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동계올림픽에 갑니다

[나는 도핑검사관이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참가기

by 이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보내준 따끈한 취업허가서와 초청장이 드디어 도착했다. 이제 중국 비자만 받으면 올 겨울은 가장 추운 곳에서 뜨겁게 열정을 불태울 예정이다.


지난해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근무할 도핑검사관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서류를 접수했다.


공고문의 "동계올림픽 슬라이딩센터 경력자 우대"라는 문구가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2016년 '한국도핑방지위원회'에서 모집한 도핑검사관 시험에 합격한 이후 생애 첫 번째로 올림픽을 치른 곳이 바로 평창 슬라이딩센터였기 때문에 왠지 느낌이 좋았고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20180211_162309.jpg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슬라이딩센터 입구


20180216_103845.jpg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슬라이딩센터


평창 슬라이딩센터는 썰매 종목의 경기가 치러졌던 곳으로 2018년 우리 모두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아이언맨' 윤성빈 선수가 스켈레톤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은메달의 쾌거를 이뤘던 봅슬레이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루지 종목도 개최되었다.


20180225_114007_Burst01.jpg 스케레톤 결승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가운데 하얀색 비니)가 미국대표팀과 함께 응원을 하고 있다.


썰매 종목 특성상 경기장이 산 정상에 위치해 있다 보니 내가 근무했던 도핑관리실도 하늘과 맞닿아 있다. 도핑관리실 위치는 선수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한 동선과 시료채취의 안전성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에 산을 걸어 내려와 식사를 하고 산을 오르면 다시 배가 고파지는 곳. 그곳에서 보낸 3주는 몹시 추웠지만 매우 특별한 시간이기도 했다.


20180220_171753_HDR.jpg 일하러 가는 길. 저 멀리 도핑관리실이 보인다.


하계올림픽과는 달리 동계올림픽 종목은 특히 유럽에서 인기가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방송 시청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보통 저녁 6시가 넘어서야 중요한 경기들이 시작된다.


쇼트트랙이나 아이스하키와 같이 아늑한 경기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슬라이딩센터는 경기장 자체가 겨울을 가득 담은 자연이다 보니 도핑관리실을 나서서 경기장으로 향할 때 뼛속까지 전해져 오는 한기를 아직도 내 몸은 기억하고 있다.


20180211_211305.jpg 늦은 밤 시간이지만 평창 슬라이딩센터에 관중이 가득 차 있다.


해가 진 강원도 평창의 겨울은 더욱 매섭다.


밤 10시. 대관령 산 중턱 즈음에서 열띤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시상식과 인터뷰가 이어진다. 모든 공식행사가 끝나고 선수와 함께 도핑관리실로 이동해서 도핑검사를 진행하게 되는데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선수가 짧은 시간에 혈액이나 소변시료를 제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땀 냄새로 가득 찬 기다림의 시간을 마치고 선수를 보내면 새벽 1시. 서울의 실험실로 시료를 이송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수송팀을 만나 물건을 전달하고 숙소에 도착하면 대략 새벽 3시 전후가 된다.


저녁인지 아침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식사와 맥주로 하루를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얄미운 해를 보면서 잠자리에 들곤 했던 일련의 사이클을 올해 2월. 나는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IMG_0088.jpg 개막식까지 20일이 남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사진출처: 베이징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제24회 베이징 동계올림픽.

내가 배정받은 베뉴는 베이징의 북서쪽에 위치한 '옌칭(Yanqing) 국립슬라이딩센터'다. 누군가는 만리장성 중에서 유명한 팔달령이 있는 곳이 아니냐며 슬며시 부러움을 건네지만 나에게는 모든 것이 마치 평창 대관령의 데자뷰처럼 느껴질 뿐이다.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전혀 낯설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출발 전 설렘과 함께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