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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꿀꿀 Nov 06. 2019

교사가 회사원이 부러운 순간 Best 1

여기는 어딘가? 대혼란의 유치원:급식시간 편

점심시간이다.

배식을 받으려 복도에서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은 복도에서 배식을 받은 후 교실에 들어와 먹는다. 나는 아이들이 장난을 치진 않는지, 앞의 친구를 밀지는 않는지, 손으로 문을 건드리지는 않는지 살펴보며 앞문에 서있다. 잠시 눈을 뗀 사이에 문을 건드리며 장난치던 아이가 손가락이 낀 적이 있어 계속해서 모든 아이들을 주시해야 한다. 그때 한 아이가 배식을 받아 교실 안으로 조심조심 걸어오다가 순간, 손이 미끄러졌는지 급식판을 그대로 놓친다. 당황한 아이는 그 자리에서 와앙 울음을 터뜨린다. 자원봉사자님께서 달려들어 떨어진 급식판을 주우시는 동안 나는 아이를 달래고 휴지를 가져와 옷에 묻은 음식물을 허둥지둥 닦아주고는 가서 손을 닦으라고 이야기한다. 그동안 줄의 맨 끝의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 있다.

 '선생님-, 선생님-, 수인이가 재현이를 밀어서 재현이 울어요. '
'아니에요, 나는 안 그랬는데 쟤가 나를 때렸어요.'
'아니야 네가 먼저 그랬잖아!'

그러면 나는 얼른 줄의 맨 끝으로 달려가 왜 싸웠는지 묻고, 누가 누굴 때렸는지, 다치진 않았는지, 앞으로 화가 나도 말로 해야 한다는 등의 지도를 마치고 화해까지 서둘러 시킨 뒤에 앞문으로 돌아온다. 교실을 들여다보니 그 와중에  누군가가 급식판을 자리에 놓다가 바닥에 국물을 흘렸다. 지나가다 그 국물을 밟은 아이가 나에게 소리친다.

'선생님 저 양말 젖었어요!'

그러면 나는 서둘러 바닥의 국물을 닦고, 그 아이에게 사물함에 가서 양말을 꺼내 갈아신으라고 말한다. 동시에 배식을 받아 들어오는 아이들이 식판을 떨어뜨리지 않고 잘 들어오는지 살펴본다. 동선이 얽혀 아이들이 서로 부딪히면 뜨거운 국물에 데는 불상사가 있을까 염려된다. 그렇기에 앉아있는 아이들이 장난치며 일어나지 않도록 예의 주시하고 잔소리를 한다.

이 모든 것이 배식하는 10분간 이루어진다.

디어 배식이 끝나면, 머리도 띵하고 허리도 아프지만 너무나도 허기졌던 나는 밥을 한 숟가락 뜬다. 그렇게 2분 정도 지났을까, 점점 아이들이 소란스러워져 가장 조용한 모둠이 어딜까 본다며 여기저기 둘러보는 척을 한다. 그러면 조금은 소란이 잦아든다.  그때 하나둘씩 아이들이 나를 찾기 시작한다.

'선생님, 저 목마른데 엄마가 물병을 안 챙겨줬어요.'

'선생님, 수아가 후식부터 먹고 있어요.'

'선생님, 미진이가 저 싫다는데 계속 건드려요.'

그러면 나는 수아에게 밥부터 먹자고 잔소리를 하는 동시에 일어나 조리실로 달려가 컵에 물을 따라와 물이 없는 아이에게 준다. 자리에 앉으며 미진이에게는 친구를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다시 밥을 한 숟갈 뜨려는데 주아가 내게 와서 속삭인다.

'선생님, 저 응가 마려워요.'

그러면 나는 주아와 함께 화장실에 간다. 주아를 도와주고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이제야 우걱우걱 밥을 먹으려는데 이미 밥을 다 먹은 수인이와 수현이가 식판을 들고 와 정리해도 되는지 묻는다. 때 수인이의 어머니가 수인이가 잔반을 남기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 떠오른다. 수현이는 평소 나물을 싫어하는 습관 탓에 나물을 다 남긴 것이 보인다.

'수인이는 오늘 밥 남기지 않고 다 먹어자.'

'수현이는 나물 한 번만 더 먹고 후식 먹고 정리하자.'

그리고 나는 남은 밥을 입에 욱여넣는다.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톡톡 치며  말한다.


'선생님, 치약 짜주세요. 나 치약 잘 못 짜요.'

아아, 얼른 먹고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벌써 밥을 다 먹고 양치질을 하는구나. 나는 시계를 본다. 밥을 먹기 시작한 지 10분여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밥을 맨날 마시듯 빨리 먹어서 건강 해로운 게 아닌가, 생각하지만 건강까지 챙길 여유는 없다. 생각이라는 것을 할 여유가 없다. 지금 내 눈앞에는 양치질을 하다가 거울에 물을 장난을 시작할 것 같은 말썽꾸러기들이 보여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허둥지둥 내 잔반을 처리한 뒤 아이들의 양치질을 돕는다. 이 와중에 서진이가 보이지 않는다. 서진이는 양치질을 싫어해 안 해놓고도 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아이라 주의가 필요하다. 한 번은 양치질했다고 거짓말한 뒤 집에 가 잔뜩 화가 난 부모가 전화해 왜 아이가 양치질을 안 하고 집에 오냐며 소리를 질러댔더랬다. 당신 아이가 거짓말한 건데 왜 저한테 화를 내십니까, 애를 혼내야지. 스무 명이 훨씬 넘는 아이들이 있는데 양치질했다고 거짓말한 걸 나란들 어찌 안답니까. 나도 화내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찌 되었든 간에 유치원에서의 양치질 지도는 내 몫이니까. 한숨 쉬며 둘러보니 역시나, 양치질이 하기 싫어 화장실로 도망을 갔다. 나는 서진이를 데려다가 양치질을 시키고, 양치질 다 한 아이들은 책을 읽는 등 조용한 놀이를 하도록 한다. 뛰어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조용히 놀이하라며 잔소리를 하는 동시에 나는 투약함을 꺼내 가정에서 보내온 약을 먹인다. 이렇게 약까지 먹이면 점심시간 나의 할 일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다. 시계를 보면 30분이 지나있다. 말 그대로, 전쟁 같은 30분이다. 이제 아이들을 모아 앉혀 새 노래 배우기 수업을 해야 한다.

어쩐지 제육볶음이 얹힌 것만 같다.

그렇게 급식시간이 끝난다. 급식시간이 끝나면 아이들 하원 시간이 다가오므로 아이들 앞에서는 그나마 '아이고 힘들어 죽겠다'소리는 참을 수 있다. 매일 렇게 밥을 마시는데도 잘 소화시켜주는 위장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부러운 건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수다를 떨며 밥을 먹고, 커피를 사 마실 수 있는 회사원이다. 물론 공립 유치원은 다른 학교급과 마찬가지로 점심시간도 근무시간임을 인정해주기 때문에 퇴근이 일반 회사보다 한 시간 른 4:40분이다. 그러나 한 시간 일찍 퇴근한다 해도 아이들에게 에너지를 쏟아 그런지 체력이 부친다. 게다가 사립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은 그런 것도 없이 기본 오후 6시 퇴근이란다. 똑같이 고생할 텐데.. 어쩐지  마뜩잖다.


아이들의 점심식사 지도란 교사로서 숙명적인 것이니 어찌 불만을 가지. 그러나 아이들이 10명, 하다못해 15 정도로만 줄어도 아이들 개개인에게 교사의 손길이 더 많이 닿을 수 있을 텐데.. 늘도 망상을 해보지만 그러려면 10년 정도는 걸릴 것 같다. 최소한, 교사들이 점심시간에도 이렇게 고강도의 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아줬으면..

오늘도 점심시간 밥알 넘길 틈도 없이 고생하시는 모든 교사들 노고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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