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육상 선임이라고요?

[좌충우돌, 국제 도핑검사관 활약기]

by 이건

드디어 근무표가 나왔다. 앞으로 10일 동안 하노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발표에 다들 살짝 긴장감이 맴돈다.


검사관의 업무는 같아도 배정받은 종목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어떤 곳에 배정받느냐는 삶의 질과 행복지수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보디빌딩, 수영, 복싱, 육상은 체중조절이 필요하거나 땀을 많이 흘리는 종목들로 소변시료를 제공하는 시간이 길어 검사관들이 대체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특히 수영과 육상은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현장에서 더 많이 긴장해야 하고 자칫 한눈을 팔다가 검사 대상 선수를 놓칠 수도 있다.


보통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해당 선수에게 도핑검사 대상자라는 것을 통지하고 선수의 권리와 의무를 이해했다는 서명과 관련 서류를 작성해야 하지만 수영의 경우에는 선수의 온몸에 물이 묻어 있어서 옷을 갈아입은 후에야 비로소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추가로 챙겨야 하는 일도 늘어난다.


그동안 짧지 않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소위 꿀 빨았다는 황금 보직을 받아본 적이 많지 않은 까닭에 설마 이전에도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거야? 모두가 나를 보며 큰 환호성을 보낸다.


"What’s happening? 하지 마… 무슨 일인데 다들 박수를 치는 거야?"


"어. 미스터 이가 육상 선임이래. 축하해." 싱가포르에서 온 검사관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한국의 검사관들도 빡세게 하고 오라며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온다.


전체 도핑검사에서 육상 종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크다. 그 의미는 일이 매우 바쁠 것이라는 이야기고 바쁜 만큼 실수를 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제 갓 훈련을 마치고 배치된 신임 베트남 검사관들을 어떻게 지원해야 할 지도 고민해 봐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오게 된 이번 하노이 여정은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 큰 행운이다. 하나의 일에 또 다른 일을 더해 삶의 의미를 배가시킨다는 평소의 소신에 맞는 임무가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제가 육상 선임이라고요?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