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소박하지만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혹시 꿈이 뭔가요?
올해로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는, 오히려 20대 였을 때 꽤나 꼰대였다. 누구를 만날 때 마다 꿈이 뭐냐는 질문을 자주 했고, 꿈 없이 그저 살아내기 급급한 사람을 멀리했다. 꿈이라는 단어 그 자체에 큰 무게를 뒀고, 어떤 목표를 향해 달리지 않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 큰 꿈을 말하는 사람이 더 훌륭한 사람이라는 착각까지 가미해, 나의 꿈 예찬론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당연히, 그 시절의 내게는 꽤나 거창한 꿈이 있었다.
어디에서도 이게 내 꿈이라고 말하기 좋은 꿈
이루지 못하는게 보통이기에 실패해도 손가락질 받지 않는 꿈
그렇기에 그 꿈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하는 것 처럼 보이던 꿈
솔직히, 거창한 꿈은 현실성이나 나의 노력과는 무관하게도 부족했던 나를 부풀리기 쉬운 방법 중 하나였다.
뭐..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꽤 자주 바뀌긴 했었지만 습관적으로 내뱉던 꿈들은 공통적으로 항상 거창했다.
대기업 회장이 되겠다.
대통령이 되겠다.
교육부 장관이 되겠다.
물론 이런 꿈들을 뱉을 수 있었던 까닭은 모두 저마다의 당위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긴 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은 교육을 위한 교육이 아니니, 이를 뜯어 고치기 위해 교육부 장관이 되겠다
고 했었지만 사실 그토록 간절 했는지는 잘 모르겠고, 그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거나 긴 여정을 준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제와서야 겨우 고백할 수 있는 거지만, 대부분의 거창한 꿈들이 그러하듯 나의 경우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거창했던 꿈은 아주 추상적이었고, 목적은 있었어도 방법이 없었다. 그 거대한 목적을 이룰 방법을 깊게 고민하기는커녕 얼렁뚱땅 얼버무리고 넘어가면서도 목적만을 앞세워 "해내고 싶다" 며 떠들어 댔었기에, 방법이 부재했던 거대한 목적은 채 몇 발짝 가지 못하고 결국 진짜로 꿈이 되어 산화했다.
그래서 내 지난 날의 꿈들은 대단히 대단하고 굉장히 굉장했지만 안타깝게도 "누구든 떠들 수 있는 정도의 꿈"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조금은 바뀌었지만 품고 사는 꿈이 있다.
거창하지 않고 소박한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인
어쩌면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 동사형 꿈
말이다.
가정을 지키는 것
어찌보면 고작?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쉬워보겠지만 사실 "가정을 지킨다는" 행위는 구체적으로 정의하기가 꽤 어렵고, 설령 명쾌히 정의된다 하더라도 달성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어떤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마땅히 지켜낼만한 수준의 힘이 필요한 것이며, 통상 소중한 것 일수록 지키기 어렵다. 때문에, 내게 가정이 어떤 의미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정을 지키는 것은 결코 쉽다고는 할 수 없겠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여러 종류의 힘이 필요한데, 나는 그 힘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1. 경제적 힘
가난과 불행은 정비례 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부자라고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가난해지면 불행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돈이면 다 된다고 까지 비약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빈곤은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다.
2. 육체적 힘
극단적으로 신체적 힘이 부족해서 사고를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을 배제할 수 없으며 건강상의 문제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무법지대에서는 주먹이 법이니 무법지대에서도 가정을 지켜낼 수 있어야 하고, 아프면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아프지 않아야 한다.
3. 정신적 힘
정신적 힘은 강인함 뿐 만 아니라 도덕성, 인품 등 모든 태도 또한 포함한다. 마음의 힘은 쉬이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꾸준히 노력하고 수련해야하며,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진 힘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상호 보완적이고 유기적인 관계이며 평화로운 가정을 유지하거나 지키기 위한 필요조건이기에, 결국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힘이 모두 절실히 필요하다.
비록 지금 내 가정은 나 혼자이나 앞으로는 어찌될지 모르므로 앞으로의 내 삶은 이 힘들을 기르는 것에 투자 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내 꿈은 "행복한 가정을 지켜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