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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이유

by 공삼

나는 평소에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최대한 말을 조심히 하는 편이다.

그리고 나보다는 상대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대화를 한다.

물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앞에서는 한 없이 말이 많아지곤 한다.



상대가 힘들면 용기 나는 말을 해주고,

상대가 괴로우면 즐거운 말을 해주고,

상대가 혼란스러워하면 한곳에 집중하도록 말을 해 준다.

하지만, 나를 위해서 상대를 생각해서 말을 건네는 사람은 아내를 제외하고 거의 없다.

굳이 한 명쯤 말하라면,,, 부산에 사는 친구 한 명이 있다. 그러나 김해로 이사한 후 자주 만나지 못하고 있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정확한 위안이란 같은 공감대 속에서 발휘된다. 쉽게 말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들과의 공감대를 뜻한다.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좀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소귀에 경 읽기와 매한가지이다. 들어는 줄 수 있지만, 완벽하게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해 그저 숲 속에서 혼자서 외치고 온 격이나 마찬가지이다.



말, 단어, 언어, 뭐라고 칭하든 간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언어 행동은 보이지 않지만 엄청난 큰 힘을 가졌다.

가장 대표적인 힘이 바로 위안일 것이다.


한 마디에 살얼음 같은 긴장감을 녹이게 하고,

한 마디에 날 선 복수심을 사그라들게 하고,

한 마디에 죽어 있는 자신감을 생동 있게 만든다.


이제까지 나는 이런 것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많이 없다.

긴장을 해도, 복수심이 생겨도, 용기가 없어도 스스로 찾아야 했다. 그래서 지금은 익숙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철저하게 외계인 취급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특히 기다림과 동시에 불투명한 결과를 기다리는 시기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기다리는 동안 정말 다양한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뭔가를 읽고, 쓰고, 만들고 하지만,

그저 그런 행동은 기다림이라는 견디기 힘든 시간을 모른 척하기 위한 내 행동일 뿐 완벽한 갈증을 해결하지 못한다.


그래도 그 갈증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킬 수 있는 것은 역시

글을 쓰는 것이다.

특히 글은 생각하며 쓰는 만큼 우발적이지 않다. 게다가 말과 달리 휘발성이 없기 때문에 나중에 좀 더 나 자신을 뒤돌아볼 때 유용하다.

그래서 글은 나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위안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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