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50걸음, 병원으로 달린 하루

by K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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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다리던 남편의 마지막 출산휴가가 시작되었다.
얼마나 이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른다.

특히 엊그제는 아기가 낮잠을 총 1시간도 안 자서, 어제도 안자려 하길래 5시간 이상 안아서 겨우 재웠더니 체력이 거의 방전 상태.
오늘 남편이 같이 육아해준다고 생각하니 안도감이 몰려왔다.
지금까지 이렇게 힘들었던 날이 있었나 싶을 만큼 힘들었는데, 남편 쉬는 날이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날 뻔했다.


사실 이런 날은 그냥 늦잠이나 실컷 자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아기의 대학병원 진료가 오전에 잡혀 있었다.

고개를 자꾸 한쪽으로만 돌리고 자세가 치우쳐 보여 걱정됐고, 재활의학과 진료를 예약해놨는데 오늘은 초음파를 추가로 보게 됐다.

병원에 갈 때마다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하는 생각을 백 번도 넘게 하게 된다.

누구보다 개인주의적이고 나밖에 몰랐던 내가, 엄마가 되니 이렇게 달라졌다.


진료를 마치고 남편이 “지금부터 하고 싶은 거 다 해~” 하며 아기한테 “엄마 저녁에 봐요~” 시켰다.

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일단 시급했던 병원 일정들부터.
며칠 전부터 앞니 잇몸이 시려 치과에 갔고, 정기 검진과 스케일링을 받았다.
잇몸이 원래 약한 편인데 피곤할 때 더 시리다고 했다. 역시 육아의 피로란…


그리고 기분전환 겸 네일아트를 예약해둔 곳으로 향했다.

마침 그 건물에 내가 다니는 헬스장이 있었고, 네일받기 전 20분 정도 남아서 스트레칭과 기구 운동 두 개 정도 했다.

개인 운동은 또 오랜만이라 잠깐이지만 개운했다.


네일샵에서는 원래 하고 싶었던 올리브 컬러로 칠했는데, 생각보다 색이 아쉬웠지만 임신 때문에 거의 일년만에 받으니 뿌듯했다.

손끝이 달라지니 기분도 달라졌다.


자전거를 타고 양쪽 팔뚝에 올라온 두드러기 진료를 위해 근처 피부과에도 들렀다.

꽤나 호탕하고 시원시원해보이는 여의사는 보자마자 “햇빛 알러지네요~” 하며 약을 처방해주셨다.

임신 전에는 반팔 반바지에 선크림만 바르고 몇 시간씩 돌아다녔는데, 요즘은 유모차 산책 몇 번에 피부가 이렇게 반응하니 괜히 울적해졌다.

몸매만 변한 줄 알았더니 체질도 바뀌었구나 싶어서.


다시 자전거를 타고 한의원에 갔다.

어깨, 손목, 허리가 다 아프다고 하니 “아기 보는 분들 다 이러고 옵니다~” 하며 위로 아닌 위로도 받았다.

수유자세 번갈아가며 하라고 하셨지만… 말처럼 쉽나.


이쯤이면 집에 가도 되겠다 싶었는데, 맞은편 이비인후과가 눈에 띄었다.

숨을 쉬어보니 코가 막히는 것 같아 혹시나 싶어 들렀다.

임신 중에도 와봤던 병원인데, 그땐 혹시나 아기한테 영향이 있을까 싶어 약을 받기만 하고 결국 먹지 않았었다.

이번엔 감기 초기 같다고, 피부과 약과 성분이 겹친다며 가래약만 처방해주셨다.


그렇게 12시 넘어서 집을 나섰는데, 다시 집에 돌아오니 거의 5시.

오늘 하루 걸은 걸음수를 확인해보니 9,050걸음.

병원만 4군데 돌고나니 하루가 금방 갔다.


집 앞에서 마침 유모차 끌고 산책 나온 남편과 마주쳐서 같이 걸었다.

너무 더웠고, 마침 어떤 가족이 꼬치집에서 맛있게 먹는 게 보여 우리도 들어가려 했는데 유모차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계속 걸었고, 단골 짱야치킨이 보이길래 유모차를 세워두고 둘이서 후라이드 한마리를 시켜 이른 야식을 먹었다.

유모차 끌고 외식한 건 처음이었는데, 오랜만에 일탈하는 기분이었다.


오늘 같은 날은 처음이다.

병원 4군데, 헬스장, 네일샵, 그리고 짱야치킨까지.

몸을 점검하고 다시 재정비하는 하루였달까.

그렇게 다녀온 병원들마다 내 몸 상태를 하나씩 보여주듯, 육아는 체력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백일을 앞둔 지금, 내 몸도 백일치 고생을 했겠지.

작은 통증들은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으로 낫겠지만, 만약 큰 병이 온다면?

그리고 만약 아기를 혼자 돌봐야 하는 날 번아웃이 온다면?

그 생각을 하니 조금은 겁도 난다.

육아란 마치 미룰 수 없는 숙제와 계속된 쪽지 시험처럼 느껴진달까.


가끔 아기가 웃어주고 옹알이도 해줄 때면, 그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보상이 되는 기분이 든다.
그 작은 미소와 말 없는 소통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문득 쌓여가는 외래 진료비 영수증, 약제비 영수증들을 보면
아, 나도 많이 지쳐가고 있구나… 싶어진다.

그래도 이 모든 게 내가 열심히 해내고 있다는, 그 나름의 증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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