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하니 벌써 세 번째 짧은 글을 적습니다.
저출산에 대해 평상시 가졌던 생각을 적을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내 생각이 절대 보편적인 생각이 될 수 없고, 누군가에는 기분 나쁜 글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면 해결보다는 분쟁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입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저출산을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에 일 개인의 사유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작성해 봅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둘째나 셋째를 낳길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로 많은 사람들이 금전적 이야기를 하지만, 이번 이야기는 금전적인 문제가 아닌 심적인 내용입니다.
사실 저도 딸아이 하나를 두고 있습니다. 둘째를 가진다면 자연스럽게 가질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사실 쉽지 않더군요. 꼭 둘째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도 그리 강하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앞에서 적었던 글처럼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이를 기르는 과정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죠.
흔히 아이를 낳아서 기르다 보면 어느새 쉽다고 말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정말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응원이나 위로보다 오히려 꾸중과 핀잔을 듣고, 때론 의심의 눈빛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게 문제라 생각합니다. 그럴만했던 이유는 남자가 아이를 맡아서 육아를 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으니 말이죠.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지금하는 이야기는 제가 겪은 이야기인 만큼 지금 세대와는 다를 것이며, 개인적인 이야기인 만큼 보편적인 내용이 아닙니다. 이점 미리 양해를 구하고 글을 적습니다.
저는 남성전업주부입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가졌고, 아내와 둘이서 잠을 설쳐가면 육아를 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회사를 다녀야 했기 때문에 고생은 주로 아내가 다 했죠. 그렇게 5년을 지나 딸아이가 5살이 되던 해에 저는 계약기간 만료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아내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5살이 되던 해부터 제가 집에서 딸아이 육아를 맡아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남들은 처갓집이나 본가 어머님들이 아이를 봐준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런 도움 없이 아이를 육아했었죠.
오롯이 혼자서 육아를 책임지는 순간부터 불편했던 점들이 있습니다.
첫째, 가족의 시선이 곱지 않았습니다. 실제 제 부모님도, 처갓집 부모님도 미심쩍은 눈빛으로 바라보셨죠. 아무리 요즘은 남성들이 육아를 한다지만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많으셨던 모양입니다.
참고로 그때가 2017년 즈음입니다.
가끔씩 점검차 집을 방문하시면 칭찬이나 응원, 위로보다 못마땅한 일들에 대한 숙제만 가득 남겨 놓고 떠나셨죠. 지금은 세월이 지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두 잊어버리셨지만, 여전히 그때 기억은 저에게 아직도 많이 서운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동안 아이가 아프거나 잘못이라도 하면, 또는 아이를 잘못 케어라도 하면 죄인이 되었던 순간이 많았었죠. 제가 볼 때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닌데 아이를 그렇게 교육하면 안 된다에서부터 아빠라서 아이를 잘 못 키운다라는 소리를 참으로 많이 들었습니다.
속으로는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자녀를 키울 때 처음부터 잘하셨냐"라고 말이죠. 아마도 그리 물었다면 저는 지금 이 세상에 없었겠죠?
둘째, 남들의 시선이 불편했습니다.
아마도 제 외모가 남들보다 키가 크고 덩치가 커서 더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유독 제가 딸아이와 어딜 가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했었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딸아이와 단 둘이 문화센터를 이용했을 때입니다. 지금은 정말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아빠가 딸아이를 데리고 문화센터를 방문하면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특히 발레 수업을 할 경우, 딸아이 옷을 갈아입혀야 할 때 저만 화장실에 가서 딸아이 옷을 갈아입혔었죠. 그나마 백화점에 있는 문화센터라 화장실이 깨끗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도 있었죠.
딸아이가 다닐 학원을 알아보려고 이곳저곳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점심시간 전 즈음에 딸아이를 데리고 피아노 학원을 방문했었는데 학원 선생님들이 저를 적잖이 경계한 적이 있습니다. 한낮에 직장이나 일터에서 일해야 할 남성이 학원 문을 두드렸으니 겁이 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결국엔 학원은 아이 엄마가 알아보았죠.
셋째, 어딜 가도 죄인이 되거나 생각 없는 아빠가 될 수 있습니다.
일단 어린아이와 함께 카페를 가든 식당을 가든 아빠와 딸, 단 둘이는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혹여라도 어딜 가게 되면 가장 구석 자리를 차지하거나 아이 엄마가 함께 있을 때 방문하곤 했죠.
육아휴직을 통해 아빠가 아이를 케어하는 세상이 도래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자리하고 있으리라 봅니다.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카페에 가서 편안하게 음료수를 마시기보다 어린 딸아이가 뭐라도 흘릴까 봐 조마조마했고, 흘리면 주위를 깨끗하게 치우기 바빴습니다.
한번 딸아이가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랑 함께하면 예쁜 카페에 가는데, 아빠랑 함께하면 서서 먹는 어묵집이나 금방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이죠.
넷째, 주양육자의 성분이 다릅니다. 누구는 성골, 누구는 진골이죠.
아이를 키우는 같은 처지이지만, 한 동네에 다른 아이들의 주양육자인 엄마들과 친해질 수 없습니다.
솔직히 친할 생각도 없었지만, 생활을 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엄마들은 쉽게 소통할 수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긴 너무 소통이 잘 되어도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사를 하고 딸아이가 새로운 유치원에 들어가던 해에 궁금한 것이 참으로 많아서 다른 아주머니들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지만 그렇게 친절한 답을 구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느낌을 받고서는 그 뒤로는 바로 디렉트로 선생님을 통해 물어보게 되었죠.
사실은 딸아이를 키우면서 지금까지 다른 아이들의 엄마들과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머니회 활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특히 초등학생이 되어 방과 후 수업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부모들이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늘 불편한 존재였죠. 그래서 2학년 때까지 딸아이를 방과후 시키고 그 뒤로는 학원 한두 개와 집에서 제가 선행학습이나 별도의 교육을 시켰습니다.
다섯째, 딸아이가 가끔은 외톨이가 됩니다.
지금은 알아서 자기와 친한 친구를 만들어 잘 지내고 있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딸아이는 친구가 거의 없었습니다. 아마도 아빠랑만 있어서 그랬을 수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들이 모이면 그때 모이는 아이들끼리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 딸아이는 아빠가 다른 엄마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입장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네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마을이 아닌 다른 곳에서 딸아이를 활동하도록 만들었죠.
김해시청에서 진행했던 아동 참여단이나 공공기관에서 실시하는 다양한 교육에 참관시켰어요. 그러는 동안 딸아이를 지켜보면 그 속에서 친구를 잘 만들더군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주 못 만난다는 점입니다. 그래도 매우 토요일만 되면 아동참여단 행사나 교육을 기다리며 즐거워했던 아이의 얼굴이 생각납니다.
제 딸아이가 문제가 있어서 친구가 없었던 게 아닙니다. 동네 친구를 만들어 줄 수 없는 아빠가 주양육자였기 때문이죠.
여섯째, 학교 담임 선생님의 염려 섞인 훈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학교에서 전화가 오지 않습니다.
저학년일 때는 정말 자주 전화가 왔었습니다. 딸아이가 같은 친구와 트러블이 생기면 바로바로 전화벨이 울렸죠. 그리고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상대 아이의 엄마들이 제 딸아이를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몇 차례 들었습니다. 전후 사정을 들어보면 제 딸아이만의 잘못은 아닌데도 잘못의 무게는 제 딸아이에게로 넘어오는 경우가 많았었죠.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딸아이와 친구가 함께 활동하자고 약속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상대 아이가 마음을 바꾼 거죠. 특별한 이유 없이 마음 바꾼 점에 대해 화가 났던 제 딸아이는 상대 아이에게 말로써 따졌던 모양입니다. 결국 상대 아이는 펑펑 울게 되었고, 제 딸아이도 억울해서 함께 울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상대 아이가 집에 가서 자기 엄마에게 있었던 일을 말했고, 그 일을 들은 엄마는 학교 선생님에게 전화하여 제 딸아이를 접근 못하도록 조치해 달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방과 후 수업을 들을 수 없었죠. 그 뒤로 무슨 일이 생기면 담임 선생님은 가장 먼저 저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하셨죠. 그리고 대화 중간에 이런 말이 추가됩니다. 다른 어머님들이 염려하고 있다고 말이죠.
아마도 엄마가 딸아이를 양육하고 동네 아주머니들과 친하게 지냈더라면 별일 아닌 것으로 넘겼을 법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 또한 아빠가 아이를 양육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일곱째, 같은 남성들에게 모자란 놈이 됩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남자가 일을 하지 않고 가정주부 생활을 한다고 하면 능력이 모자란 모지리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실 제 이야기이기도 하죠. 특히 지역적인 문제도 있는 듯해요.
제가 남성주부로 생활하면서 집에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서 아는 지인을 자주 못 만났지만, 모처럼 만나면 대부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거나 저를 하대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박사까지 받고서 가정주부를 한다는 저를 보고 즐거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가정주부를 하면서 인맥 정리를 한 것 같습니다. 여전히 저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만 남은 셈이죠. 그래서 지금이 더 좋습니다.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MZ세대는 다르겠지?라고 말이죠. 그런데 그들도 매 한 가지더군요. MZ 세대라고 해서 개방적이거나 포용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여전히 남자가 주부 생활을 한다고 하면 MZ세대 역시 모지리로 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은 세대 문제가 아니라 가정 문제라는 봅니다. MZ세대가 어떤 부모 밑에서 자랐는가에 따른 것 같습니다. 또한 어떤 지역에서 활동하는가도 작용한다고 봅니다.
어쩌다 보니 일곱까지 이야기를 적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제 마음 한편에 쌓아 둔 것일까요? 어쨌든 남자가 가정주부로서 아이를 혼자서 양육한다는 것은 불편한 요소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찌 생각해 보면 그런 불편함을 무시하고 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해요.
하지만, 분명 남성주부라는 것을 치부로 여기며 건드리는 사람들이 반드시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그런 생활을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마음이기도 합니다.
물론 둘째가 생겨서 또다시 반복적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면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겠지만, 그러기 전까지는 그런 생활을 반복하기 싫은 게 솔직한 심정이죠.
만일 남성주부 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육아하는데 앞에서 언급된 내용을 하나로도 겪은 적이 없다면 정말 그분은 나라를 구해서 복 받은 사람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아이를 키우면 사람들이 우호적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날을 덜 새울 것이라 믿었죠.
하지만 아이를 중심에 둘 뿐이지 여전히 경쟁적이고 날이 선 생활을 하게 됩니다. 특히 남성이 아이를 육아를 한다는 것은 집에만 머물렀을 때가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울 뿐이지 그렇지 않은 상황 속에서는 남성보다 여성이 육아를 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생각합니다.
우리는 남녀 성평등을 외칩니다. 그런데 그 실상은 여전히 평등보다는 차별화를 바라는 부분이 많습니다. 물론 생리적 차이까지 평등해질 수는 없죠. 그래도 주양육자라는 측면에서 바라만 본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요?
저출산의 문제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 이상 아이를 가지지 않기 바라는 남성도 있습니다.
일을 하고 있는 아내는 아이를 낳는 건 문제없는 데 다시 키우라면 자신이 없다고 합니다.
집에 있는 남편은 아이를 키우는 것은 힘들어도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모지리 취급받아도 되는 한계점이 어딜지 두려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