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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 Feb 17. 2020

나도 샤론 최처럼 영어를 잘하고 싶다.

그의 차원이 다른 영어가 부럽다.  

차원이 다른 영어다. 

Sharon Choi. 영화 '기생충 (Parasite)'의 열풍이 지구촌을 달구는 동안 봉준호 감독 옆을 내내 지킨 25세의 그녀를 보며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가 전문 통역사도 아닌 영화감독이란다. 그런 그녀를 가리켜 봉 감독은 "Perfect translator in the world "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주한미군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했지만 영어는 언제나 내게 큰 장벽이었다. 나는 매번 그 장벽을 뛰어넘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교묘한 스킬들로 비켜 가려고만 했다. 같은 업무를 오래 하면서 생기는 눈치로도 피해 갔고, 또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들리지 않으면 중요치 않다고 마음속으로 단정해 버리기도 했다.  


주한미군에는 의외로 많은 한국인 직원들이 '영어 울렁증'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제때 영어로 표현하지 못해 우울해하기도 한다. 부대 밖에서는 자신의 존재감을 충분히 인정받는데 왠지 부대에 출근만 하면 말수가 줄어들고 누군가의 입과 귀를 빌려야만 하는 '기생충'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미 공군 오산기지 소방서장의 통역을 맡기도 했다.


그런 좌절감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영어를 공부했다. 그래서 나에게 영어는 단순히 제2외국어의 차원이 아니라 나를 지켜주는 생존의 수단이자 미국인들에게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기도 했다.   


2017년 아부다비 국제기능올림픽 대회에 함께 참여한 대한민국 국가대표 전담 통역요원들.


2019년 러시아 카잔 국제기능올림픽 대회에서 독일, 일본 통역과 함께.


그동안 크고 작은 행사에 자원봉사 통역으로 참가한 경험이 있다. 전문 통역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만 해도 될 거라고 스스로에게 방어막을 친 채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통역을 했다.


굳이 변명을 덧붙이자면, 보통은 3일 전에 회의자료가 주어져 관련 내용을 미리 공부하고 통역에 들어가야 하지만 매번 즉흥적인 통역이 요구되었으니 상당한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약간의 반항심도 한몫했던 것이 사실이다.


샤론 최가 얼마나 일찍 인터뷰 관련 내용을 전달받았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떠나 그녀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열정적으로 통역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심 묘한 질투심을 느꼈고 그 질투가 존경심으로 바뀌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발음도, 영어를 곧잘 하는 봉준호 감독이 말을 할 때에는 옆의 배우에게 속삭이면서 (whispering) 그가 대화에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내용을 전달해 주는 배려와 센스도, 오랜 시간 통역을 하면서도 잃지 않는 집중력, 세련된 어휘 선택, 빠른 스피드, 그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다.


이제라도 사과하고 싶다.

그동안 공식 또는 비공식 통역으로 참여하면서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샤론 최를 보면서 내심 부끄러웠다. 내가 통역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생각난다. 헤어디자이너, 목공 국가대표, 필리핀과 한국인 소방관들, 부대 직원들,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  


이 지면을 빌려 그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매끄럽게 그분들의 뜻을 전달하지 못해서, 그래서 본의 아니게 고민을 깊게 해 드린 점도...  

  

나도 샤론 최와 같이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고 싶다. 근본적으로는 그녀처럼 열정을 가지고 잔기술이 아닌 정석으로 부딪혀 나가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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