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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꿀꿀 Nov 11. 2022

완벽한 백수가 되는 방법

k-백수가 되기 위한 까다로운 조건들

나는 얼마 전 공무원을 내 손으로 그만두면서 졸지에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 그만두고 제일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그래서 지금 무슨 일을 하냐는 것이었다. 그런 질문을 받을때마다 열심히 답하다 언제부턴가 귀찮아져서,

- 저 그냥 백순데요!?아무것도 안해요.

라고 답하기 일쑤였는데, 어느날 문득 백수의 사전적인 의미가 궁금해졌다. 백수란 말이 아마 한자일텐데 왜 직업이 없는 사람을 백수라고 부를까? 백수임에 최선을 다하려면 의미부터 알아야지 싶어 인터넷에 ‘백수’를 검색했다.


99세 어르신의 기념일이란 얘기가 맨 처음 뜬다. 99세까지 살기에 성공하면 또 ‘저 백순데요?’하고 소개할 날이 오겠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곧이어 국어사전에 ‘백수’를 검색하고 나는 폭소를 참을 수 없었다.

백수: 돈 한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 먹는 건달
(출처:네이버 국어사전)

백수가 단순히 직업없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말 뜻으로는 이런 뜻이었다니! 국어사전의 뜻대로 완벽한 백수가 되기위해 갖춰야할 조건은 아래와 같은 것이다.

돈이 한푼도 없다.

빈둥거리며 놀고 먹는다.

건달이다.

내가 빈둥거리며 놀고 먹기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돈도 한푼정도는 있고 건달은 아닌데 어쩌지? 건달이 되어야하나? 이것 참, 한국에서 완벽한 백수되기란 참 까다롭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어쩌다 직업없는 사람을 백수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한자 뜻을 보니 ‘白흰 백, 手손 수’자를 쓴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손’으로 풀이되는 의미를 보니 아마 직장이고 돈이고 손에 쥔게 아무것도 없어 백수라고 지칭하나보다.

그러고보니 나 지금 맨손인가?
근데 뭔가를 쥐었을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한걸.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내가 참 쓸모없는걸 골똘히도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수의 의미에 대해, 그것도 월요일 오전에 이불속에 누워서 이렇게나 깊게 생각해본 시간을 가질 수 있는건 역시나 백수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어쨌거나 요즘은 매일이 즐거운 백수의 나날들이다. 요즘은 심지어 백수답게 돈없다고 칭얼거리기도하고 친구들에게 밥도 곧잘 얻어먹고 다닌다. 백수가 돈이 어딨냐고 에 커피까지 주는 친구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덕분에 백수의 이마가 더욱 윤기나고 있으니 말이다. 부모님도 딸이 백수가 됐는데 어째  행복해한다고, 유튜브고 뭐고 이것저것 재밌는걸 한다고 응원해주신다. 백수생활이 이렇게 행복한 거였다니! 게다가 얼마  전자책까지 내서 돈도 한푼두푼 생기고 있다. 이따금씩 수입이 있는걸 프리랜서라고들 한다지만 수입은 가끔 있을 수도 있는거니까 그냥 백수라고 하기로 한다. 백수가 온전히 백수로 존재하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나는 아무래도 그냥 백수로 남고 싶다.


앞으로 직업을 가지더라도 나의 정체성을 백수로 정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태어나서 제일 행복한 시기는 학창시절도, 대학생때도, 교사일때도 아닌 백수인 지금이니까. 백수란 가진게 없는 맨손이라는 뜻이라 자칫하면 비하의 의미도 띈다던데, 따지고 보면 누구나 맨손으로 태어나고 맨손으로 떠나는데 사실 맨손인게 제일 자연스럽고 행복한 상태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요즘에 누군가를 새로 만나면(만날 일도 잘 없지만)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봐주길 은근히 바라기까지 한다. 씨익 웃으면서 백수라고 답할 수 있어 좋다.

이정도면 나, 제법 멋진 백수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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