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서울 엄마 집에 왔다.
계획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아기 짐만큼은 며칠 전부터 필요한 목록을 꼼꼼하게 적고, 당일에도 목록과 챙긴 짐을 몇 번이나 비교해가며 빠진 게 없도록 세심하게 챙겼다.
동네 소아과 선생님의 "미국 가도 된다"는 말씀이 큰 힘이 되어 서울까지 쉬지 않고 운전했다. 휴게소는 마지막 한 곳에만 들러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았다.
도착한 엄마 집에는 동생 부부도 있었다. 동생은 엄마 집에서 살고, 동생 남편은 구미 출장으로 회사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주말에만 올라온다. 오랜만에 가족 모두가 모여 아기를 환하게 맞이해주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아기는 환경이 달라서인지, 엄마 집에서는 바닥에 얇은 이불 하나만 깔아놓고 재워서인지 새벽에 3~4시간마다 깨서 보챘다. 집에서는 비싼 매트리스에서 푹 자던 아기였는데, 역시 낯선 환경이 힘들었나 보다.
엄마가 20년 가까이 살아온 빌라는 이웃들이 거의 가족 같은 곳이다.
아기를 데리고 나갔더니 103호 할머니께서 "누굴 닮아 이렇게 예쁘냐"며 칭찬을 해주셨다. 너무 잘 낳았다며 하나 더 낳으라고 다시한번 강조하셨다.
그리고 본인은 아기를 키울 때 한시도 쉬지 않고 구구단을 외워주고, 간판이나 자동차 번호판을 읽어주고, 신문도 읽어줘서 아이가 유치원 때 한문 7급을 땄다고 자랑하셨다. 쪽쪽이는 습관되면 떼기 힘드니 가능하면 물리지 말고, 예민한 아기가 되지 않도록 라디오를 틀어주고, 배와 가슴 위에 뭘 올려놓고 자게 하면 안정감을 느낀다는 팁도 주셨다.
벌써 81세라는 할머니의 노하우가 담긴 이야기들이 귀여우면서도 감사했다.
또 206호 아저씨도 지나가며 말을 걸어주셨다. 기어다닐 때 이사 왔는데 어느새 자녀가 고2가 됐다고 했다. 예전에는 또래 자녀를 둔 젊은 부부들이 많이 살아서 빌라 텃밭에서 상추를 키우고 삼겹살도 구워 먹던 시절이 좋았다고 추억을 나누셨다. 이제 아이들이 군대도 가고 대학도 가고 고3 수험생이 된 친구들도 있다며 아기에게 "이 시기가 평생 할 효도 다 할 때야"라며 웃어주셨다.
하루는 엄마에게 아기를 맡기고 근처 피부샵에서 얼굴 마사지를 받았다.
내 옆에 있던 아줌마에게 계속 전화가 오길래 조금 대화를 나눠봤더니, 엄마가 "밥 해줄 테니 하루 자고 가라"고 해서 엄마가 걱정된다고 했다. 평소 안 하던 행동이라 더 그랬다고. “얼른 간다"고 전화를 몇 번이나 받았는데도 계속 전화가 오길래 어머니 연세를 물으니 91세라고 했다. 자식이 환갑이 넘어도 엄마는 여전히 자식을 걱정한다는걸 새삼 느꼈다.
한참 마사지를 받고 있던 때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기가 너무 심하게 운다고 빨리 오라고 했다. 팩을 떼고 급하게 달려갔더니 아기가 얼굴이 시뻘개질 정도로 울고 있었다.
아기가 울 때 306호 아줌마는 아기 울음소리가 3층까지 들렸다며 놀라며 왔었다고,103호 할머니도 달려와 "배고픈 거 아니냐"며 걱정하다 가셨다고 엄마가 말했다. 지나가던 106호 아줌마도 아기를 귀여워해 주며 "쉽게 키울 수 있는 아기는 없다"고 위로해 주셨다고 했다. 아기는 내가 오고도 분유도 안 먹고 흥분해서 울다가 옷과 기저귀를 벗기고 모빌을 보여주니 다행히 조금씩 진정됐다.
진정이 된 아기를 안고 잠시 집 앞에 나와 있었는데 옆집 102호 어린이가 할머니 손을 잡고 하원하던 길에, 아기를 보고 신기해했다. 내가 결혼 전 102호가 이사 왔을 때만 해도 기어다니던 아기였는데 벌써 7살이라고 했다. 내 유치원 후배라는 것도 알게 됐다. 엄마와 그 아이의 할머니가 아기 키우는 어려움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그 어린이가 "아기가 다 듣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해서 다같이 웃었다.
세종 집에서 혼자 아기를 키울 때는 하루가 너무 길고 심심했는데, 엄마 집에서는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아기를 안아주고 예뻐해주고 놀아줬다. 특히 306호 아줌마는 아기를 하루라도 안 보면 섭섭하다며 매일같이 반찬을 가져다주는 핑계로 아기를 보고 가셨다.
‘아기는 온 마을이 함께 키운다’는 아프리카 말이 왜 있는지 절실히 공감했다. 나도 언젠가 초보 아기 엄마가 이웃으로 들어오면 꼭 많이 안아주고 놀아줘야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