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내가 포기했던 일이 한두 번도 아니니 그리 호들갑을 떨 일도 아니야."라며 스스로에게 힘 한번 실어주는 여유도 잊지 않았던 그때 나이가 30살. 결혼까지 해 놓고... 그때를 돌이켜 보면 '무계획에 좌충우돌'이란 표현은 진정 나를 위한 말이었구나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 당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캐나다로의 이민을 결심하고 하루하루 시간을 때우던 소위 '영혼 없는 공무원'이었던 나는 친한 선배의 소개로신이 숨겨놓은 직장 '주한미군(United States Forces Korea, 이하 USFK)'과 운명처럼 만나게된다.
6년이란 시간을 서울시 소방공무원으로 일하며 좋은 선배님들과 함께 출동했던 현장의 기억들은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보물이지만, 매년 반복되는 공무원이란 시계는 나의 정체성을 서서히 갉아먹고 있었다.
캐나다에 가기 전, 그것도 아주 잠시 동안만 주한미군에서 근무하며 영어실력이라도 키워보자던 나는 어느덧 19년째 이곳에 몸담고 있다.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참으로감사한 일들이 많다. 크지는 않지만 소망했던 꿈도 모두 이루었고 하루하루를행복지수 120퍼센트로 채워가는 풍성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돌연 이런 행복을 전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와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몇 마디쯤은 해 주고 싶은 말도 있는 것 같다.
이런 고민이 나를 브런치라는 공간으로 이끌었다.여기에서라면 주한미군에서의 소소한 일상과 생각들을 나눌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민폐를 무릅쓰며 이 공간을 잠시 빌리기로 했다.
주한미군에는 대략 12,000여 명의 한국인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정확한 법적 신분은 '주한미군에서 직접 고용한 한국인 직원 (USFK Direct-Hire Korean Employee)'이다.
간혹 자신을 미 군무원이라고 잘못 소개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표현이다. 미 군무원은 미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 미 국방부 소속의 군 기지 등에서 민간인 신분으로 근무할 때만 사용할 수 있으므로 주한미군 한국인 직원과는 그 신분 자체가 다르다.
1995년 서울 구로소방서를 거쳐, 2001년 강원도 춘천의 주한 미 육군 캠프페이지 (Camp PAGE) 소방서, 그리고 지금의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소방서 (경기도 평택 소재)에 이르기까지 소방관으로 근무하는 25년 동안 다른 소방관들과는 다르게 유니폼을 세 번이나 갈아입었다.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소방서에서 선임소방검열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나는 25년 차 소방관이다.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세 곳은 나름의 매력이 있다. 그래도 제일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고른다면 지금의 주한미 공군이 여러 면에서 나와 가장 잘 맞는다.
우선은 자신이 맡은 일에만 충실하면 되는 개인주의적이면서도 성과주의적인 직장문화가 그렇다. 공무원 시절과는 달리 불필요한 의전이나 행정이 없고 자기가 맡은 업무만 성실하게 처리하면 대체로 만사 오케이다. 이 점이 내 성향과 일치한다. 나와 궁합이 잘 맞는 직장을 만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텐데 행운도 큰 행운이 찾아온 셈이다.
두 번째로는 자기 계발과 사회봉사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모든 야구선수가 꿈의 구장 메이저리그를 동경하는 것처럼 대한민국 소방관을 거쳐 미국 소방에서 나를 계발하며 얻은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일은 정말 보람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주한미군은 나에게 직장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 곳이다. 일이 있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비로소 꿈이란 것도 꿀 수 있는 법이다. 내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던 직장은 나에게 좋은 것들로 보답해 주었지만, 직장에 큰 애정을 갖지 못하고 소홀히 대했을 때에는 어김없이 가차 없는 복수를 해 오기도 했다.
매일 행복하지만, 그래도 현실에서는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닐 때가 있다. 언어의 장벽, 그리고 문화와 정서가 달라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경우도 종종 있다. 또 안타깝지만 주한미군 한국인 직원들에게는 노동법이나 근로기준법 등 대한민국의 법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분명 존재한다.
주한미군과 함께 달려온 19년의 시간. 그동안 내가 느끼고 경험했던 것들은 사실 누군가에게 별다를 것 없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계획의 좌충우돌'인 나도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떤 꿈을 꾸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고민했던 25년 전의 나와 같은 청춘들에게, 그리고 화려한 스펙을 가지고 사회에 완전체로 나가야만 한다고 믿고 있는 강박감을 가진 젊은이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