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일용직을 신청해서 한 일은 비산먼지막이 설치였다.
쌓아 놓은 토사 위로 올라가 둘이서 넓은 비닐막을 덮는 일이다.
건설현장을 지나치면서 늘 봐왔던 녹색의 비닐 덮는 일이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쌓아놓은 흙이다 보니 중심 잡기가 쉽지 않았고,
비닐 고정하는 데 핀을 박고 그 위에 주위에 돌아다니는 큰 돌을 주어 눌러 주는데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많이 되었다.
첫날은 하루 종일 비산먼지 막이를 설치했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과 호흡이 맞지 않으면 은근히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세 시간 정도 일을 하다 보니 이후 일은 손발이 맞아 속도가 붙었다.
다음 날 이어진 작업은 슬러지 보관장소 틀 작업과
그다음 날은 가이드 설치 작업이었다. 이외에도 소소한 잡무를 맡아 산업현장을 돌아다닌다.
슬러지 보관장소 틀 작업은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작업을 했는데,
처음엔 더뎠지만, 방법을 깨닫고 꽤나 튼튼하게 제작했었다.
아시바 파이프로 고정해야 하는 일인데, 오래전 군생활이 떠올랐다. 흔히 비계에 사용되는 파이프를 아시바라고 하였다. 처음에 아시바가 뭔지 몰라 헤맸었다.
어쨌든 일을 끝내고 나니 현장 감독인 소장님도 만족해했었다.
그런데 해당 작업을 너무 일찍 끝냈던 모양이다. 누군가 나를 불러서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허드렛일을 시켰다. 현장 곳곳에 안전바 설치를 하고, 주변 정리를 하는 등 다양한 일을 했다.
앞으로 트럭들이 많이 오가는 지점에 세륜기 가이드를 제작했었다.
앞서 혼자서 제작했던 틀 제작 경험 덕분에 좀 더 쉽게 만들 수 있었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일하다 보니 의외로 덜 지루하고, 덜 힘들었다.
함께 일하던 경력이 많은 반장님이 한 마디 했다.
천천히 하세요
세 번째 날에 나에게 임무가 주어졌다.
바로 용접현장에서 화재를 감시하는 역할이었다.
사실 속으로 매우 기뻤다. 안 그래도 현장 용접이 궁금했던 터라 어떤 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지는지가 궁금했었다.
화재감시자 역할을 2일 했는데,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어떤 식으로 취부해야 하고,
또 어떤 식으로 용접을 준비해야 하는지,
큰 H형강을 포클레인으로 어떻게 이동시키는지,
심지어 도면 해독을 통한 작업 방식도 포함된다.
화재감시자를 하는 일은 그저 화재 발생 위험을 미리 예지하고 대처하는 일이지만, 용접사들과 좀 더 친해지기 위해서 남들이 보지 않을 때 함께 일을 도우기도 했다.
용접 팀장님도 매우 흡족해했는데, 그 이유는 용접 관련 장비 용어를 쉽게 이해하고 잘 따랐기 때문이다.
옆에서 용접을 지켜보는 데, 용접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하게 들기도 했다.
왜냐면 직업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더 쉬워 보였기 때문이다. 이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고...
그런데 내가 몰랐던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현장에서 불어 닥치는 바람이라는 변수였다.
나도 모르게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물었더니
팀장님이 노하우를 알려 주셨다.
바로 구조를 이용한 바람의 흐름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들어 보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절대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땡큐 팀장님)
전화가 울렸다.
화재감시자 역할을 그만두고 4번 게이트로 일하러 오라는 지시였다. 일을 마치고 다시 화재감시자.
잠시 후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일전에 쳤던 비산먼지 막이를 걷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2시간 정도 일하고,
다시 화재감시자 자리로 왔다.
또 전화가 왔다.
위험표시 경계선을 쳐야 한다면 오함마를 들고 오라 한다.
그렇게 화재감시자를 하는 동안 1인 다역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며칠 전부터 내게 주어진 임무는 신호수였다. 약 일주일 정도인 것 같다.
현장 사무소에 나오지 않고 바로 내가 일할 현장으로 출근해서 신호수 업무를 맡는 것이다.
하루 종일 외진 곳에 와서 신호수를 하다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게다가 지나가는 트럭들만 쳐다보니 흘러가는 시간이 더 더디게 느껴진다.
새벽 6시 30분까지 바로 현장으로 와서 트럭이 오가는 통로를 열어두고,
첫 트럭이 지나가기 전까지 신호수 준비를 마친다.
그리고 잠시 후 6시 50분쯤 되면 저 언덕 넘어서 라이트를 켜고 오는 트럭이 보인다.
그렇게 대략 15대 정도의 트럭이 아주 천천히 지나가고, 첫 트럭이 다시 되돌아오는 15분 정도의 공백이 생긴다. 이후, 트럭 속도에 따라 일정했던 연이은 줄은 간극이 생기게 되고,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 무한궤도를 연상시키는 트럭들의 움직임이 펼쳐진다. 마치 현장과 집을 오가는 덩치 큰 개미 굴레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의 역할은 무한궤도 위를 지나는 트럭을 통제한다기보다는 다른 데 있다.
이미 트럭기사들은 대부분 베테랑이라서 복잡한 현장이라도 자신들만의 룰로 별 사고 없이 잘 진행시키기 때문에 통제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마치 일정한 패턴이 나타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일정한 패턴을 방해하는 인자이다.
바로 지역민, 지역민 차량, 그리고 동네 강아지...
오가면서 하나하나 물어보는 사람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지역민 차량들,
게다가 따뜻한 햇빛 찾아 마음껏 돌아다니는 강아지,
이중 가장 신경 쓰였던 것은 지역민 차량이었다.
트럭이 코앞으로 지나가는데 자신의 차량이 먼저 가길 바라는 지역민 차량 때문에 늘 신경 쓰였다.
게다가 어떤 차량주는 신경질까지 낸다. 자기가 지나갈 길을 왜 막아서냐고 말이다.
그때는 그저 '죄송합니다. 양해 바랍니다'라고만 고개 숙여 말한다.
12일을 일했다.
일을 하는 동안 어떨 땐 지겹고,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서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금방 지난 것 같다.
이제는 전보다 자연스러워졌고, 하는 일에 대해 버거움은 없어진 지 오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일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나는,,,,
미리 했던 고민을 뒤로한 채 직접 현장에 뛰어 들어보니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의 한 과정이라는 믿음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