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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삼 Mar 16. 2022

남성 주부 생활 어떤가요?

블로그 활동을 하다 보니 가끔은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해 오는 분들이 있다. 


자신은 그리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글을 읽고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에서부터

나도 잘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사람들도 많다. 생소한 질문, 터무니없는 질문, 질문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질문, 질문인 듯하나 응원해 주는 질문들 등등... 다양한 질문을 받아본다. 어쩌면 일종의 소통일 것이다. 


나의 블로그 활동은 주로 일상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써오다가 몇 년 전부터 친환경 기업 제품에 대해서 홍보하는 내용을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가끔씩 기업 관련 글 쓰기가 버거울 때, 또는 생각이 잘 나지 않을 때 소소하게 내 이야기를 써나간다. 딸아이와 생활하는 것에서부터 요리, 정보 등등... 그리고 가끔은 남성 주부 생활에 대해서 쓰기도 한다. 




며칠 전 남성 주부에 관한 글에 질문이 하나 달렸다. 

그 질문은 적어도 나를 화면에 한참 머물게 했고, 지난날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가슴속에 묻어 둔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어쩌면 이 글이 나에게 질문을 해 준 분을 위한 답이 될 것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수많은 사람들이 제시하는 답들 중 하나일 것이다. 













질문에 답하기 전에 나는 이전에 내가 작성했던 글들을 살펴봤다. 나름 솔직하게 나의 남성 주부 생활에 대해 글을 썼다고 생각했었는데, 꼭 그렇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나 자신이 아닌, 남이 봐야 하는 글이기 때문에 어쩌면 글을 치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100% 다 말하지 않았지만, 속이거나 과장하거나 한 내용은 없었다. 


그리고 한참을 돌아서 다시 질문 내용을 다시 보게 되었다. 

"막상 주부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가 않다."
"내가 그런 적이 있던가?"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아는가?" 

우선 매우 간결하고 명확한 어조로 답하면 이러하다. 

"나  또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에게도 그런 적이 있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살아온 시간만큼 익숙해진 생활 습관과 사회적 관습들로 인해 생기는 마음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면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 어떤 일이 생겨서 남성이 주부생활을 한다는 것은 크게 볼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작게 볼 일은 더욱더 아니다. 

크게 볼 일은 아니라는 것은 시대가 변했으니 순응하면 크게 문제가 될 일이 없다는 뜻이고, 작게 볼 일이 아니라는 것은 자아 내면의 변화에 큰 변화를 초래한다는 뜻이다. 



남성 주부라는 심적 거세와 낙인


가장 큰 변화는 심적 거세를 당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것은 일종의 낙인으로 작용한다. 

처음 남성 주부생활을 시작할 때는 그 누구보다 용기 있는 선택이라 스스로 설득하며 잘해나가는 듯 보이지만, 사회적 구조나 사람들 간의 선입견, 그리고 처음과 달라지는 주부 생활의 이면들을 접하면서 앞에서 말한 심적 거세가 더욱더 강화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잘 견디는 사람이라면 무던하거나 선천적으로 흔히 여성적인 면이 강한 사람들이 잘하지 않을까 싶다. )

무엇이든 처음 하는 일에는 그런 심적 부담감은 존재한다. 

군대에 입대할 때나 직장에 처음 들어갈 때 비슷한 그런 부담감을 느낀다. 하지만 심적 거세 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남자라면 군대를 다녀와야 하고, 성년이 되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수순처럼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특별히 심적 거세의 느낌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남성 주부의 경우 사정이 상이하다. 

현재 남성 주부가 20만 명이 넘었다지만,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주부 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에서 남들과 확연히 다른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서 불안감을 초래할 수 있다. 그래도 이 문제는 남녀의 구분을 크게 두지 않는 생활과 마음 가짐을 가지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사회가 시대변화와 함께 변했다고 하지만 기존의 틀을 쉽게 무너트릴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건 바로 주부의 다수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언급하기 다소 조심스럽지만 흡사 성소수자와 입장이 아주 약간, 미세하게나마,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근본적으로 남성 주부와 성소수자의 문제는 다르다. 


MZ세대는 좀 다를 것이라 보지만, 그들 또한 여성 주부인 엄마 손에 자랐던 수가 대다수인 만큼 여전히 주부 생활은 여성의 주된 일이라 여기는 경우가 많다. 


가정주부 = 엄마 = 여성 


심적 거세와 낙인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 이유는 아이를 유치원을 보낼 때부터 느껴진다. 물론 이전에 생활을 하면서도 사람들의 선입견 속에서 느끼기도 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이라서 그게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을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아이가 어떤 그룹에 속하여 생활하기 시작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내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볼 때, 그나마 유치원 생활은 괜찮았다. 문제는 초등학교에 아이가 입학하면서 생겨난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다 보면 녹색 어머니회에서 부모들 간의 소통이 필요한 부분이 생겨난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 속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넉살 좋게 또는 아무렇지 않게 활동해도 뭐라 할 사람은 없겠지만, 활동하는 동안 마치 타인이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저 아이 아빠는 뭐하는 사람이지?'

'엄마는 뭐하나? 대단한 일을 하나?'

'아이는 제대로 키울 수 나 있나?'

'저러니 아이가 이상하지'

'저 집은 뭔가 문제가 있을 거야'

'엄마 손에서 커야지 문제가 없는데'

'아빠가 제대로 음식이라도 해서 먹이나?'


직접적으로 나에게 대면해서 말을 하지 않지만, 우회로 들어오는 소문들을 접할 수 있다. 이런 말을 듣게 되면 솔직히 그들과 함께 뭔가를 하기란 쉽지가 않다. 오히려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봐서 더욱더 조심스러워진다. 이유는 가만히 있어도 수많은 소문이 떠 도는데, 해명하기 위해서 가만히 있지 않으면 오히려 불에다 기름을 붓는 격이기 때문이다. 


남성 주부로 살면서 솔직히 집안일을 하거나 아이를 육아하는 일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처음 하는 일이라서 다소 서툴고 주위에서 핀잔을 들을 수는 있어도 그런 일은 남자든 여자든 처음 하는 주부 생활에서 당연한 일이다. 군대에서 꾸중 듣는 거나 직장에서 꾸중 듣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남성 주부생활은 여성 주부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좀 특별한 존재인만큼 그 속에 속해도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그냥 군소리 없이 고개만 끄덕여야만 한다. 

혹자는 용기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시선처럼 용기를 내어 주도하다 보면 어느새 모든 것이 짐이 되어 내가 다 짊어져야 하는 사태가 만들어지거나 또는 철저하게 외톨이 아닌 외톨이가 되는 경우가 생긴다. 게다가 무엇보다 여성들의 대화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남성으로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자신의 문제가 더 크다는 것이다. 

직장생활과 달리, 학부형이라는 조직은 극명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질문을 해 주신 분에게 적절한 답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남성 주부가 되려는 시점에서 질문을 해 왔고, 뭔가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정말 고민을 많이 하는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각자 개인 사정은 있겠지만, 남자가 남성 주부를 하게 되었다면 걱정보다 용기를 가지고 출발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남겨 본다. 




변해야 하지만 여전히 그대로인 거만한 자존심


그리고 남자가 주부생활을 하게 되면 겪게 되는 또 하나의 심적 문제가 있다. 

바로 흔들리는 자존심 문제이다. 

사회에서 직장생활을 오래 하고 직접 주 수입원을 벌었던 남성이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나도 가끔은 여전히 이런 생각을 달고 다닌다. 


'혹여 날 불러주는, 날 필요로 하는 일자리가 없을까?'

'언젠가는 일을 할 거야'

'다시 그 일을 할 수 있겠지'

라는 생각들이다. 


(미리 말해두지만 만일 다시 누군가 불러서 전처럼 활기차게 그리고 이름값하며 일을 하게 될 경우, 그건 정말 특별하거나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이거나 복이 많은 것이라 말해두고 싶다. 적어도 이 글을 쓰는 나와 달리, 능력이 출중한 사람일 것이다. )


하지만 이런 생각은 주부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먼저 말해 두고 싶다. 살면서 이런 생각을 안 할 수 없겠지만, 그런 생각이 떠 오르기 시작한다면, 잠시 편의점에 가서 4캔짜리 맥주를 사서 들고 와서 식탁에 앉아 조용히 맥주를 마실 것을 권한다. 그것도 아주 시원하게 얼음을 가득 넣어서 마시면 좋다. 독하게 먹고 싶다면 소주와 함께...


아이러닉하게도 주부생활을 시작하면 1~2년 간은 그런 생각이 적게 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강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이 불만의 씨앗이 되어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주부 생활을 시작한 지가 좀 되었다면 그런 생각은 나 자신을 위로하려는 지긋지긋한 습관일 뿐, 전혀 현실 가능성이 없는 일이라는 점을... 

3년 넘게 , 필자는 지금 전업주부가 된 지 5년째 되어간다, 주부생활을 했다면 솔직히 경력 단절이나 마찬가지이다. 1년만 쉬어도 다시 일을 하게 되면 쉽지 않은데, 수년간 집에만 머물렀다면 과연 전처럼 일을 잘할 수 있을까?

모두 잘 알겠지만, 직장이라는 것은 그 속에 있는 동안에는 모르지만, 밖에서 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른 트렌드를 가장 민첩하게 수긍하고 적용하는 그룹이다. 즉,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꾸준하게 일을 하지 않으면 감각이 자연스럽게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자신이 왕년에 그런 일을 했으니 나중이라도 또 잘할 수 있을 거라 믿는 것은 솔직히 오만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계속해서 생각이 난다는 것은 지금 하고 있는 가정주부 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뜻이다. 결국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자신에게 더욱더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게 좋다.

주위를 둘러보면 주부들이 하는 일은 대부분 거기서 거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같은 일이라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발전시킨다면 아직 모를 새로운 것을 개척할 수도 있는 법이다.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하고 싶은 일이나 일처리 방식이 각자가 틀리기 때문에 뭐가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이 흔들리지 않을 일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방금 전 필자가 한 말은 어쩌면 남들처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여성 주부보다 남다르게 살며 이질적으로 보이는 남성 주부에게 기회가 될 수 있는 실마리일 수 있다.  


'남성 주부이기 때문에'라는 말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부정적이냐 긍정적이냐를 고민하며 사는 것이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말은 오히려 특별한 변화 없이, 그리고 남성 주부가 느끼는 심적인 부족감이 없이 살아가는 여성 주부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여성 주부는 주부 세계에 쉽게 오갈 수 있다는 이점이 있으니 한편으로 부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뭐~ 주부 세계에 속하지 않아도 집에서 주부 생활을 잘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한다.


어차피 할 것이라면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만 생각하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말해 본다. 

남자가 주부가 되든 여자가 주부가 되든 그 누가 되든 간에 모두 가정을 지키는 일을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가정을 잘 가꾸는 과정에서 내가 그 몫을 최대한 잘해 낸다면 결국엔 남들의 가십이나 스스로를 목 죄는 생각들은 크게 중요치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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