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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꿀꿀 Nov 02. 2022

어느 새벽, 이태원에 갔냐는 할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태원 참사를 깊은 마음으로 애도합니다.

10월 30일 일요일, 아침7시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

자는데 전화가 울렸다. 이 새벽에 누구야? 잠시 인상을 찌푸렸지만 발신자가 할머니인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전화를 받는다.

-네 할머니. 새벽부터 무슨 일이세요?

-아이구야, 너 이태원 안갔냐.

이 새벽에 갑자기 웬 이태원? 영문을 몰라하자 할머니의 잠긴 목소리가 낮게 갈라진다.

-아이구 무서워라. 니가 거기에 있을까봐 할머니 새벽내내 잠을 못잤다. 이태원에서 사람이 깔려서 백오십명이 죽었댜, 아이구야, 엄마랑 같이 있지? 꼭 붙어있어라. 먹고싶은거 있으면 할머니집에 와서 먹고잉.


나는 속으로 할머니가 뉴스를 잘못 들으셨나보다고, 어떻게 이태원에서 백오십명이 죽냐고 생각하면서도 말한다.


-그럼요 할무니. 네네. 집에 꼭 붙어있을게요.

옆에서 잠에서 깬 엄마가 부스럭하며 일어나셨다.

-할머니야?울 엄마 어디서 뭘보신거야. 무슨 이태원에서 사람이 백오십명이 죽어..

그러게 엄마, 근데 할머니가 저러시는걸 보니 무슨 사고가 있나 하면서 나는 핸드폰을 켠다.

-이태원 압사사고, 사상자 300명이 넘어..

내 눈을 의심한다.

압사? 내가 알던 그 이태원에서? 압력에 의해 죽음에 이르는, 이름도 생소한, 내가 아는 그 압사? 사상자가.. 300명이 넘는다고?

그러고보니 친척동생에게서 부재중전화가 찍혀있다. 시간은 새벽 한시 반. 무슨 일이지? 불안한 마음에 연락해보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무 일 없겠지. 곧이어 이틀 전 내게 할로윈데이를 맞아 이태원에 놀러가자고 했던 친구에게도 곧장 전화를 걸어본다. 나는 일이 있어 거절했지만 친구는 남자친구와 함께 이태원에 놀러간다고 했더랬다. 몇번의 신호음이 지난 후 친구가 전화를 받는다. 나도 모르게 불안했던 마음이 폭 가라앉았다. 친구는 홍대에서 놀았다고 ,이태원에 가자고 해서 미안하다고 내게 사과를 했다. 나는 괜찮다고,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끊는다.


뉴스를 틀어보니 계속해서 속보가 나오고 있다. 심각한 아나운서들의 표정과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현장상황이 흘러나온다. 겹겹이 끼어있는 사람들과, 깔린 사람을 빼내려 해도 빼내지 못해 망연자실해하는 소방관의 뒷모습, 거리 곳곳에서 코스튬을 한 사상자들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 채널을 돌려본다. 다른 채널들도 역시나 이태원 속보를 내고있다. 믿기지 않는 뉴스들을 멍하니 쳐다본다. 나도 가끔 놀러갔던, 어쩌면 어제도 놀러갈 수도 있었던 이태원 해밀턴 호텔 옆 익숙한 골목, 익숙한 거리, 그리고 내 또래의 여자들과 내 또래의 남자들.


하루종일 기분이 가라앉아있었다. 오후가 되자 연락이없던 친척동생에게서 연락이 온다. 새벽에 술마시고 전화했다고 한다. 아휴, 난 또. 내 주위 사람들의 안위를 확인하니 모두가 무사한 듯 하다. 그러나 안도감이란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안타까운 마음에 자꾸만 뉴스를 찾아본다. 실시간으로 자꾸만 사망자가 늘고 있다.


사람이 저렇게 죽어서는 안되는것 아닌가. 허망하다. 가족과 외식을 하다가도,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다가도 문득문득 그들이 떠올랐다. 내 또래의 사람들, 친구, 동생, 언니 오빠같은 사람들. 살아있었다면 이렇게 일상을 지냈겠지.  친구를 만나 어제 이태원 사람 진짜 많더라, 다신 안가야지 하고 헤프닝처럼 이야기하고 고개를 흔들었을 수도 있겠지. 뉴스와 인터넷에서는 별의별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당국의 예방이 미흡했다는 이야기, 저런 사고를 어떻게 예방하느냔 반박, 원인 규명을 해야한다는 목소리,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에 대한 문제, 구급차를 보면서도 노래를 부르며 춤추던 사람들을 향한 비난, 사람들을 구한 의인의 이야기, 생존자들과 목격자들의 트라우마를 염려하는 목소리..


뉴스를 읽으며 커피를 마시다가 유리컵이 깨졌다. 엄지손가락이 조금 베여 피가 났다. 손가락을 지혈하며 그들이 떠올랐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 얼마나 아팠을까.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자꾸만 눈앞에 장면들이 어른거렸다. 음악이 흘러나오던 이태원의 거리, 온 힘으로 심폐소생술을 하던 구급대원들과 경찰들과 시민들,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는 사람들, 코스튬을 한 사상자들. 계속 뒤척거리다가 새벽에 다시 깼다. 또 사람들이 생각난다. 무섭다. 숨이 막히는 것 같다. 나는 기도를 했다. 고인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했는데 원망의 말이 나왔다. 어떻게 저런 일이 있어요,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고요. 저 사람들 어떡해요. 저 아까운 생명들을 어떡하냐고요…

아무래도 잠이 오질 않아 또 이런저런 뉴스를 다시 뒤적이다가, 신경정신의학회가 관련뉴스를 너무 자주보면 트라우마가 남을 수 있어 자제해야 한다고 당부한 뉴스를 보았다. 길거리를 걷다가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뒤로하고 살아있는 자들은 뉴스조차 가려보며 정신건강을 챙겨야 할만큼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에 또 한번 몸서리를 쳤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시민들이 심폐소생술을 해주어 회복했다는 부상자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내가 저기에 있었다면 제대로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었을까. 올해 중순에 배웠던 심폐소생술을 복기해본다. 절대 잊지 말고 계속 복습해야겠다고 하며 만화를 그려 공유해보았다.

이틀이 지나고 펜스가 쳐진 그 골목에서 제사상을 차린 상인의 사진이 기사에 났다. 애들한테 밥 한끼는 먹여야 될것 아니에요, 상인은 제사상 앞에서 울었다고 했다. 그를 말리던 경찰들도 눈물을 흘리며 상인의 어깨를 다독였다는 뉴스를 보며 나도 훌쩍였다. 3시간동안 무릎에 멍이 들어가며 사람들에게 cpr을 한 간호사자매의 인터뷰가 나왔다. 경찰관,소방관에게 커피와 휴게공간을 제공하려 매장 불을 켜둔 빵집의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11 5일까지 국가애도기간이 지정되었다. 이런 종류의 아픔은 절대 쉽게 잊히지 않기에 자기의 자리에서 서로에게 애도와 위로를 보내며 다독여야 하기 때문이리라.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야할텐데, 유가족의 아픔은 어찌할  있을까. 다시는  누구도 이렇게 희생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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