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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삼 Aug 20. 2019

여름 밥상

한 여름 아침밥과 저녁밥 준비가 그리 쉽지 않다. 

점심밥은 왜 빠졌을까?  사실 점심은 차릴 것도 없고 나 혼자 있으니 그냥 대충 식사를 한다. 

더운 여름에 식사를 준비한다고 푸념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주부라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글을 적어 본다. 

아침상 준비는 새벽 5시 30분, 늦으면 6시에 준비를 한다. 

아내는 더운 여름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 나를 위해서 되도록이면 간단한 것들을 만들어 달라 말한다. 

그 마음은 고맙지만 아침 식사 준비는 새벽바람이 있어서 그나마 덜 덥게 음식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저녁상이다. 

가끔씩 딸아이는 무지 더운 날에 더운 음식을 주문한다. 

스파게티가 먹고 싶어요. 
스테이크가 먹고 싶어요.
계란찜 먹고 싶어요. 

그리고 차가운 음식을 바라는 경우도 있다. 

냉국수 먹고 싶어요. 
냉 스파게티 먹고 싶어요.
달걀말이 먹고 싶어요. 


그러나 음식이 차건 덥건 결과적으로 불로 익혀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먹는 사람이야 그 음식을 먹는 데 차갑고 더운 것을 즐기며 먹지만 더운 여름에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늘 덥다. 

그렇게 저녁엔 딸아이가 원하는 음식을 해주고 나는 아침에 먹고 남은 밥에 시원한 냉수를 말아서 매운 고추와 된장으로 저녁을 해결한다. 그러면 정말 시원하다. 그러고 보니 낮에도 그렇게 먹었다.

사실 여름 밥상에 시원한 국과 신선한 야채로 식탁을 장식하고 싶은데 모든 과정에 열이 포함되다 보니 더운 날씨에 뭘 하기가 상당히 망설여진다. 게다가 음식이 잘 변해 버려서 늘 고민이다. 특히 더운 여름엔 출근하는 아내가 아침을 먹고 남은 음식은 모두 나의 차지가 되어버린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이지만 더운 대만이나 동남아의 경우 아침 식사를 밖에서 해결하던데 그 이유를 알만하다. 

그래도 집에서 출근하는 사람을 위해서 뭐라도 먹여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솔직히 이런 더운 여름,,, 
전기 누진세라도 없다면 
참으로 좋을 텐데...에어컨이라도 맘 놓고 틀 수 있게


요즘 들어 옛날 밥상이 자주 떠오른다. 

아버지가 출근하시기 전에 한 끼라도 드시게 하려고 어머니는 아침 일찍 부엌에 나가서 식사를 준비하셨다. 

아침 식사에 나온 음식을 보면 나물과 김치류, 젓갈, 그리고 시원한 김국 또는 오이 미역냉국, 가끔은 얼음 동동 시원한 콩나물국, 밥 그리고 얼음 동동 시원한 물, 더위를 시킬 수 있는 시원한 것들로 준비하셨다. 

그리고 더워서 입맛이 없을 것을 생각해 한 술이라도 뜰 수 있게 최대한 간결한 음식들이 나왔다. 물에 밥을 훌훌 말아서 먹고 가면 그래도 든든하니까.  때는 1978년, 7살 때의 기억이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께서는 시원한 콩나물을 만들 때면 유독 아침 일찍 일어나셨던 것 같다.

나도 가정주부 생활을 하면서 만들어 봤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야 얼음을 넣거나 냉동실에서 국을 강제로 빨리 식히지만 어머니는 콩나물국을 끓여서 넓은 양푼에 넣어 식히는 시간이 필요했었을 것이다. 나도 혹시나 해서 넓은 양푼에 식혀 봤는데, 물론 양의 차이는 있겠지만, 미지근해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약 40분에서 50분 정도 소요되었다. 결국, 어머니는 식히는 시간까지 고려해서 시원한 콩나물을 만들기 위해서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셨던 것이다. 

여름 식단은 다른 계절보다 간소하지만 그 간소함 속에서도 늘 정성이 함께하는 거라 본다. 


한 번은 저녁을 내가 먹고 싶은 대로 준비했었다.

나물, 
시원한 콩나물국,
매운 고추와 쌈거리, 
오이냉국, 
따끈한 된장국, 
그리고 밥과 시원한 얼음 동동 시원한 물 


나름 그럴싸하게 준비했었다. 그러나 맛은 어머니 손맛을 따르기엔 한참 먼 듯하다. 

뭔가 부족했다.

뭐가 부족했을까?

먹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궁금해졌다. 


그래서 혹시나 다른 게 없을까 싶어서 냉장고 문을 열고 한참 뒤져보았다. 냉장고는 문을 한참 열어 두었다고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소리에 신경 쓰지 않고 안쪽을 계속 살펴보니 오래전에 어머니께서 주셨던 멸치젓갈 통이 보였다. 통을 열어 보니 겉표면은 짙게 갈변되었지만, 살짝 뒤적거려보니 여전히 먹을만한 상태였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매운 고추가 심어져 있었다. 색은 변했지만 맛을 보니 여전히 감칠맛이 뛰어나다. 

멸치젓갈을 꺼내어 상추쌈에 밥을 얹고 젓갈에 심어져 있던 청양고추를 넣고 쌈을 싸서 한 입 먹었다. 

콤콤한 젓갈 향기가 어우러진 맛과 상추의 아삭 거림이 최고였다.

그리고 매운맛에 얼얼한 혀를 달래기 위해서 시원한 콩나물국을 들이켜니 제격이다. 

백 프로 어머니 손 맛을 느낄 수는 없지만, 얼추 비슷한 여름 밥상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여름 밥상은 이렇게 시원하고 가벼울수록 몸이 좋아하는 것 같다. 


여름 밥상,,, 가벼워도 정성이 필요한 밥상이다. 

정성스러운 여름 밥상이면 아무리 간소하더라도 몸에 득이 되는 듯싶다. 

어릴 적 가족들과 둘러앉아서 시원한 물에 밥을 말아먹던 소소한 행복감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 오늘도 그 음식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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