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선호 Apr 05. 2016

그 남자의 일기장

벚꽃 - 2.1

2010년 3월 3일 

< 나도 그러니까, 너도 그러길. > 


뒤에서 나의 체육복을 잡고 있는 그 여학생 때문에 심장이 멈출 줄 몰랐다.



아침부터 내린 봄비는 그칠 줄 몰랐고 점심시간이 지나 체육시간인 지금까지 내리고 있었다.

강당에 모여 대열을 갖춘 채 준비운동 동작을 따라 하기 위해 우리 반 친구들은 선생님에게 

시선이 고정되었을 때 나는 조금씩 그 여학생에게 시선이 옮겨졌다.

간단한 준비운동 동작들조차 어색해 보일만큼 뻣뻣하게 움직이는 그 여학생의 

몸짓에 조금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운동이 끝났고 오늘은 첫 체육시간이기도 하고 같은 반 친구들끼리 

어색할 테니 친해지자는 의미로 짝피구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선생님께서 제안했다.

비가 내리는 운동장을 보면서도 남학생들은 축구를 하고 싶다고 말을 했지만 그 의견은 

당연하다는 듯 기각되었고 선생님은 남학생 여학생 각각 번호순대로 줄을 새웠다. 

바로 옆에 있는 여학생이 짝이 되기로 하자는 선생님의 말에 누가 나의 짝이 되었을지

궁금해 고개를 돌렸는데 내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관경이 펼쳐졌다.

내 옆에 서있는 사람은 그 여학생이었고 처음으로 목소리도 듣게 되었다.


' 나 피구 정말 못하는데... 그래도 잘 부탁해. '


조금은 미안하다는듯한 그 여학생의 목소리와 표정이 내 눈과 내 귓가로 흘러 들어왔고 무슨 말을 

해줘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져 내 입에서 말이 나오기 전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 괜찮아, 뒤에서 내 체육복만 꼭 잡고 있어. ' 


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다시 정면으로 돌렸고 심장이 뛰는 소리가 혹시나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을까 라는 걱정이 될 만큼 크게 내 몸을 울리고 있었다.


' 자 팀은 홀수팀 짝수팀 이렇게 할 거고 그려져 있는 선으로 들어가서 시작하면 되겠다. '


라는 선생님의 말에 모든 학생들은 각자 위치로 이동했고 피구를 시작하기 위해 호각을 불었다.

그 호각소리에 어색하게 공을 던지고 주고받으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조금은 몸이 풀렸다는 듯

공을 주고받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에게 공이 날아와 양손으로 잡았는데 

순간 체육복이 꽉 움켜쥐는듯한 느낌을 받아서 뒤를 돌아보았는데 살짝 놀란듯한 얼굴이 보였다. 

나는 같은 팀 남학생에게 공을 넘기며


' 내가 다 막을 테니까 꼭 잡고만 있어, 알았지? '


라고 조용히 말했고 그 말을 들은 여학생은 조금은 안심이 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의 이전글 그 남자의 일기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