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rnout Syndrome. 어떤 직무를 맡는 도중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직무에서 오는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증상의 통칭하는 것으로 정신적 탈진무리 없이원래 이 단어는 감정노동자에 대한 연구에서 출발한 단어였다.
Edelwich와 Brodsky(1993)에 연구에 따르면 일개 사원의 시선에 따라 번 아웃의 증상과 진행과정을 소개한다. (출처 : 나무위키)
열성: 번듯한 직장에 취직했다.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이니만큼 열정이 넘친다.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있으며 어려운 직무라도 스스럼없이 맡아내고, 자주 있는 야근이나 주말 출근도 자발적으로 행한다. 이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보람과 성취감은 삶의 낙이요 전부다.
침체: 슬슬 부침이 온다. 업무수행 자체는 해내지만 처음 입사할 적 느꼈던 흥미는 점점 떨어져 간다. 슬슬 직무에서 오는 보람은 뒷전이 되고 자신을 둘러싼 근무환경을 챙기기 시작한다. 보수, 근무시간, 업무환경은 이 직무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챙겨야 하는 요소로 승격된다.
좌절: 오랫동안 근무하며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맛보았다. 이 직장 역사에 한 획을 긋겠다는 포부는 사라진 지 오래고, 당장의 인사고과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벅차다. 자신의 업무 수행 능력에 대한 의심이 생기고, 동시에 자신의 직무가 가지는 가치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 업무의 무가치함을 맛보는 순간 직면한 업무에 대한 회피의 감정이 솟구친다. 거기에 나이가 든 탓일까, 삭신이 멀쩡한 곳이 없다.
무관심: 스트레스는 이미 극한에 다다랐고, 업무는 여전히 벅차다. 흥미가 없는 일을 하려니 커진 스트레스는 가뜩이나 실패투성이인 자신의 직무인생에 더 많은 실패를 가져다준다. 확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당장의 벌이가 없다면 절대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 최후의 수단으로 '기권'을 선택한다. 직무에 대한 모든 감정선을 차단한 채 묵묵히 버텨내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목을 죄는 스트레스는 버티기 힘들다. 더 이상 직장에서 감정적인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결국 슬금슬금, 퇴사나 이직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번아웃으로 이르게 되기까지 원인 제공자는 누구일까?
자기 자신일까?
아니면 동료?
아니면 상사?
일단 자기 자신이 원인 제공자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실제 스스로 일을 처리하는 입장이라면 알아서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에 번아웃에 노출될 상황에 직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료일까?
그럴 가능성은 조금은 있으리라 본다.
만일 업무상 경쟁관계에 놓여있다면, 게다가 상대에게 늘 뒤처진다면 그것으로 받는 스트레스로 번아웃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절대적인 원인 제공자라 보기는 어렵다. 물론 경쟁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매우 큰 스트레스로 자신을 번아웃으로 몰아갈 수 있다고 생각은 가능하겠지만, 보통은 조직 내에서 화해나 협력, 협치의 방법으로 문제점을 완화시키기 때문에 일 개인을 번아웃까지 몰아갈 정도로 심각한 원인제공자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사내에서의 경쟁은 자신의 업무에 몰두할 수 있도록 또는 더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자극제로 작용하여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물론 한 사람을 겨냥해서 계획적이고 집단적으로 몰고 간다면 번아웃의 가능성은 있다.
마지막 상사일까?
필자는 상사가 가장 큰 번아웃 증후군의 제공자라 생각한다.
물론 모든 상사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일부 상사들은 직원들이 존경하고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상사를 위해서 자신이 적극 헌신하려는 직원들도 많다.
그래도 직원들의 번아웃을 야기시키는 상사가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형태로 상사로서 능력이 부족한데 무조건적인 가부장적으로 직원들을 다룰 경우이다.
그런 상사는 일을 배분함에 있어서 직원들의 능력 정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 무조건 자기 뜻대로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사 스스로는 많은 생각과 고민을 거쳐서 업무를 배분했다지만, 그 어떠한 근거 없이 내린 결정이 많다. 무엇보다 실소를 짓게하는 것은 그런 상사들은 자신의 행위가 매우 과학적이고 경험적이며 이성적이자 합리적이라 믿는다는 점이다.
이런 상사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가 있다.
자신이 경험하고 배우고 익힌 정보와 지식이 항상 먼저이고 우수하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연구를 하는 조직 내 리더의 경우, 더욱더 이런 모습이 비일비재하다. 이유는 리더 자신도 고학력자이며 유사한 연구원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믿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리더들이 미쳐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세대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리더 자신이 예전에 어떤 연구 조직에서 일을 했을 때와 현재는 시간적 간극이 존재하는 법인데, 예나 지금이나 같다라고 생각하며 믿으며 통솔하는 경우가 많다.
'굴리면 다 한다' 라는 식의 마음
다음은 타협이나 포용력없는 아집이 심하다는 점이다.
만일 자신이 하는 방법과 지금의 세대가 일하는 방법이 틀리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기 중심으로 통솔되도록 만들려 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리더들은 자신의 취임사에 매우 선진적인 문구로 치장한다.
그러나 일터 현장에서는 여전히 자신이 리더라는 이유로 아랫사람들을 군림하고 오직 자기 생각만이 최고임을 자랑한다.
간혹 ESG경영실천을 하겠다는 리더들이 거창하게 선언서를 공표하기도 한다.
ESG경영실천을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포용적 리더십'이지만 적장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리더들이 많다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