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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삼 Sep 02. 2019

유치원 개학날 첫날

오늘은 조금 시니컬한 글을 쓰고자 한다.

보통은 남에게 들려주고 싶은 글, 남과 소통하고 싶은 글을 쓰는 데 글이란 가끔 시니컬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유치원 2학기 개학날 첫날,

딸아이 하원을 시키기 위해서 유치원엘 갔다. 딸아이를 데리고 나오려는 데 담당 방과 후 선생님께서 오늘 있었던 일을 말씀해 주셨다.

개학 첫날에 내 딸이 다른 친구와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먼저 내 딸이 유치원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는데, 전부터 서로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이가 다가와서 건반을 누르면서 방해를 했다는 것이다. 이에 내 딸아이는 하지 말라고 약간 밀치는 행동을 했다고 한다.

이 모습을 본 선생님은 아이들 둘을 불러서 타일렀다고 한다.


개학 첫날부터 또 그 아이와 트러블이다. 왜일까?


선생님은 아이 스스로가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나는 지난 시간을 고려했을 때, 아이들이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갔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둘이 정말 싫어하거나 서로가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본다.


마냥 지기 싫어하는 내 딸만 꾸중해야 할까? 그렇다고 남의 자식을 함부로 꾸중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오늘도 내 딸아이에게 그 아이를 피하라고만 말을 하고 있다. 웬만해서는 그리 말을 하지 않는데 가능하면 작고 큰 트러블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리 말한다. 그러나 이 또한 해결책은 아닌 듯싶다. 혹여라도 초등학교 진학 시 같은 반이라도 되게 되면 그때는 더 심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도 든다.


일반적으로 청소년 시기에 지배 의식이 강한 편인데 서로 안 좋은 아이들을 화해시키려고 같은 반에 두면 사태가 더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주로 갑을 관계를 이루며 장시간의 학창생활을 하게 된다. 누군가는 군림하고 누군가는 지배되는 그런 상황을 말한다. 그 속에서 군림했던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서 여전히 군림하려들고, 지배된 아이는 피해의식 때문에 힘들게 사는 경우도 있다.


유치원에서 가르치는 방식에 뭐라 토를 달고 싶지는 않지만, 늘 아이들에게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는 방식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이는 1학기 때와 지금 2학기 때가 달라지고 있는데 선생님의 가르침은 늘 똑같다.

서로가 잘한 것 없으며, 서로가 이해를 하고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모범적인 답만 아이들에게 가르치는데 사실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아이에게는 매우 억울한 처사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서지 않는 것이 좋겠지? 아이들 싸움에 어른들이 나서는 것만큼 추한 것은 없으니까.


오늘은 딸아이를 꾸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딸은 아빠가 아무 말하지 않는 것이 조금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딸, 네가 생각할 때 네가 잘못한 것 같니?"
"아니요. 그 애가 먼저 저를 방해했어요"
"그래, 잘 알고 있어, 그러니 신경 쓰지 마, 알았지? "
"네"


선생님들의 논지에 따르면 잘못을 하지 않았어도 상대로 인해 트러블이 생기면 서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식이다. 사고를 저지르지 않고 당했던 아이도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 뭔가 이건 아니다 싶다.

특히, 잘 놀고 있는데 자리를 빼앗는 아이 때문에 트러블이 생겨도 원래 잘 놀고 있던 아이가 자리를  빼앗는 아이를 친절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그 점도 잘못이라고 훈계를 한다. 그렇다면 힘 있는 아이가 힘을 과시하면 그냥 그렇게 물러서라고 가르치는 것이 현명한 것일까?


쉽게 풀어쓸려니 더 복잡해진다.


다시 나의 어조로 이야기하자면,

피의자가 잘못했음에도 피해자가 피의자에게 선의로 대하지 않았다고,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징벌을 같이 준 셈이다. 이경우, 피의자의 경우 자기 자신의 행동에 잘잘못을 판단하기 쉽지 않게 된다. 오히려 같이 벌을 받는다면 피해자보다 피의자가 더 나은 꼴이 되어 오히려 계속적으로 문제 유발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사고뭉치가 더 활발한 사회, 피해자가 더 머리 숙여 살아야 하는 사회, 어쩌면 유치원에서 갑을 관계를 형성하는 단초를 마련하지 않나 싶다.


가정교육이 가장 중요하지만, 체계를 갖추고 있는 학교 교육은 더욱더 중요하다고 본다. 실제 어린아이들에게는 부모보다 선생님에 대한 경외감이 더 높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되돌아봐도 피의자가 피해자보다 더 자유로운 세상이 된 듯하여 씁쓸하다. 오히려 제2차적 피해가 두려 그런 세상.


이런 모습은 민주주의 사회를 표방하는 우리나라의 모습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자랑스럽게 살아가고자 한다면, 가장 기본이 되는 초석부터 민주주의적인 모습으로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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