는 것은 집단을 이루는 모든 사람이 어떤 문제에 대해서 진실이라 말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지니는데, 집단행동을 겪는 상대는 자신이 옳아서 크게 목소리를 내어도 진실이 거짓으로 변하기 다반사다. 그저 억울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집단을 이뤄서 뭔가를 해결하는 것은 구별해서 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 대인관계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집단을 이루는 것은 집단폭행에 준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집단의 위압감을 통해서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매우 1차원적인 행동이라는 점이다.      


눈물을 흘리던 여자 아이의 일이 남일 같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글을 한참을 써 내려갔는데, 솔직히 이 문제는 늘 고민하던 바이다. 남성 가정주부로 살면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남자이기 때문에 동네 아주머니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어머니들과 쉽게 친해질 수 없는 나는 늘 대화의 중심에 서 있던 적이 몇 차례 있었다. 

집단 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집단에 속한 사람들끼리 공동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어머니 모임에 속하지 않았기에 가십거리 중 하나였다. 그러나 초기에는 그런 점이 불만이었지만, 내 행동이 일관성이 있어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일관성 있는 행동과 객관적 대화, 그리고 떳떳한 마음가짐과 자세를 지니라고 말할 수도 이해시킬 수도 없지만, 그저 그런 시련도 지날 것이기에 그저 잘 견디어서 스스로가 잘 이겨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집단행동으로 한 사람을 다그치는 행동은 엄연히 집단폭행이며, 비겁한 행동이라고 말을 해 두고 싶다. 어린아이들이 지금부터 자신의 부모들이 하는 모습을 배워서 집단행동을 일삼는다면 결국엔 성인이 되어서도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책임을 나눌 수 있고, 집단행동에서 가져오는 만족에 대한 쾌락이 의외로 강하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도 집단행동의 효용성을 잘 알기 때문에 그것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고등교육을 받았다면, 어른이라면 그리고 사리분별이 있다면 적어도 집단행동을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알아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이라 생각한다. 특히 어른이라면 행동함에 있어서 자기 자식들이 배운다는 생각으로 좀 더 신중하게 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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