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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삼 Sep 12. 2022

여전히 똑같은 명절의 모습들

명절 이후 모습은 참으로 변화 없이 늘 같은 모습으로 지내는 것 같다. 

이런 모습은 비단 우리 집 모습만이 아니다. 

여전히 똑같은 명절의 모습... 

나는 이런 모습은 그저 서로 간의 고집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특히 고집을 굳건하게 만들 수 있는 세월의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서 더욱더 크게 강한 고집이 발현하는 법이다. 



고집이란 자신이 살아오면서 얻어진 경험과 지식이 옳다고 믿는 것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자면 자신의 편의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추석과 같은 명절을 지낼 때마다 보이는 각 세대들마다 느껴지는 입장 차, 

머리와 입으로는 상대 세대를 이해한다지만, 결코 상대의 기준에 맞추지 않는다. 





[윗사람들의 모습]

그렇지 요즘은 다 그런다고 하더라.

우리도 변해야지. 

이번에는 이렇게 하고 다음번에 생각해 보자. 


(그러나 늘 그랬듯이 작년과 변화 없는 모습으로 지낸다. 그리고 말은 달라졌어도 내용은 똑같은 대화가 이루어진다. 다시 한번 늘 그랬듯이)



[아랫사람들의 모습]

네 맞습니다. 틀린 말씀 아닙니다. 

네네네 

(그러다 임계치를 넘기면)

그게 아니라요. 

아니라니까요. 




가족이 모여서 좋은 시간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한데, 늘 유사한 대화가 매해마다 반복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이유는 윗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옳았고, 그리고 크게 변화할 필요가 없어서이다. 

그대로 이렇게 계속 살아도 충분하기 때문이며, 자신의 삶의 변화보다는 그동안 보험처럼 애지중지 키워왔던 자식들로부터 보상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편의에서 출발한다. 



아랫사람들도 의외로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모처럼 만난 자리에서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가 좋다. 그리고 그 모습이 남들에게 보일 것을, 그리고 내 가족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남겨지길 원하는 마음에서 굿 리스너(Good Listener)가 된다. 하지만, 지루하고 반복적인 대화의 임계치를 넘기게 되거나 윗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동시에 아랫사람의 잘못된 생각이라고 생각하고 윗사람들이 가진 자신만의 경험과 지식으로 아랫사람을 가르치려 할 때 더 이상 굿 리스너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이런 모습들이 모여서 갈등이 되고,,, 

또 그렇게 한 해에 맞이한 소중한 명절을 보내곤 한다. 



국가나 사회는 스스로 침체되거나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늘 변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극복하거나 발전시키려 한다. 

가족도 어쩌면 아주 작은 사회이자 국가일 것이다. 

좀 더 나은 가정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세대 간의 입장 차를 분명히 이해하고 자신의 고집에서 비롯된 흔적들을 과감하게 버려야만 좋은 변화가 가능하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 노력해야 할 것이고, 필요에 따라 바꾸고 싶지 않은 습관이나 관습을 버리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올드하고 필요 없는 사고라 여기지 말고, 좋은 말을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용기를 내어 감정적인 방법보다는 친절하게 대화로 상대의 잘못을 말을 해야 한다. 만일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면, 그저 듣고만 있으면 된다.  이미 세대라는 구조 속에서는 지배적인 만큼 아랫사람이 따지고 들면 그 순간 불화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그저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본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한 없이 말로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동물이다. 나이가 들면 이런 본능은 더욱더 강화된다. 그러니 그저 댓구 없이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또 다른 세대 간 해법일 수 있다. 

더욱이 아랫사람으로서 조심해야 할 것은 그들도 나이가 들면 자신의 부모를 닮아서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는 점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자신의 아버지처럼, 자신의 어머님처럼 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 또한 제대로 된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유전처럼 그대로 이어져서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 그 어머니에 그 딸이 된다. 




사람은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를 누리게 되면, 

자신이 가장 옳은 사람이라 믿고 살아간다. 


그런 삶을 살아간 윗사람들이라면,

나이가 들게 되면 그런 마음가짐이 더욱더 고착화되어 자신만이 옳게 된다. 


심지어 나이 들면서 소외되는 순간이 와도

그 잘못의 근원이 자신에게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신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방법을 몰라서이다. 

알았다 하더라도 남은 인생이 살아온 날보다 적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바꾸고 싶지 않은 것이 속 마음이다. 






하지만, 일 년이 남든, 십 년이 남든, 이십 년이 남든,,, 

살아가는 그 시간은 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므로 변화하면 좀 더 새로운 남은 시간을 접하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세상은 변화하고, 스스로만 변화하지 않는 시간을 접하게 된다. 


칠순을 넘긴 부모가 "우리는 얼마 남지 않았다."라고 말을 하고, 내일모레 90세를 바라보는 노부부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여전히 내가 나이가 많아서 라는 말을 한다. 

약 20년 간 "우리는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말을 하면서 위안을 바랐을 것이고, 이해를 바랐으리라 본다. 그리고 그렇게 측은지심을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20년 간 살아오면서 좀 더 변화하려는 모습으로, 

더 나은 모습을 살아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이제 늙어가기 시작하는 우리들부터 변화하는 시점을 시점대로 받아들이는 부지런한 인생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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