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검사관, 파리를 달리다]
어제 또 한 번 대한민국 펜싱의 역사가 다시 쓰였다. 처음에 펜싱 종목에 배정받았을 때부터 왠지 느낌이 좋았는데 역시 내 예감이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관중석에는 연신 ‘대한민국’을 외치며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로 가득 찼는데 이곳 파리에 와서 이렇게 많은 한국사람들을 보게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준결승전에서 한국과 프랑스가 맞붙게 되었을 때 도핑관리실 분위기가 살짝 이상하긴 했다. 나빼고는 모두 현지 도핑검사관과 자원봉사자다 보니 괜히 상대방을 자극할까 싶어서 우리나라 선수가 점수를 내도 굳이 못 본 척하면서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헝가리와 붙은 결승전에서도 준결승전의 기세를 몰아 선수들은 서로를 응원하며 마침내 금메달을 획득했다.
올림픽에서 세 차례나 연속으로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성과다. 공동취재구역에 있는 외국 기자들도 그와 관련된 질문들을 쏟아낸다. 3연패 한 기분이 어떤지, 특히 오상욱 선수에게는 개인전, 단체전 금메달 획득이라는 최고의 펜서로써 2관왕의 위엄을 달성한 소감이 어떤지도 물었다.
시상식과 기자단 인터뷰가 끝난 무대 뒤에서 한국 선수단은 서로 믿을 수 없다며 감격해한다. 아침식사만 하고 점심과 저녁을 쫄딱 굶었으니 배도 고프고 피곤할 법도 한데 사인을 요청하는 팬들의 요구에 일일이 답해주는 인성과 매너도 돋보인다.
여담이지만 프로야구 등 일부 선수들을 보면 어설픈 유명세에 거만해져서 팬들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혼자서 잘해서인 줄 알겠지만 모든 경기에서 반드시 있어야 하고 또 중요한 사람들이 바로 팬들이다.
그들이 과연 무엇을 찾고자 그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 이곳 파리까지 왔는지 우리 대한민국 펜싱 선수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팬 서비스를 잊지 않았다. 이런 것이 바로 진정한 프로가 아닐까?
아직 여드름도 채 가시지 않은 20대 초반의 프로 야구선수가 "재수 없게 도핑검사에 걸렸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난 그의 앞날이 심히 걱정스러웠다. 우물 안 개구리의 말로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동계와 하계 모두 합해 다섯 번의 올림픽을 경험하면서 적어도 내가 만난 레전드라고 불리는 선수들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지 못했다. 도핑검사 절차를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검사의 중요성, 검사관에 협조하는 태도 모두 레전드라고 인정할 수 있다.
어제 파리의 그랑 팔레에서 네 명의 레전드가 탄생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근무하고 있는 이곳이 바로 금메달 맛집인가 보다. 이 여세를 몰아 태권도에서도 값진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또다시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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