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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 Mar 07. 2020

그 길에 내 이름을 붙이고 싶다.  

미국의 땅 한 모퉁이에 이름을 새기다. 

2011년. 텍사스 샌엔젤로(San Angelo)에 위치한 미 국방부 소방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2주간의 교육이 끝나갈 무렵 미군 한 명이 다가와 교육생들에게 10달러씩 내라며 너스레를 떤다.


"아마도 교관에게 감사패를 선물할 모양이지?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교육생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새겨진 기념석이 도착한 것이다. 어떤 일을 기념하는 미국인들의 방식은 역시 남다르다. 큰돈 들이지 않으면서도 나름의 의미를 담는 소박한 행복의 맛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일까?  


수료식을 마치고 학교 한 모퉁이에 모여 기념석을 땅에 묻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기념석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누가 다녀갔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작은 소방 역사박물관이라고나 할까?


2주간의 소방검열관 고급과정을 마치고 기념석을 묻기 전 동기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교육생 대표가 땅에 기념석을 묻는 장면. 옆에 보이는 붉은색 벽돌에도 다른 과정을 수료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시간이 흐르고 2017년 다시 방문한 소방학교. 아직까지 기념석이 남아 있는지 궁금했는데 조금 빛이 바래기는 했어도 여전히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 이만하면 나도 사람이 된 건가? 낯선 땅 미국에 이름을 남겼다. 


빛이 바랜 기념석 제일 아래 Mr. Yi Kon, Osan AB, KOR가 보인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는데 언제부턴가 또 다른 욕심이 생긴다. 


이 길이 탐이 난다.

오산기지 안에는 다양한 이름의 도로들이 있다. 보통 누군가의 이름이거나 잘 알려진 지명을 본뜬 것들이다. 예를 들면 'Alabama Road, Colorado Road, Songtan Blvd' 등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소방서 앞에도 'Terminal Road'란 이름의 도로가 있다. 아마도 소방서 옆에 지어진 공항을 염두에 두고 붙여준 이름일 것이다.


소방서에서 나가는 방향의 'Terminal Road'.


소방서로 들어오는 방향의 'Terminal Road'.


A lot of good memories here... 

지난 15년간 수도 없이 이 길을 지나다녔다. 운전을 하거나 때로는 달리거나, 그리고 지금은 미국으로 입양을 간 소방서 강아지 다비 (Dobby)와도 산책을 하며 걸었던 길.  


그렇게 예쁜 길은 아니지만 그동안 이 길을 오고 가며 무수히 많은 고민과 결정을 했다. 물론 대다수는 업무에 관한 것들이다. 누군가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오고 갔던 이 길이 언제부턴가 탐나기 시작했다. 


'Terminal Road'란 이름이 왠지 성에 차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크게 별일이 없다면 앞으로 19년은 더 다녀야 할 길이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 하든 이 도로는 내 것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나만큼 오랜 시간을 이 길에서 보낸 사람도 없기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누군가의 안전을 위해 오고 갔던 이 길이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이 길에 'YI KON Road'라는 내 이름을 붙이고 싶다. 행여 'Fire Prevention Road' 정도라면 어느 정도 양보할 의사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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