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자꾸만 새로운 것이 없냐고 물어 본다. 그리고 내가 작업한 것들이 최선인지를 되묻는다.
이미 여러 번 함께 일을 했음에도 여전히 의문을 두며 새로운 정답을 구하려는 사람들...
일을 하면서 당연히 그런 사람들을 반응을 기대하였지만, 매번 시험하듯 대하는 모습에서 불만보다 안타까움이 앞선다. 한편으로는 내가 그만큼 신뢰를 제공하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해 본다.
어쩌면 최선을 다해서 충성하는 것과 신뢰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도,
집안에서 집안일을 하다가도,
가끔은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는지 자문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심적으로 힘들 때 더욱더 그러하다.
아예 일이 많거나 해야 할 일들이 넘쳐날 경우 오히려 스스로를 자문하는 경우가 덜하다.
대부분 자문하는 경우는 아직 시작 전이거나 시작하여 얼마 되지 않았거나
그리고 그 근간에 죽어도 하기 싫은 마음이 서려 있을 때이다.
단, 하기 싫어도 이것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사정은 다르다. 하기 싫은 마음도 어쩌면 선택의 하나이다. 즉, 선택할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자문과 동시에 뭔가 새로운 정답을 찾고자 노력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외에 또 다른 것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그런 마음...
흡사 이런 마음은 도박 심리와 유사하다.
반드시 한 번이라도 정답을 찾아서 이기리라는 마음...
그러나 대부분 정답은 정해져 있다. 그저 그 정답을 애써서 부인하며 또 다른 정답이 있을 것이라 믿으며 스스로를 위안하려는 노력일 뿐... 흔히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럴 줄 알았다면 고민하지 말 것을"이라고. 정답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 방법은 달라도 그 근간은 대부분 대동소이하다.
물론 구체적인 표현을 원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정답이라 신뢰한다면 그나마 정답을 구하는 사람에게 다행일 것이다.
어쩌면 정답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답은 알고 있고, 그저 위로가 필요한지 모른다.
특히 자신이 더욱더 힘이 든다면 또는 변해가는 자신을 느끼고 있다면 더 많은 위로가 필요한 법이다.
단지, 그 위로가 자신을 잠식하여 의존적으로 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적어도 의존해야 할 대상과 그러지 않아야 할 대상은 구분해야 하겠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익숙한 의존의 대상보다는 새로운 의존의 대상을 쫓기 마련이다. 이유는 뭔가 새로운 것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며, 오래된 것은 익숙하여 더 이상 자신에게 강한 힘을 전하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늘 익숙한 것은 그저 그런 것이니까. 우리가 매번 공기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숨쉬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새로운 것은 없다. 그저 대상이 새로울 뿐이다.
즉, 형상을 쫓는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흔들림이 없는 사람에게는 오래된 것을 선호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오래된 것은 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