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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 Feb 13. 2020

내가 주한미군에서 배운 것들

남이 아닌 나로 산다는 것 

자신의 몸 절반 가량이나 되는 큰 가방을 메고 힘겹게 소방서로 걸어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한눈에 봐도 어린 티가 물씬 나는 그는 신입 미군 소방대원이다. 올해로 18세가 되었다는 그는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싶어 군대에 입대했고 소방관이 되고 싶어 자원해서 공군에 지원했다고 한다.


오른쪽 두 번째에 서 있는 친구가 바로 우리 소방서 막내다.


한국이 처음이라는 그는 사실 한국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한다. 아는 것이라고는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온 가족이 자신을 위해 무사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했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그를 보면서 순간 웃음이 나긴 했지만 그냥 그 진지함에 묻어가기로 했다.  


나는 그 나이에 무엇을 했을까?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친구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디자인해가는 모습이 참으로 대견하다. 나 역시 같은 시기를 보낸 남자로서 적지 않은 충격도 받았다.


요즘 중학교 3학년인 아들과 초등학교 5학년인 딸에게 비슷한 주문을 하고 있다. 너희들도 18살부터 독립할 준비를 하라고...


가족이 먼저다.

언젠가 미 육군 주임상사 Donald 씨로부터 부부동반 모임에 초청을 받은 적이 있다. 사실 한국에서는 부부가 함께 모임을 할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그래도 초대를 받았으니 아내를 모시고 조금 일찍 그의 집에 도착했다.


후덕해 보이는 인상의 Donald 씨 아내분이 따뜻한 환영의 인사말을 건네 온다. 연이어 예쁜 아이가 반갑다며 허그도 해 준다. 잠시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침 Donald 씨가 퇴근해서 들어온다.


반가운 악수가 오고 간뒤 그는 군복도 벗지 않은 채 쓰레기봉투를 정리해서 밖에 버리러 나간다. 사실 주임상사라는 직책이 결코 낮은 계급은 아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수 십 명이 울기도 하웃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그가 집에 오자마자 집안일부터 챙기는 모습이 파티가 끝날 때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네... 다른 사람에게 잘하기 이전에 가족에게 먼저 잘하는 게 순서가 맞네." 한국 사회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승진을 도맡아 하면서 승승장구하는 선배가 부러웠다. 외제차를 타며 은근히 부를 과시하는 선배에게는 질투심도 느꼈다. 주식으로 돈을 잘 번다는 선배는 넘사벽이었다.  


가족은, 그리고 가정은 큰 노력 없이도 그저 항상 옆에 있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밖에서 열심히 돈만 벌어오 가장으로써 책임을 다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소방서를 방문해 준 예쁜 공주님.


그날의 소중한 만찬을 통해 가족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에는 어떤 노력과 실천이 선행되어야 하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 그의 나이를 살아가고 있다. Donald 씨로부터 받았던 그날의 교훈을 기억하며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다.

 

내 인생 내가 산다.

어느 날 용접작업을 한다는 요청을 받고 안전검사를 위해 부대 사령관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평일 오전 9시.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 넷이 모두 집에 있다. 방학인가? 아니면 오늘이 공휴일인가? 


주택 관리자로부터 사령관 부인이 유치원 아이부터 고등학생까지 혼자서 자녀 넷을 홈스쿨링 한다고 설명해 주기 전까지 궁금함은 계속되었다.


참, 신선하다. 우리였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더 이름 있는 학교에 보내 주변에서 부러워하는 브랜드를 가진 아이로 만들려고 했을 텐데...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을 정말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역설적으로 더 인생을 소중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내가 보는 나'가 아닌 '남이 바라보는 내'가 더 중요했던 나에게 또 한 번 깨달음의 망치가 머리를 '딱' 하고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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