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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구 Jan 05. 2020

좋은 학벌은 성공요소가 아니다

헝그리정신에 대하여



한 때 공부의 신, 멘토라고 불렸다만 사실 잠깐 그 단체에서 화제가 됐던 강의의 강사였던 것일 뿐 신 급은 아니다.

그럼에도 공부란 무엇인지를 내가 아는 선에서라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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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자주 듣는 이야기가 "공부고 뭐고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그냥 돈이나 벌고 싶어요" 다. 지금은 뭐든 대충하면서 나중에 성인이 되면 열심히 돈 벌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말하는 것인데 이는 엄청난 착각이다. 태도에는 관성이 있어서 뭘 하더라도 늘 하던 습관대로만 하게 되는데, 심하게는 모의고사 때 자던 버릇이 수능 때 그대로 나와서 망하는 케이스도 꽤나 봤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인 대충하지 않는 태도는 성실함 정도로 바꿔 말할 수 있다. 아닌 경우도 있지만 특이 케이스가 아닌 한 성적은 성실도에 비례한다. 또 성실도는 속일 수 없고 쉬이 바뀌지도 않기 때문에 지도자로서 학생의 성실도만 봐도 향후 어떤 삶을 살아갈지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물론 성실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올바른 방향으로 성실해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실 분야를 막론하고 성실하기만 하면 뭐라도 되기 때문에 어떤 것을 이루거나 향상시키려는 입장에서는 이 성실도를 관장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과 그걸 어떻게 할지가 관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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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도에서 좀 더 나아가서 학벌과 성공의 인과관계를 생각해 보자. 학벌주의를 목표로 달리는 사람들도 더 깊이 들어가보면 근본적인 목적은 좋은학벌이 아닌 성공이다. 상당히 많은 학부모님들께서 학벌 좋은 사람들이 성공한 것을 보며 "좋은 학교를 가야 성공하는구나!" 라고 생각하시곤 하지만,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 것만 보더라도 보편적인 생각들과 인과관계가 조금 다르다.

실상은 좋은 학벌이 있어서 성공이 가능했던게 아니라 애초에 성공할 사람이 좋은 학벌을 갖게 되고 그 다음의 필연적인 수순으로 성공에 이른 것이다. 그러니 좋은 학벌을 획득하는 중간 과정은 생략하고 바로 성공으로 향하는 케이스도 당연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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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할 사람"이라는 기준은 앞서 말한 성실도와 꽤나 큰 상관관계가 있는데, 이 성실도의 핵심요소는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내게 단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헝그리정신을 꼽겠다. 즉, 헝그리정신이 강한 이들은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한게 아니라 헝그리 정신이 강하니까 공부마저도 열심히 한 것일 뿐이다.

다시말해 공부를 잘 해서 성공할 수 있는게 아니라 헝그리 정신이 강하니까 뭐든 열심히 하는 것이고 뭐든 열심히 하니까 공부 또한 잘 했던 것 뿐이다. 성공은 당연한 수순인 것이고. 그러니 학벌과 관계없이 애초에 뭘 하든 될 놈이었다는 뜻이라고도 볼 수 있게 된다.

헝그리정신이 강한 이들은 부족하면 부족함을 메우려 노력하고 넘치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없는 이들은 부족하면 어렵다고 포기하고 넘치면 충분하다고 포기한다.

될 놈은 뭘 해도 되고 안 될 놈은 뭘 해도 안된다는 말은 여기서 비롯된다. 이 마인드의 차이가 태도의 차이와 과정의 차이를 만들기에 당연히 결과의 차이도 만들어 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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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 이야기다.

헝그리정신은 커녕 배부른 돼지에 불과했던 나는 고2때 까지 전 과목 6~8등급 (10~40점) 에, 250명 중 240등 정도에 위치했다. 공부나 미래는 고사하고 내일이나 십 분 뒤의 일 조차 생각하지 않았던 한심한 종자였다.

정신 차린 척, 공부하는 척을 했던 고3이 지나고 스무살이 되던 2006년, 한 지방대에 합격했다. 성인이 된 후 많은 것들이 바뀌기 시작했는데 대학생이 되고나니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또, 군 제대 후 엄청나게 달라진 상황 때문에 배고프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버렸다. 이 외에도 공부의 사유는 많았겠지만 이 굶주림과 새로운 시각이 내 헝그리정신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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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재수를 결심하곤, 다친 몸과 박살난 환경을 업고 재수를 시작했는데 그동안 놀면서 하는 척 한 것에 대한 대가를 처절하게 갚아야했다. 공부의 과정은 "악에 받쳐했다" 는 말 밖에는 표현 할 말이 없었다.

책에 쓰여진 글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내 자신에게 화나서 소리지르고 악에 받쳐 울기를 반복했다. 일주일 내내 단 한 장의 종이와 씨름한 적도, 그러다가는 코피를 흘리며 기절한 적도 있었다. 어차피 실패하면 다음이 없었기 때문에 안되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책과 싸웠다. 긴 씨름의 과정은 상당히 괴로웠지만 항상 내가 이겼다. 어렵던 내용도 이해가 되기 시작하니 엄청난 희열에 휩쌓였다.

하지만 희열도 잠시일 뿐 만족할 틈은 당연히 없었고 항상 공부에 목말라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화장실을 갈 때도 밥 먹으러 갈 때도 책을 놓지 않았다. 나는 성적으로 자른 4반 중 3번째 반에 속했었는데, 물리 선생님께서 "우리 학원에서 니가 젤 잘 될 것 같다" 라고 말씀하실만큼 헝그리하게, 끊임없이 공부했다.

자연스레 성적은 수직상승했다. 지금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재산들은 이러한 희열과 통제에서 생겨났다. 그 해 수능, 나는 단 한 과목을 제외한 전 과목 만점을 받고 서울에 상경했다. (물론 한 과목이 처참하게 작살이 났지만.)

물론 이건 군대 제대 이후 재수를 하면서 겪은 이야기이고, 이렇게 장황하게 쓸만큼 엄청난 성과를 만들어 낸 것도 아니지만 나는 이렇게 최하위권에서 최상위권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그 후 10년 동안 갈고 닦으며 지도자로서 더 날카로운 칼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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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유지가 아닌 상승을 위한 공부는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이 경험은 내 피에 녹아 내 기질 자체를 바꿔버렸는데, 무얼하든 헝그리하게 임하게 됐다.

배고픔이 성실함을 동반하는게 필연이라면, 어떻게든 헝그리정신을 가질 수만 있다면 성실해질테니 당연히 태도가 바뀔테지. 그러면 공부 뿐만 아니라 뭐든 성공할 수 있는 필요조건이 갖춰지는 것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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