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건 Apr 22. 2024

<국제소방관 자격과정>을 아시나요?

[Memories in Fire] 2009 ~ 2014년 서울소방학교

지난 29년 동안의 여정은 나에게 행복한 기억을 가져다주었지만, 때론 몸과 마음이 고된 적도 많았습니다. 그동안 소방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그냥 흘려보내기 아쉬워 고민하던 끝에 보잘것없는 기억에라도 의존해 기록을 남겨 보기로 했습니다. 혹시라도 제 기억에 오류나 오해가 있었다면 바로잡아 주시기를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2000년. 뉴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하면서 소방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여기저기서 제기되었다. 그중에서도 서울시가 가장 먼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선진 소방을 구현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소위 ‘소방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미국 소방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했으니 말이다. 서울소방학교의 담당자가 미국에 파견되어 현지 상황을 조사했으며, 그 연구의 결과는 ‘국제소방관 자격과정’ 개설로 이어졌다.


2009년 만들어진 국제소방관 자격과정은 2주 과정으로 ‘미국방화협회(NFPA)’에서 만든 소방대원 기본자격 기준인 1001번과 위험물질 누출사고 초동대응을 위한 기준 492번을 통합해서 만든 과정으로 미국소방대원들과 똑같이 영어로 시험을 치르고 실기평가까지 진행했던 그야말로 글로벌한 시도였다. 그렇게 시작된 과정은 200여 명 가까이 되는 수료생을 배출한 뒤 2014년에 종료되었다.


2009년 서울소방학교 <국제소방관 자격과정>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 이 과정이 개설되었을 당시에는 서울소방에서 영어 좀 한다는 소방관들이 참여한 상태라 영어교재를 가지고 수업을 진행하는데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영어를 잘하는 교육생을 구하기가 어려워지다 보니 일선 안전센터에서 신입 직원들이 차출되어 학교로 보내지는 상황도 벌어졌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2013년이었나? 아니면 2014년이었을 수도 있겠다.


교육 과정을 모두 마치고 치른 시험에서 교육생 전원이 불합격을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학교 관계자로부터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시험문제를 검토했으나 문제은행에서 출제되었던 문제에는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학교 내부에서 회의를 한 뒤에 영어시험 문제를 번역해서 시험을 한 번 더 치르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국제소방관 자격과정은 단순히 미국 소방의 시스템을 모방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한국형 소방관 자격기준을 만들어내는데 어느 정도 일조한 부분이 있다. 이 과정을 모태로 해서 그 당시 소방방재청에서는 ‘화재진화사’라는 대한민국 소방대원 자격인증제를 만들었고, 이 자격은 이후 ‘화재대응 능력’으로 명칭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정책의 연속성이나 전문성은 긴 호흡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초창기 아무런 배경지식도 없이 미국소방의 체계화된 자격인증 시스템을 살펴보고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소방의 발전을 위해 모인 여러 자문위원들과 참여자들의 헌신 덕분에 이 자격이 5년 동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 이후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시스템으로까지 발전했으니 말이다.


초창기 화재진화사라는 자격이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미국 소방을 베낀 짝퉁이란 오명도 붙었었고, 이런 자격증 없이도 무수히 많은 현장을 누볐던 선배 소방관들의 반감이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시도 본부 차원에서는 시험 응시율을 높이기 위해 여러 면에서 압박을 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이런 자격인증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겠지만 이렇게 자리를 잡기까지 여러 고민과 사연이 있었다는 것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면 좋겠다.    


#소방관 #이건선임소방검열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