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건 Jan 23. 2020

주한미군 영어 이야기 (2)

미국 석사학위에 도전하다. 

사실 처음 오산 미 공군기지에 출근했을 때 너무나 많은 미군들을 보면서 분위기에 압도당했었다. 이곳에 오기 바로 직전 근무했던 강원도 춘천의 미 육군 캠프페이지 (CAMP PAGE)는 아담한 사이즈의 부대로 미군들의 숫자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다. 거기에 당시 이라크 파병까지 겹쳐 상당수의 미군들이 빠져나가면서 미군 한 명을 만나려면 소방서 앞에서 1시간은 족히 서 있어야 만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오산은 규모면에서 클래스가 다르다. 마치 미국의 한 도시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다. 소방서, 학교, 유치원, 교회, 아파트, 호텔, 식당, 골프장, 수영장, 볼링장 등 모든 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사무실에 출근하고 처음 며칠 동안은 전화벨 소리가 무서웠다.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전화만 오면 수화기를 미군에게 건네기 바빴다. 그렇게 무거운 부담감이 이어지던 3일째. 힘들어도 두려움의 벽을 허물어야만 한다고 결심했다. 먹고살기 위해서...


그때부터 전화를 받으면 무조건 "미안하다. 내가 영어를 잘 못한다. 다시 한번 말해달라. 그쪽 위치가 어딘가? 내가 찾아가겠다." 


애원에 가까운 진심이 통했을까? 가끔은 수화기 너머로 선의의 웃음소리도 들려온다. 그렇게 양해를 구하고 또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부딪히다 보니 조금씩 자신감도 붙고 하나둘씩 아는 단어도 늘어났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이왕 할 공부라면  미국 대학원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평생 이곳에 있어야 한다면 영어라는 산은 반드시 넘어야만 할 과제였기 때문이다.

 

"혹시 하버드 대학교는 사이버 과정이 없을까?"라는 다소 황당한 생각으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찾은 학교가 앨라배마주에 위치한 원격대학 'Columbia Southern University'다. 


수업을 100퍼센트 원격으로 진행하니 한국에서 일하며 공부할 수 있는 데다가 소방분야를 포함한 안전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전공이 마련되어 있어서 나로서는 망설일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38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산업안전보건학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석사를 시작했고, 마치기까지 4년 3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받은 미국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예전의 나는 모 지방대 관광학과 2년 중퇴, 소방공무원 6년, 그리고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가진 것이 전부였다. 하고 있는 일과 자격증, 그리고 학력이 제각각인 어설픔 그 자체다.


주한미군에서는 다양한 '짬뽕 경력'보다는 한 분야에 대한 학력과 경력, 그리고 자격증을 요구한다. 그래서 내 석사 전공은 내 몸값을 높이기 위한 다분히 전략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미국 석사를 진행하면서 두 번 정도 고비도 있었다. 과제로 냈던 에세이 내용이 형편없다며 교수님으로부터 빵점을 받은 적도 있다. 학창 시절 아무리 공부를 안 했어도 0점은 받은 적이 없었는데...


그렇게 고비를 넘기며 우여곡절 끝에 대학원을 마치고 미국 소방대원 자격증에도 도전했다. 확실히 석사 공부를 해서 그런지 자격과정은 상대적으로 수월해 현재까지 27개의 자격 (Certificate)을 취득할 수 있었다.


미국 소방서장 자격과정인 Fire Officer IV를 수료하고 함께 한 동료들과 추억을 담았다.  


UN에서 Job Offer를 받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름 노력해서 미국 석사학위와 자격증을 취득하긴 했는데 이게 정말 쓸모가 있을까... 그러던 중 혹시나 하는 마음에 UN에 지원을 했는데 정말 UN에서 Job Offer가 온 것 아닌가.


학력과 경력, 그리고 자격증이 하나의 분야로 정리가 되니 일어난 변화였다.  


"첫 근무지가 어디인가요?"라는 질문에 담당자는 무심히 콩고 민주공화국이라고 말한다. 어떤 나라인가 싶어 물으니 "내전이 진행 중이며 반군이 밀림을 점령하고 있고... 당연히 가족은 동반할 수 없으며 정치상황이 불안한 관계로 6개월마다 재계약을 해야 한다."는 말에 미안하지만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물론 더 잘 준비되고 봉사하고자 하는 분이 그 포지션에 선택되셨으리라 믿는다. 비록 일이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다시 생각해도 감사한 일이다. 아무런 꿈도 없던 내가 그렇게 소중한 임무를 제안받았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 전 잠시 들렸다가 떠나려고 했던 주한미군.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없이 해야만 했던 영어공부. 그렇게 주어진 환경과 부딪히며 또 순응하며 따르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인생이란 참 신비롭다. 주한미군에서 영어공부를 한 것이 또 다른 시작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전 03화 주한미군 영어 이야기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