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 라동무에 관하여

by KON
ChatGPT Image 2025년 10월 11일 오전 12_20_51.png

예전에 친구 라동무와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육아는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 같아.”

정말 열심히 해도 내 뜻대로 안 되고, 지치고 힘들다 생각이 들면 또 죄책감이 따라온다.

그랬더니 라동무가 말했다.

“하루하루 아기만 생각하며 보내는데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그 말이 참, 크게 위로가 됐다.

지친 육아에 한줄기 빛 같은 존재, 내 친구 라동무.


어느 날은 라동무에게서 택배가 왔다.

300일이 넘은 라동무의 아기가 쓰던 육아용품들과 함께 엽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 엽서의 말이 너무 힘이 돼서, 지금도 냉장고에 붙여두고 매일 본다.

"아기는 매일매일 보고 있어도 몇 주, 몇 달 전 사진을 보면 그새 이렇게 컸나 싶게 달라져 있더곤.

너의 매일이 아기에게 영양가 좋은 토양이 되어주고 있다는 걸 종종 떠올리며, 힘들고 지치는 날에도

다시 웃기를 기원한다!"


우리는 매일 아침 안부를 주고받는다.

"안녕, 잘 있니?"

"안녕, 잘 잤니?"

"안녕, 오늘 기분은 어떠니?"


하루는 라동무가 갑자기 연락해서 아기를 보러 오겠다고 했다.

서울에서 세종까지 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정말 괜찮다며 오겠다고 했다.

"오송역 6:30 도착, 16:33 출발로 예매했곤!

너희 집 기준으로 8시부터 15시 30분 정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서울역에서 5시 30분 기차를 타려면 적어도 4시 반 전에는 일어나야 할 텐데…

왕복 4시간을 넘게 써야 하는 거리.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KTX 교통비라도 쓰라고 송금을 했는데, 단호하게 거절했다.

“돈을 왜 보내닛!! 아니다아니다, 이러면 자주 못 간다. 부디 철회해주렴. 나중에 너도 나 힘들 때 보러 와주면 된다ㅎㅎㅎㅎㅎ 돕고 살자.”

너무 고마웠다.

“너 없었으면 진짜 백퍼천퍼 중증우울증이었다.”


친구는 아기의 2차 예방접종 날, 정말 아침 8시 전에 도착했다.

같이 아침을 먹고, 동네 소아과에 예방접종을 하러 갔다.

아직은 아기를 데리고 외출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던 나에겐 같이 가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됐다.

소아과에서 어떤 걸 접종했는지 설명이 생략되었는데, 그것도 라동무가 자세히 설명해줬다.

예방접종을 마치고,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집에서 15분 거리의 테라로사 카페에 갔다.

분유 시간 때문에 테이크아웃만 하고 카페에 오래 있진 못했지만 맛있는 커피도 마시고 산책도 하니 기분 전환이 됐다.

아기도 유모차에서 잠들어 꽤 오랜 시간 낮잠을 잤다.

장거리 유모차 산책은 처음이었는데, 라동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라동무는 집에 와서도 엉망진창이던 아기 옷과 양말, 모자들을 종류별로 차곡차곡 정리해줬다.

점심으로는 피자를 시켜 먹고, 낮잠을 못 자서 안아서 재우고 있던 나를 보더니 힘들지 않냐며 자는 아기를 데려가 자신의 배와 가슴 위에 올려놓고 재우는 자세를 알려줬다.

집에 있던 아기띠도 이것저것 꺼내서 써보며 더 편하게 아기 안는 법을 알려주고, 아기띠 사용하는 법도 직접 연구해줬다.


평소였다면 고요하고 적막했을 집.

라동무 덕분에 대화도 많았고, 훨씬 덜 외롭고 힘들지 않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아마 내가 육아하면서 가장 많이 말을 건 사람은 라동무일 거다.

산후조리원 때부터 거의 매일 영상통화를 하고, 모르는 걸 물어보면 하나하나 알려주고, 수면교육 응원해주고, 동네에 공동육아할 수 있는 엄마들과 친해지라 조언도 해주고…

라동무가 없었으면, 정말 매일 울면서 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대학교 시절 함께 수업 듣고, 기차 타고 국내 여행 다녔던 친구.

이젠 각자 아이가 생기고 그렇게 엄마가 되었고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


그녀의 집에 놀러가면 요리사급 남편분과 함께 늘 맛좋은 식재료로 정성 가득한 식사를 대접해준다.

그것만 봐도 이 부부가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그 '주변 사람' 중 하나라는 것에 감사하다.


친구 좋다는 게 뭔지 알려주는 사람,내 친구 라동무에 관하여. 끝.

이전 08화9050걸음, 병원으로 달린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