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우정을 나누고, 친목을 도모하는 일은 물론이고, 일이라는 오피셜한 부분에서도 그 가운데에 ‘사람’이 있다. 우리는 이 ‘사람’ 때문에 상처받아 울고, 행복해서 웃는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특정 수준의 배움을 넘어서신 분들께서 남기신 글에는 하나같이 ‘인사가 만사다’ 라는 내용이 들어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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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좋은 사람은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 나랑 완전히 맞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고, 내 생각대로 움직여 주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축복이어야 할 인재가 재앙이 될 때는 다양한 방법으로 회사를 손쉽게 무너뜨리기까지 한다.
사람에 목마를 때, 갈증을 구걸 할수록 이상하게도 상황은 더 나빠져서 더 이상한 사람을 더 많이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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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상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분명 재앙이라고 생각했던 핵폭탄급 인재가 다른 곳에서는 엄청난 축복이 되고, 똥차라고 생각했던 전 애인이 다른 연애를 하면서는 벤츠남, 벤츠녀가 된다. 갈증을 구걸하지 않았던 사람이 훌륭한 파트너를 만난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혹시 이건 아닐까.
‘혹시 내가 재앙이었을까?’
‘혹시 내가 똥차였을까?’
아직 내가, 그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혹은 그리 되는게 힘들기 때문에 좋은 사람을 만나는게 힘든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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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내게 오는 모든 사람이 좋은 사람은 아니겠지만,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닐 때는 절대 좋은 사람이 오지 않더라. 그러니 나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내가 ‘상대가 이래 줬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람이면 어떨까.
마태복음 7장 12절 ‘황금률’에서,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라고 했으니, 누구든 내가 기대하는 이상적인 사람의 모습에 내 모습을 일치시킨다면 자연스레 좋은 사람들이 내게로 오지 않을까.
내가 먼저 누군가의 벤츠가 되어 준다면, 그는 나의 페라리가 되어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