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시 30분. 어김없이 미군들의 함성이 아침을 깨우고 있다. 누구는 조깅을 하고, 팀별로 미식축구도 하는가 하면, 삼삼오오 모여 크로스핏도 진행한다. 15년째 이 광경을 지켜본 덕분에 나름 충만한 동기를 부여받아 운동의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사람마다 운동하는 수만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체중감량도 좋고, 누군가는 몸짱을 꿈꾸고, 또 대회에 출전해 메달도 따고 싶을 것이다.
현장활동이 많은 소방관들에게 자기 관리는 필수다.
주변의 소방관 후배들에게 왜 운동을 하는지 물으니 여러 가지 답변이 돌아온다.
"우리가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아프니까 우리가 더 건강해야 하지 않을까요?" (5년 차 구급대원)
"다른 사람을 구하고 나의 안전도 챙기려면 강한 체력이 필요해서요." (1년 차 진압대원)
"저는 몸짱이 되어 소방관 화보를 찍어보려고 합니다." (3년 차 구조대원)
보통 내 나이 또래면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왠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좋은 스포츠라는 것은 분명한데 시간도 그렇고 돈도 여유가 없다. 또 게임을 흥미진진하게 한다며 내기를 하는 것도, 18번 홀을 마치고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19번 홀 (식사 자리, 술자리 등)도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달린다. 운동을 하기 위해 예약할 필요도 없고 그냥 운동화 하나만 있으면 된다. 그렇게 30분을 달리고 난 뒤 소방서 체육관에서 가볍게 웨이트로 마무리. 하지만 내 운동의 목표는 식스팩이 아니다.
몸과 마음을 단련시킬 수 있는 이곳이 나는 참 좋다.
그럼 왜 운동하냐고?
바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서다. 예전에 몸도 마음도 약했을 때는 별스럽지도 않은 스트레스를 가족이나 친구에게 푸는 경우가 있었다. 누구보다도 나를 위해주는 사람들인데 오히려 내 편에게 상처를 주어 상황을 악화시키는 '바보짓'을 하고 만 것이다.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나를 단련시킬 것인지, 세련되게 스트레스를 해소할 것인지도... 그래서 달리고 또 달리면서 스스로와 대화를 나눈다. 솔직하게 내 마음과 소통하고, 위로하고, 또 결심도 한다. 그런 시간을 통해 사람이든, 일에서 비롯된 것이든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하늘로 훨훨 날려버리고 가족도 친구도 지켜내고 있다.
유니폼에 잘 어울리는 몸이면 된다.
내가 운동하는 또 다른 이유는 유니폼에 잘 어울리는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25년 동안 소방관으로 근무하면서 계속 유니폼만 입었다. 그래서 변변한 정장 한 벌 없다.
유니폼은 유일하게 나를 잘 표현해 주는 옷이다. 20대 중반에서부터 지금의 내 나이까지 25년의 시간이 묻어있다. 그러니 이 소중한 유니폼에 내 몸을 맞추는 것은 당연한 예의가 아닐까?
이 옷을 입으면 내가 누군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옷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2018년 바뀐 대한민국 소방관 근무복의 모델이 바로 이 유니폼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비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