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왔다.
"오늘 별일 없지?"
"네, 어머님"
"시간 되면 와서 연잎밥 가져가라. 새로 하려고 하니 냉동실에 얼려 놓은 거 가져가야 새로 한다"
"네, 알겠습니다. 오후 3시까지 가면 되죠? "
"어 그래"
장모님과 나와의 통화는 이렇게 간결하고 짧다. 용건만 간단히... 쿨하게...
쿨한 것은 유독 나와의 통화나 대화에서만 볼 수 있다. 당신 아들이나 장인어른, 그리고 딸과 손녀의 통화는 남다른 애정이 있다.
나만 쿨하다. 그래서 좋다.
그리고 전화 통화를 끊고 한참을 생각한다.
냉동실에 있으면 새로 안 하면 되는데 왜 또 만드시지? 집에 요즘 혼자 계시는 데...
그냥 우리 주려고 만들어 놓으시고 쿨하게 '오다 주웠다. 옛다'를 하시는 것인지,
너무 많이 만들어 놨다가 냉장고에 얼려두었는데 너무 오래되서 버리기 아까워서 우리에게 주는 것인지.
이유야 어쨌든 나는 가야 한다. 부르셨으니...
차로 움직이지만,,,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기름값도, 시간도 적잖이 아까운 게 사실이다.
오후 3시에 가는 이유는 그나마 그 시간대가 차가 덜 막힌다.
되돌아오는 시간을 고려해도 4시 전에 집으로 돌아오기 적절해서다.
부산의 동서고가도로는 4~5시부터 밀리기 시작하는 데 경우에 따라 30분 거리가 1시간 30분 넘을 경우도 있다. 그래도 양 집을 오갈 때는 시간 안배를 잘해야만 한다.
시간이 되어 열심히 달려서 김해 장유에서 부산 양정까지 약 30분 만에 도착했다.
처가댁에 방문을 하니 대문이 열려 있었고, 내가 가져가야 할 것들이 앞에 놓여 있었다.
방금 전에 만든 연잎밥과 냉동실에 꽁꽁 열려 놓으신 연잎밥이 있었다. 그리고 연잎밥 만이 아니었다.
세 종류의 김치에 반찬들이 함께 있었다.
장모님께서 집 밖으로 나오시더니 물건을 설명해 주시고 다시 들어가신다.
쩝~ 난 차라도 마시고 가라 할 줄 알았는데...
어쨌든 나는 택배 기사가 되어 재빨리 짐을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냉장고를 정리하고 물건들을 넣었다. 매번 느끼지만 우리도 가정생활을 해서 물건을 사서 냉장고에 보관을 하는데 가끔씩 갑작스럽게 통보식으로 음식을 가져가라는 연락을 받을 때는 난감하다. 처가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보관하기 위해서 냉장고에 있는 음식 중에 몇 개는 멀쩡한데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본가에서 가져온 음식을 버렸다.
부르시면 가야 한다.
가끔은 부르실 때 못 갈 것을 예견할 때 미리 아침에 전화를 드린다. 그래야 좋아하신다.
처음에 전업주부 할 때는 무조건적으로 따랐다면, 이 또한 시간이 지나니 나름의 방법을 터득했다.
그리고 이를 빌미로 전화통화를 가끔씩 해선지 전과 달리 장모님과 많이 가까워진 듯하다.
어쨌든 한 동안 쌀값, 반찬값이 들지 않아 기분이 좋다.
저녁에 딸아이와 나는 연잎밥을 죽으로 만들어서 먹었다. 아이가 연잎밥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하여 죽으로 만들었더니... 온갖 곡물들이 고소한 맛을 내어 죽이 맛이 더 좋아졌다. 참기름 간장을 약간 뿌리고, 익은 김치를 올려서 먹으니 참으로 맛났다. 덕분에 든든하게 저녁을 해결했다.
감사합니다. 장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