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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 Jan 11. 2020

주한미군 10년, 없던 꿈이 생겼다.

진짜 소방관이 되고 싶다. 

2005년. 지금의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소방서로 자리를 옮긴 뒤 나는 모든 교육을 다시 받아야만 했다. 그동안 내가 서울에서 소방공무원으로 일하며 받은 교육들이 이곳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함께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되었던 동기들은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텐데... 나는 낯선 곳에서 30대 중반의 나이에 다시 막내가 되었다.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했지만 우선 영어가 문제였다. 


주한 미 공군은 미 육군과는 다르게 *카투사(KATUSA)가 없다.  


*카투사란 'Korean Aug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로 주한 미 육군 부대에 배속된 한국군을 말한다. 1950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의 합의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주한 미 육군의 임무를 지원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카투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병무청 홈페이지 참고 (http://www.mma.go.kr/contents.do?mc=mma0000525)



주한 미 육군에서는 카투사들이 전방위에 배치되어 일을 하기 때문에 내가 영어를 잘하지 못해도 업무를 처리하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었는데, 막상 미 공군에 오니 대부분의 부서에서 미군들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어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그렇게 나는 '잘 웃는 사람 좋은 바보'가 되고 말았다.   


행운이었을까?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미국 출장길에 오르게 되었다. 저 멀리 텍사스 외곽에 위치한 샌 앤젤로(San Angelo)까지는 비행기를 무려 3번이나 갈아타야 한다.


그곳에 미 국방부 소방학교, 'Louis F. Garland Fire Academy'가 있다.

    

미 국방부 소방학교의 아침. 10년 차 소방관이었던 나는 이곳에서 비로소 진짜 소방관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오전 6시. 교육생의 하루가 시작된다. 


넓은 부지와 다양한 훈련시설을 갖춘 이 곳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소방학교 중 하나다.


"누군가의 목숨이 거기에 달려있는 것처럼 훈련하라.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 (Train as if someone's life depends on it... IT DOES.)"라는 모토를 내걸고 150명의 교관이 매일같이 땀을 흘리며 혹독한 훈련을 통해 진정한 프로페셔널을 만들어 내는 이곳에서 10년이 넘은 구제 소방관의 마음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을 살리는 진짜 소방관'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2009년. 서울 서초동에 있는 서울소방학교에서 강의를 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드디어 보잘것없던 내 인생에 한 줄기 빛이 찾아온 것이다. 그때가 내 나이 마흔 살이 막 되었을 즈음이다.


제일 말단 소방공무원으로 고작 6년 1개월을 보냈던 변변치 않은 경력을 가진 내가 감히 누군가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내디딘 걸음이 올 해로 10년째. 그렇게 나는 진짜 소방관이 되어가고 있었다.     


누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10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옳다 혹은 그르다는 학자들의 연구가 서로 엇갈리지만 적어도 나는 '10년의 법칙'을 믿는다.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 보니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게 얼추 10년은 걸린 것 같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끈질김이 부족했던 나는 장편소설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할 정도로 인내심이 부족한 편이었다. 매번 이것 조금, 저것 조금,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시행착오로 점철된 20대와 30대 초반을 보냈다.


그리면서도 "나에게 실패는 언제나 당연한 거야. 내가 무엇을 해도 잘 안 되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지."라고 위로하며, 그래도 너무 아파하지 말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 적어도 내 삶에 대한 도리라고 믿었다.      


살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꿈이라는 녀석은 아주 깊숙이 숨어 있더라. 부지런히 쫓지 않으면 자기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아주 공평한 아이더라. 오로지 한 곳만 바라보니 때로는 같이 길동무도 해 주더라."


나이 50이 되어서야 깨달은 '꿈'의 정의다.  


이미 정해져 있는 길을 걷는 것은 누구나 해볼 만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맞는 길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전혀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  


"사랑하는 후배님들, 사는 게 힘들지? 도전하는 일도 두려울 거야. 준비도 해야 하니까..." 


그냥 한마디 거들면, "고생해라. 열심히 뛰어다녀라. 혹시 아나? 그 꿈이 요 앞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는지. 잠시만 있으려고 했던 주한미군에서 나처럼 꿈을 만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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