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단체생활엔 치가 떨려
오늘도 요가원에선 해뜨기 전부터 요가수련이 시작되었다. 새벽 6시부터 시작되는 수련은 저녁 7시 반이면 끝이 나지만 일과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저녁까지 함께 먹고, 말을 걸어오는 옆사람들과 대화를 마치고 밤 9시가 되어서야 방에 들어갈 수 있다. 아침, 점심, 저녁식사 전부 20명이 넘는 요가원 식구들이 거실에 동그랗게 앉아 함께 먹으니 하루에 최소 12시간-15시간까지 요가원 식구들과 함께해야 하는 일정인 것이다.
문제는 다름 아닌 내게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격렬하게 필요한 내향적인 성격인 내게 요가원의 스케줄은 극히 살인적이었다. 수련한 지 며칠이 지나자 나는 이제 그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은 단계에 이르렀다. 목에 ‘말 걸지 마세요, 묵언수행 중입니다’ 하고 안내문이라도 걸고 다니고 싶은 심정. 내 마음도 모르고 요가원 친구들은 얼굴만 마주치면 How are you, 를 물어온다. 그럼 나는 억지미소를 지으며 굿, 땡큐, 앤드 유?를 물어야 하고 또 대답이 돌아오면 말을 해야 하고…
제발 더 이상 말 걸지 말아 줘, 제발!
그런 마음으로 지내다 보니 하루는 아침에 눈을 뜨니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 누구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전부 수업에 갔을 시간에 살금살금 거실로 내려와 밥을 깨작대고 먹는데 선생님들 중 한 명인 인도인 시다파가 옆에 와서 물었다.
-Jiwon, are you okay? (지원, 괜찮아?)
시다파의 다정한 말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다. 시다파에게 나는 이런 스케줄이 너무나 힘이 들고, 근육통으로 온몸이 아파 요가도 그만하고 싶다고,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도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시다 파는 그런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인디아에 오면 사람들은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느낀다고 해. 그렇기 때문에 인도가 인도인 거야. 인디아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겨도 평정심을 유지하는데 익숙한데, 왜냐면 이곳은 어떤 일이든 생길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네가 인도여행을 와서 이걸 배워가야 하는 거야.
결국은 이겨내란 이야기였지만 어쩐지 묘하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였다. 그래, 인도여행은 보통 생각하는 여행과는 다르지. 단순히 먹고 즐기는 여행을 하려면 인도에 오지 않았을 것이었다. 처음 인도요가여행을 결심했을 때의 내가 생각났다. 그때의 나는 무엇이든지 닥치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시다 파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네가 원래 혼자 여행했고 내향적인 성격이었던 것은 과거일 뿐이야. 지금은 지금이기에 다르고 미래는 알 수 없기에 경험해봐야 하는 거야. 세상은 넓고 만만치 않지. 세상 밖에 나왔을 때 어떤 사람들,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고, 그걸 경험하기 위해 넌 여기에 온 거야. 무엇보다.. 지금 느끼는 감정들, 자신감 없고 두렵고 하기 싫은 그런 모든 감정들이 분명히 너를 강하게 만들 거야.
시다 파는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데 어쩜 이렇게 어른스럽지? 하는 꼰대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눈물이 줄줄 났다. 그 말들이 그렇게 위로가 될 수 없었다. 시다 파는 조금 더 쉬고, 가능하면 오후수업에는 참여해 보라고 다독여주고는 일어났다. 고마워요, 시다파!
그래. 내가 편하고 나 좋을 대로만 있으려면 이 수련에 참여하지 않았겠지. 나는 아침식사한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나서 마당에 나갔다.
마당에 나가니 항상 묶여있는 개 심바가 꼬리를 흔들었다. 심바의 목줄을 잡고 산책을 나가자니 기분이 풀렸다. 신난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건 언제나 행복한 일. 조금 기분이 나아진 나는 사실 이 평화로운 곳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렇게 나는 하루동안 자체휴일을 가졌다. 대학생때 하던 자체휴강을 몇 년이 지났는데도 하고 있다니.. 사람은 참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래도 소득이 있다면.. 내가 나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다는 사실. 단체활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 싫지만 그럼에도 위로해 주는 따뜻한 생명체들이 있다면 그걸로 괜찮다는 것.
그 따뜻함에 힘입어 내일부턴 다시 열심히 해보자고 마음먹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