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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 Apr 27. 2024

FILO와의 만남

[Memories in Fire]  2016년 8월의 기억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2014년 세월호 당시 구조활동을 하다 복귀하는 과정에서 헬기가 추락하면서 순직하신 고 정성철 소방관의 아들 비담 군의 전화였다. 쉽지 않았을 텐데 낯선 사람에게 전화를 한 그의 용기가 참으로 대단하다고 느꼈다.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를 다니고 있었던 그는 아버지의 사고를 계기로 소방관 처우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악기 연주라는 재능을 통해 아버지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소방관들을 응원하기로 한 것이었다.  


당시 비담 군은 자신과 뜻을 같이해 주었던 한예종 학우들과 'FILO'를 결성해서 활동을 막 시작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FILO는 'First In, Last Out'의 약자로 소방관들의 모토인 "위험이 있는 곳에 가장 먼저 들어가서, 제일 나중에 나온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떻게 나를 찾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흔쾌히 그를 만나기로 했다. 그를 만나기로 한 날, 무언가 의미 있는 선물을 해 주고 싶었다. 비록 소속은 다르지만 같은 소방관으로서 순직하신 아버님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약속의 징표를 주고 싶었다. 


여러 고민 끝에 내가 착용했던 헬멧을 그에게 주기로 했다. 함께 근무하고 있는 미국 소방대원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고인이 되신 선배 소방관을 추모하는 글을 하나씩 적어달라고 부탁도 해 두었다.  


고 정성철 소방관을 추모하는 소방헬멧


그를 만나는 날, 생각보다 환한 얼굴을 보고 내 마음도 편해졌다. 처음에는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까 고민도 했었지만 훌륭하게 상황을 이겨내고 있고, 오히려 고생하고 있는 소방관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재능을 통해서 그 의미를 되새기고 응원하겠다는 말까지 들으니 내심 안심이 되었다. 

  

FILO의 창립 멤버인 정비담 군과 이호원 군


그렇게 시작된 만남은 이후 소방관 토크쇼와 전시회로까지 이어졌다. 지금은 각자의 영역에서 훌륭하게 커리어를 키워가고 있는 이 두 명의 아티스트와의 만남은 개인적으로도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미국 소방관들은 흔히 자신의 동료들을 "형제 또는 자매(Brothers and Sisters from another mother)"라고 부르며 가족과 같이 끈끈한 우정을 과시한다. 지금 나의 현실은 항상 그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여유를 허락하지 않지만 이번에 이 글을 준비하다 보니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기쁘고 또 애잔하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소방관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겠다는 그들의 야심 찬 프로젝트는 큰 성공이었다는 것을 느낀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들을 통해 위로를 받았으므로...

 


비담 씨, 호원 씨!

나를 찾아줘서 고마워요. 그대들을 만난 것은 나에게 큰 영광이었습니다. 항상 안전하고 행복하길 나 역시 응원할게요. 



#소방관 #가족 #FI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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