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가 혼자 아플때 제일 서러운 점
어쩐지 낌새가 이상하다고 했다.
그렇게 기대하던 스미냑 비치 근처로 이동하는 날인데, 기대감은 커녕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데다가 계속 배가 아프고 27도의 날씨임에도 계속 오한이 났다. 어제 저녁에 숙소의 낡은 정수기에서 물을 떠먹은 탓일까? 어쩐지 필터를 한번이라도 갈았을까 싶을만큼 위생상태가 수상쩍기는 했다. 아니면 편의점에서 불닭볶음면을 발견해 신난다고 빠르게 먹어치운 것이 원인이었을까? 눈앞이 아찔아찔 어지럽던 나는 스미냑비치 근처의 한 캡슐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거의 쓰러지는 상태에 왔다. 도착한 곳은 물가가 비싼 바다 근처에서 가장 가격이 저렴한 캡슐호텔이었다.
계속해서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오한에 발리에서 한번도 꺼낸적이 없던 히트텍과 기모후리스를 꺼내 껴입고 잤다. 몇시간 후 깨어보니 잔뜩 오른 열과 땀으로 옷은 젖어있고 구역질마저 올라온다. 거기에 멈추지않는 설사까지. 아무래도 잠시 바람을 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대하던 바다에 왔는데, 이 1.5평도 안되는 캡슐 안에 갇혀 계속 앓을 수는 없었다. 몸을 억지로 이끌고 밖에 나왔다.
시간은 오후 4시. 아침식사를 한 후로 아무것도 못먹었으니 일단 뭔가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질어질한 상태로 바다까지 가면서 뭔가를 먹어볼까 살펴봤지만 입맛이 하나도 없었다. 잠깐, 내가 입맛이 없다니?
-이건 진짜다. 큰일났어.
평소 내 위장은 말그대로, 어디 ‘건강한 위장’대회같은 것이 있다면 내놓고싶을만큼 건강했더랬다. 아무리 아파도 끼니는 거르지 않는 나인데, 뭘 먹기가 싫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5분을 걸어 도착한 바다는 레기안 비치였다.
-바다가..하나도 안예쁘잖아?
그렇게 힘들여 걸어왔는데 바다조차 마음에 안든다니! 내가 좋아했던 스미냑비치는 7분을 더 걸어야 했다. 하지만 도저히 더 걸을수는 없었다. 나는 의자에 거의 쓰러지듯이 몸을 기대었다.
그때 눈에 띈건, 솜사탕장수.
바다에 오며 햄버거,피자,볶음밥,치킨 등 수많은 음식점을 토할것같다고 생각하며 지나왔지만 어쩐지 솜사탕만은 먹고싶었다. 이천원을 주고 산 솜사탕을 게눈감추듯이 먹어치웠다. 먹었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다. 커다란 솜사탕은 5분만에 입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솜사탕을 다 먹고나니 또 오한이 들고 배가 아파온다. 다시 죽을똥살똥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한과 발열과 복통과 설사와 구토를 5콤보로 후드려맞다가 소염제와 타이레놀 한개씩을 먹고는 다시 5시간을 내리 잤다. 깨어보니 시간은 밤10시가 다되어가고 있었다.
이성적인 생각이 가능할즈음이 되니 갑자기 엄청난 서러움이 몰려왔다.
엄마가 해준 뜨신 밥먹고 전기장판에 누워서
고양이랑 강아지랑 쎄쎄쎄나 하고 놀걸.
왜 여행온다고 집을 나와서는 이 고생이람.
여행을 떠나온지 한달이 넘어 처음으로 여행온걸 후회한 순간이었다. 아무도 와줄 수 없는 먼 타지에서 혼자 앓고있다고 생각하니 나는 점점 더 서러워졌다. 비치클럽이 즐비한 숙소밖에선 여행자들이 밤새 노는지 음악소리도 유독 크게 들려온다. 난 아파서 1.5평짜리 관짝같은 캡슐에서 앓고있는데 ,사람들은 다들 신나서 엉덩이를 흔들며 춤추고 놀고 있는 것 같은 상상에 소외감까지 들어 집에 가고싶어졌다. 그렇지만 호기롭게 세계여행을 하겠다고 큰소리 뻥뻥치며 나와서 고작 장염에 걸렸다고 비틀거리며 집에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약효과가 들어 정신을 차려가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정신이 맑아질수록 진짜 필요한게 뭔지 점점 알것 같아 더 괴로웠다. 사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건 얼마나 아팠는지 엄살을 들어주고, 물수건을 얹어주고,그러게 조심좀하지 하는 잔소리와 쟁반에 담긴 죽과 간장같은걸 챙겨줄 사람이라는걸. 그렇다고 한국의 가족에게 말하자니 어떻게 해줄수있는 것도 아닌데 걱정이라는 짐만 던져놓을 것 같아 정말이지 나는 밤새 혼자 끙끙 앓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점은 한국에서 가져온 알약 두알의 효과였는지, 혹은 약16시간의 잠이 보약이었는지 다음날 아침7시가 되자 말짱하니 눈이 떠지더니 배가 고파졌다는 사실이다. 아침으로 나온 스크램블에그를 삼키며 생각했다. 여행오기 전엔 마냥 신나고 즐거울것만 같았는데, 정말 희노애락이 다있는게 여행이구나. 단순히 아프지 않은 그 모든 평범한 날들이 더할수없이 감사한 날들이란걸 아파보니 깨닫는다.
아아, 근데 어제 먹은 솜사탕맛은 잊을수가 없다. 오늘은 솜사탕이나 하나 더 사먹으러 바다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