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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삼 Jul 14. 2022

넘쳐나는 일에 버거움을 느낄 때

석사과정, 박사과정을 겪으면서 내가 가장 많이 느꼈고, 매일 같이 날 따라다녔던 감정이 있다.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나의 자양분이 되었다고 말은 하지만,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나를 매일같이 괴롭혔던 감정은 바로 "자괴감"이다.


자괴감을 느꼈던 이유는 나의 능력 밖의 일을 하면서 제대로 해내지 않아서 생겨났다. 특히, 석박사 과정의 경우, 혼자서 하는 연구가 아니라 함께 하는 공동연구가 대부분인데,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일을 하다 보니 내가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고스란히 프로젝트 전반에 걸쳐 피해를 주기 때문에 나는 늘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가해자였고, 그로 인해 나는 부끄러움을 혹처럼 달고 다녔다. 그래서 늘 자괴감은 나의 또 다른 정체성과 같았다.


불어불문학과를 나온 나는 그렇게 할 줄 아는 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조금이라도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에 숙식과 장학금 일부가 해결되는 컴퓨터를 다뤄야 하는 연구실 활동을 시작하였고, 그 생활은 석, 박사 학위 과정 동안 늘 스스로를 반성해야 하는 감옥과 같았다.


시작은 참으로 좋았다. 모르는 게 있다면 배워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에게 생소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비롯하여 컴퓨터와 관련된 여러 커리큘럼들은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함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에게 나는 매우 무모한 사람으로 비쳤을 것이다.







연구실 생활을 하면서 늘어나는 것이 있다면, 책임자의 기대치와 일의 양이다. 그리고 동시에 잘 해내지 못하면 나에게 돌아오는 질타와 멸시도 비례적으로 늘어난다. 이런 면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을 하면서 일이 힘들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 경우이다.

일의 양과 상관없이 능력이 부재한 경우와 할 수는 있지만 일의 양이 너무 많을 경우다.

전자는 포기라는 선택지가 있지만, 후자는 쉽게 포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일의 양이 너무 많을 경우 흔히 고민을 하게 되고 많이 지치게 된다. 보통은 일을 맡게 되면 그 일에 대한 책임은 일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만큼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짐 때문이라도 쉽게 포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일의 양이 많으면 점점 지치게 되고 무력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연구실 생활을 하면서 능력이 부재이지는 않았지만, 많이 부족했고 일의 양도 너무 많았었다. 게다가 학위라는 목표 덕분에 포기라는 선택지는 곧 학위를 그만둔다는 것과 동일했기 때문에 매일 같이 자괴감을 느끼더라도 버티고 또 버텼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능력은 충분하지만 일이 많아서 생겨나는 부담감과 버거움, 그리고 이어서  따라오는 불안감과 혼란... 특히 이런 경우는 자신은 이미 능력이 있음에도 능력이 부족하다 여기며 자기 스스로를 더욱더 자괴감 속을 밀어 넣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악순환으로 이어져서 결국엔 번아웃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결국에는 시간이 해결의 실마리이며, 고민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해결의 실마리를 잘 활용하려면 무거운 부담감과 버거움에 잠식되지 말아야 한다. 대부분 부담감과 버거움으로 인해 지쳐가는 마음이 사태를 더욱더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담감과 버거움이 심할 경우에는 주로 지나치게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고민하는 모습을 해결을 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고민은 길어지면 시간 낭비로 이어지는 만큼 고민보다는 해결을 위한 행동이 우선되어야만 한다. JUST DO IT!!!


일이 너무나 많다면 "연기"라는 좋은 사회적 통념이 존재한다.

물론 마치 요행 같아 보여서 개인적으로 용납되지 않을 수 있다지만, 그래도 결자해지를 하고 다음 일을 위해서라도 평상시에는 용납할 수 없었던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건강을 잃지 않고 끝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적어도 남을 해치거나 피해를 주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

물론 그런 모습을 보고 험담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험담하는 사람이 왜 험담을 할까? 그건 그들이 그런  행동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어서다.

그리고 생각보다 사람들은 과정보다는 결과를 보기 때문에 늦더라도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온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수도 있다.


시간이 부족할수록, 체력이 부족할수록, 마음이 급할수록, 급한 마음에 스스로를 몰아붙이면 안 된다.

그럴수록 그저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이 답이다.

만일 어떤 것을 먼저 해야 할지, 어떤 것을 나중에 해야 할지를 고민이 된다면, 우선순위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가장 눈에 먼저 보이는 것을 잡고 반나절 정도 일을 하면, 그 뒤로 우선순위가 보이기 시작한다.

반나절 일한 다음 돌아봤을 때, 마음에 흔들림이 없다면 한나절동안 했던 일이 먼저 해야 할 일이고, 마음의 동요가 있다면 반나절 동안 했던 일을 잠시 저장과 메모를 해 두고, 남은 반나절을 다른 일에 매진하면 된다.

필자도 가끔씩 일의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이런 방법을 활용하는데, 나름 효과적이다.

그러고 보면, 선택에 대한 망설임은 아직 시작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일 수 있다. 그리고 시작의 의미를 크게 두는 것도 좋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가장 기본적인 일을 시작으로 먼저 움직이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살면서 힘겹고 버거운 일을 해 볼 가치는 있다.

그 가치는 바로 일종의 문제 해결 능력을 말한다.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도 하고, 힘든 일에 대해 경험을 해 봤기 때문에  적어도 업무 처리에 대한 안배 능력이라는 것이 생겨난다. 일을 착수하기 전에 대략적인 마일드 스톤을 제시하며 공사기간이라는 것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자괴감을 겪을 정도의 버겁고 힘든 처지에 놓였다 할지라도 지금 그렇게 해결하기 위한 한걸음 한걸음을 진지하게 그리고 용기 내어 움직이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며, 그러다보면 자존감과 함께 끝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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