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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구 Mar 10. 2019

혼 내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다.


버스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는 엄마를 보니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일 년 반 쯤 전의 일이다.




꽤 가파른 언덕길을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한 10미터 앞에서 유모차가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었고 뒤에서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소리지르며 뛰어오고 있었다. 아주 위험해보이는 상황이었다.


전속력으로 뛰어 가선 온몸을 던져 간신히 세우고 의기양양하게 괜찮냐고 물어봤는데, 엄마의 반응이 의외였다. 당연히 손잡이부터 건네받고 감사의 인사부터 할 줄 알았는데, 유모차와 나는 본 척도 안하고 짜증을 내면서 옆에 있던 오빠로 보이는 남자 꼬마아이를 혼내기 시작했다.


엄마가 똑바로 잡고 있으랬지!


그 아이의 키는 손잡이를 잡기에는 작아보였는데도 말이다. 유모차를 경시하길래 안에 아기가 없나 싶어서 봤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급기야 남자아이는 울기 시작했고 엄마는 미치겠네 라며 더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이젠 나도 황당을 넘어 어이가 없었다.


난 왜 여기서 서서 이 짜증을 받고 있는거지?

이게 무슨 상황이지? 어떻게 해야하지?


일단 애 부터 달래자는 생각에, 어머님께 손잡이를 건내며 빙그레 웃어보였다. 이 분은 그제서야 상황파악을 했는지 손잡이를 받으며 나지막히 "고마워요" 했다.


나도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어머님, 바로 혼내는 건 좋지 않습니다.


물론 상황이 있겠지만 아이들은 엄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고는, 남자 아이에게 물어봤다.


너 이름이 뭐야?


훌쩍거리다가 웅얼거리며 대답했다.

"김준서요..." (가명)


상황을 정리해야 했보면 이랬다.

아이는 이유없이 혼났다고 생각해서 울고 있고 엄마는 아이에게 맡겨놓았다고 생각해서 짜증이 나 있다.


엄마보다는 아이가 설득이 쉬워보였다.

아이 눈높이에 내려와서 말했다.


준서야 아저씨가 없었으면 동생이 큰일 날 뻔했어. 준서는 씩씩한 형아니까 앞으로 동생 잘 지켜줄 수 있지?


울먹거리며 끄덕거렸다.



어머님은 놀란 표정으로 "감사합니다" 라며 인사했고 나는,


저 시기 아이들은 혼내면 트라우마로 남아요. 동생을 시기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렇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고 그와 동시에 동생은 내가 지켜야겠다 하는 책임감도 주세요.


라고 말 한 후 자리를 떴다.




돌이켜보니 괜한 오지랖이었나 싶지만 일종의 교육업에 종사하는 자로써의 사명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가장 잘못한 것은 엄마다. 그 가파른 곳에 유모차를 꼬마아이에게 맡겨놓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고, 아이에게 다짜고짜 화를 낸 것, 도움을 준 나를 세워두며 불편하게 한 것 그 모두가 어머님의 잘못이다. (상황이 있겠지만 표면 상으로는.)


아이들은 아직 덜 배워서, 경험이 없어서 어른을 이해하지 못한다.


성인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아이를 이해하고 그 아이가 어떻게 하면 더 바르게 성장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 아이가 훌륭하게 자라서 부모를 이해해 주고 품에 온전히 품을 수 있을 때 까지는 훌륭하게 키우는 것이 참 된 어른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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