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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꿀꿀 Nov 01. 2019

유치원생 우리 아이, 언제부터 한글을 가르치나요

고민되고 불안한 부모님들을 위한 이야기

자유선택활동시간이었다.수조작영역으로 가니 아이들이 고사리같은 작은 손으로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놀이에 열중하며 열심히 생각하고 있을 그 작은 머리들이 사랑스러웠다. 그때 그 머리들 중 하나가 고개를 들더니 눈을 반짝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주은이었다. 주은이는 우리 반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포트폴리오 파일을 가리키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선생님 저거 보니깐요, 지훈이랑 나는 이름 앞글자가 똑같은 것 같아요!

 

중요한 발견이었다. 평소 자신의 이름외에 관심이 없던 주은이가 스스로 글자에 관심을 가지며 'ㅈ'이라는 공통점을 인식한 것이다. 나는 그런 모습이 대견해 웃으며 답해준다.

"그래. 글자가 조금 비슷한 것 같지?주은이가 비슷한 글자를 찾았구나."

다른 아이가 옆에서 끼어든다.

"아니야 . 근데 저건 '지'고 너는 '주'은이잖아. 틀리지."

 그 말을 들은 주은이는 파일을 쳐다보며 잠시 생각하더니

정말 그렇네, 하고 웃는다.

 유아들이 글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자음과 모음의 조합 따위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그런 것은 오히려, 전혀 중요하지 않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진정으로 배워야 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글자는 가 좋아하는 바깥놀이를 언제 할것인지 알려 주는 수단이라는 것에 대한 깨달음.  내가 좋아하는 친구에게 우리 집에 놀러오라고 편지를 쓰고 싶을 때 필요한 방법이며, 그 편지를 전달해서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을 친구가 이해했을 때의 기쁨을 경험하는 것. ‘ㄱ’의 모양은 마치 유치원에 오는 길에 봤던 나뭇가지의 모양처럼 생겼다는 것. 손가락에 어떤 방법으로 힘을 주어야 내 이름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바로 글자의 필요성에 대해 아이들이 알고, 그 편리함을 깨닫고, 글자의 모양에 흥미를 가지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에 대해 쉽게 망각하는 것 중 하나는, 내게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 아이들에게는 새롭고 낯설다는 것이다.  처음 교사생활을 시작했을 때, 머리로는 배웠지만 가장 많이 당황한 것이 그것이었다. 예를 들면 아이들은 '손을 씻자'고 하면 물을 틀고 손에 물만 묻히고 물을 잠그고는 한다. '손에 비누를 한번 짜서 (동작을 보여주며) 이렇게 비비고, 물로 헹궈내고 휴지는 한장만 뽑아서 손에 남은 물기를 닦자'고 세분화해 지도해야 아이들은 이해한다.  이런 사례를 들은 적도 있다. 유치원에 처음 입학한 5세 유아의 경우, '화장실에 다녀와라'라고 하면 아이들은 화장실 앞에 정말  갔다가 돌아온다는 것이다. 화장실에 가라는 말이 볼일을 보고 오라는 뜻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사회문화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지는 관습이나 행동양식이 거의 없다는 것이 와닿은 사례들이다. 아이는 백지상태로 타고난다 로크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들이었다. 

사범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며 유아의 나이별 발달단계, 신체,인지,정서,사회,언어 등 의 발달과 무수히 많은 심리사회/정서/신체적 발달 이론들, 프뢰벨이나 몬테소리, 루소나 로크의 교육이론등에 대해 4년간 수학하고, 또 하루에 10-12시간씩 앉아 공부하며 유아임용시험을 준비한 나도 현장에서 수백번  위와 같은 사례들을 몸소 겪은 뒤에야 감한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어른들은 아이들이 단순히 가나다라마바사를 쓸줄 알고 읽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순히 글자의 모양을 익혀 쓰고 읽는 것은 의욕과 흥미가 뒷받침해주고, 잘 발달된 공간이해능력과 소근육이 뒷받침 해준다면 초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금방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진학하자마자 받아쓰기 시험에서 1등을 하는 것만이 목표라면 이 글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요즘은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도 아이들이 한글을 모른다는 전제하에 한글에 대해 완전히 기초부터 가르치기에 진학하자마자 받아쓰기시험을 볼 일도 없다) 그러나 유아의 학습을 성인의 학습에 빗댄다면 이런 것이다. 만일 내가 한달 뒤 한국사시험이 있다고 생각했을 때, 당장 한국사를 한페이지 더 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장 처음으로 중요한 것은 동기일 것이다. 이 시험에 붙고자 하는 동기와 의욕, 그리고 흥미. 추가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초중고시절 다져놓은 한국사배경지식일 것이다. 유치원은 바로 그 동기와 의욕, 배경지식과 기초능력들을 길러 는 곳이다. 유치원이 진정 모든 배움의 기초인 까닭이다.

학습지 쓰기를 강요하는 것은 학습에 대한 흥미를 저하시킨다.

비슷한 맥락에서 유아교육에서 학습지를 통한 교육은 매우 지양하는 것 중 하나이다. 오히려 위의 흥미나 의욕들을 쉽게 잃게 만드는 방법이다. 성인학습자도 앉아서 모르는 것을 반복해서 쓰고 읽도록 한다면 금방 지루함과 싫증을 느낄 것이다. 하물며 만3-5세의 유아들에게 이러한 학습방법은 일절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는 글자의 모양을 익혀 읽고 쓰는 것 처럼 보일지라도 아이는 학습이란 곧 지루하고 싫증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유아기에 이루어진 이러한 학습에 대한 흥미 저하는 쉽게 굳어져 이후에도 잘 바뀌지 않을 것이며, 장기적으로 봤을때 아이의 학습태도에 독이 될 것이다.


Q. 그래도 불안해요. 집에서는 어떤 한글 교육을 해줘야 할까요?


A. 3-5세의 유아들은 모든 것을 놀이를 통해 배웁니다.

성인 학습자에게는 강의나 토론식의 학습방법이 적절한 것처럼, 유아들에게는 유아에게 맞는 학습방법이 따로 있니다. 중요한 것은 문해가 풍부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그리고 놀이활동을 통해 글자를 익히게 해주라는 것이지요. 글자가 풍부한 환경이란 이를테면, 아이가 흥미를 보이는 그림책을 손쉽게 꺼내어 읽을 수 있는 환경(책꽂이에 꽂아두기보다 앞표지가 항상 보일 수 있도록 유아용 책꽂이를 마련한다면 더욱 좋겠지요), 아이가 공룡을 좋아한다면 공룡 이름과 그림함께 있는 포스터들을 마련하는 등 아이의 흥미에 관련된 단어들 제시, 아이가 친구에게 편지를 쓸 수 있도록 마련해주는 편지지들과 편지를 쓸 때 참고할 수 있는 용어들이 적힌 종이 등등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책을 가까이 하고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델링또한 굉장히 중요하겠지요. 그림책을 최대한 자주 읽어 주는 것 또한 매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글자를 익힐 수 있는 놀이들은 매우 다양합니다. 글자모양의 쿠키구워보기, 지점토나 찰흙으로 글자모양 만들기, 종이를 찢어붙여 글자모양을 꾸며보기, 한글 패션쇼 등을 보고 한글자음모음을 이용해 옷을 디자인해보기 등등.. 자를 쓰기 위한 손의 소근육발달 또한 매우 중요해서, 다양한 촉감의 미술재료들을 이용해 미술활동을 하도록 돕는 것도 좋겠지요. 퍼즐 등의 수,조작 놀이를 통해 공간능력을 길러주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이처럼 유아의 글씨쓰기는 단순히 의사소통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전 영역의 발달이 관련되어 있니다.

<힐링캠프>중 정혜영과 션 부부의 이야기.

션과 정혜영 부부의 일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생 2학년 자녀가 아직 한글을 쓰지 못한다고요. 그러나 부부는 괜찮다고 말합니다. 사랑이라는 글자를 쓰지 못할지라도,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경험하고 있기에 괜찮다고요.

바로 그것입니다. 글은 경험,감정,상황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날씨가 맑은 날, 사랑하는 엄마,아빠와 함께 놀이터에 가서 신나게 그네를 타고 돌아와 아빠가 자신을 씻겨주고 엄마가 그림책을 읽어주고 재워준 경험, 엄마와 아빠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에서 느낀 것이 바로 '사랑'임을 안다면, '사랑'이라는 글자를 쓰는 것은 언제 배워도 상관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유아기에는 그 감정과 상황을 여러모로 경험해보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지요.

머리로는 알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은 인내심을 가지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굉장히 빠르게 자라는 것같으면서도,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주어야 하기도 합니다. 새싹들이 자기의 힘으로 흙을 밀어 올리고, 햇빛과 물을 받으며 건강하게 자라나려면 , 물을 준 뒤에는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잠시 비켜서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신은 아이들을 위해 오랜 기다림을 인내할 수 있는 어른들에게 부모와 선생님의 자리를 맡겨 았을테니까요.



(*글 중 사례는 실화이며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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