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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 Mar 04. 2020

트로피의 의미

내 이름이 불렸다.  

어떤 일에 대해 칭찬을 받는다는 것, 그것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정식으로 내 이름이 불리고 그 공로를 인정받는 일 쑥스럽긴 해도 여전히 기분 좋은 일이다.


2005년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소방서로 자리를 옮긴 뒤 크고 작은 상을 많이 받았다. 학교 다닐 적에는 도통 상 받을 일이 없었는데 인생 중반에 접어들어 이런 일이 생기니 살짝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작아 보관하기가 어렵다는 아내의 권고성 지시에 따라 그동안 받은 트로피를 고이 포장해 사무실로 모셔왔다. 헤아려보니 대략 20여 개. 그런데 사무실 공간 역시 충분치 않다.

 

아직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한 트로피들


다행히 최근 개업한 후배가 미국 소방대원 모형물이 필요하다고 해서 내 이름표만 떼고 3개의 트로피를 그에게 분양해 주었다. 거기에 지난번 미군 한 명이 짐을 옮기다가 실수로 깨트린 트로피도 공간의 협소함을 일정 부분 해소해 주었다. 연신 미안하다며 어떻게 보상을 해야 하느냐고 물어왔지만 고민을 덜어준 그가 고마웠다. "더 세게 짐을 밀었어도 나쁘진 않았을 텐데..."


트로피 외에도 감사패, 그리고 Letter 사이즈 종이에 구구절절 고맙다는 이야기가 적힌 사령관의 서명이 담긴 감사편지, 패치와 코인을 모두 합하면 아직도 공간이 더 필요하다.


봉준호 감독도 부럽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지난달 아침 조회에서는 한 번에 트로피를 3개나 받았다. 오스카 시상식을 연상케 하듯 연거푸 내 이름이 불리고 들락날락하며 상을 받으면서도 이 트로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내가 가왕 조용필도 아닌데 앞으로는 상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난달 아침 조회에서 받은 트로피 3개. 감사와 고민의 중간쯤에 서 있다.


언젠가 정약용 선생이 "공직자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도록 평상시 짐을 가볍게 하라"고 하셨는데... 그렇다고 내다 버리기엔 트로피에 담긴 의미와 정성이 각별하다.


소방관은 계급을 떠나서 평생 동안 자신이 한 일의 양과 질로써만 평가받는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동안 받은 트로피는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결코 틀리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나침반과도 같다.


트로피가 트로피 다울 수 있도록...

예전에는 트로피를 받으면 그 크기와 모양에 따라 감동의 정도도 달랐었다. 사이즈의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의미와 인정받음이 감사한 일인데 그 부분을 소홀히 했었다.  


조만간 시간을 내서 트로피들을 다시 정리해 봐야겠다. 트로피가 지닌 의미에 보답할 수 있도록 일의 방향도 다시 한번 점검해 볼 생각이다.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정리는 필요하다.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트로피를 선뜻 받아 주는 곳은 없겠지만 리사이클링 차원에서라도 어딘가 의미 있는 자리에서 활용할 수 있는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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