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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 Feb 15. 2020

내가 운동하는 이유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기 

05시 30분. 어김없이 미군들의 함성이 아침을 깨우고 있다. 누구는 조깅을 하고, 팀별로 미식축구도 하는가 하면, 삼삼오오 모여 크로스핏도 진행한다. 15년째 이 광경을 지켜본 덕분에 나름 충만한 동기를 부여받아 운동의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사람마다 운동하는 수만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체중감량도 좋고, 누군가는 몸짱을 꿈꾸고, 또 대회에 출전해 메달도 따고 싶을 것이다. 


현장활동이 많은 소방관들에게 자기 관리는 필수다.


주변의 소방관 후배들에게 왜 운동을 하는지 물으니 여러 가지 답변이 돌아온다.  



"우리가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아프니까 우리가 더 건강해야 하지 않을까요?" (5년 차 구급대원)

"다른 사람을 구하고 나의 안전도 챙기려면 강한 체력이 필요해서요." (1년 차 진압대원)

"저는 몸짱이 되어 소방관 화보를 찍어보려고 합니다." (3년 차 구조대원)



보통 내 나이 또래면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왠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좋은 스포츠라는 것은 분명한데 시간도 그렇고 돈도 여유가 없다. 또 게임을 흥미진진하게 한다며 내기를 하는 것도, 18번 홀을 마치고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19번 홀 (식사 자리, 술자리 등)도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달린다. 운동을 하기 위해 예약할 필요도 없고 그냥 운동화 하나만 있으면 된다. 그렇게 30분을 달리고 난 뒤 소방서 체육관에서 가볍게 웨이트로 마무리. 하지만 내 운동의 목표는 식스팩이 아니다.


몸과 마음을 단련시킬 수 있는 이곳이 나는 참 좋다. 


그럼 왜 운동하냐고?


바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서다. 예전에 몸도 마음도 약했을 때는 별스럽지도 않은 스트레스를 가족이나 친구에게 푸는 경우가 있었다. 누구보다도 나를 위해주는 사람들인데 오히려 내 편에게 상처를 주어 상황을 악화시키는 '바보짓'을 하고 만 것이다.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나를 단련시킬 것인지, 세련되게 스트레스를 해소할 것인지도... 그래서 달리고 또 달리면서 스스로와 대화를 나눈다. 솔직하게 내 마음과 소통하고, 위로하고, 결심도 한다. 그런 시간을 통해 사람이든, 일에서 비롯된 것이든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하늘로 훨훨 날려버리고 가족도 친구도 지켜내고 있다.    


유니폼에 잘 어울리는 몸이면 된다. 

내가 운동하는 또 다른 이유는 유니폼에 잘 어울리는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25년 동안 소방관으로 근무하면서 계속 유니폼만 입었다. 그래서 변변한 정장 한 벌 없다.



유니폼은 유일하게 나를 잘 표현해 주는 옷이다. 20대 중반에서부터 지금의 내 나이까지 25년의 시간이 묻어있다. 그러니 이 소중한 유니폼에 내 몸을 맞추는 것은 당연한 예의가 아닐까?


이 옷을 입으면 내가 누군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옷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2018년 바뀐 대한민국 소방관 근무복의 모델이 바로 이 유니폼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비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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