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렛을 먹으면 우리는 초콜렛인가요?
요가원에 오고 가장 일상과 달라진 점은 다름아닌 먹거리였다. 요가원에서는 계란조차 먹지 않는 완전비건식단을 고수하고 있었는데, 아침식사는 보통 바나나와 파파야 등의 과일과 토스트, 콘프레이크 등이 나왔고 점심과 저녁식사로는 카레와 짜파티 같은 음식들이 나왔다.
요가 이론수업을 들을수록 요가는 단순히 운동의 한 분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가에서는 먹는 것과 자는 것, 말하고 표현하는 정신적인 것까지를 모두 포함해 요가라고 불렀다. 그럼에도 알려진 것과는 달리 고난도의 수련을 하지 않는 이상, 요가를 한다고 해서 채식을 실천하는 것이 필수는 아니라고 했다. 다만 요가를 하기 전 하는 힌디어기도에서 이 우주의 모든 것과 일체가 되는 것을 기도한다는 점, 인도정통의학인 아요르베다에서 대부분의 체질에 붉은 고기를 권장하지 않는 점을 보면 요가에서는 채식을 지향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가 이론 책에는 식사를 할 때의 몇가지 지향점이 적혀있었는데, 위의 1/4은 물로 채우고, 1/4는 비워두며 나머지 1/2만 음식물로 채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했다. 굶주림을 채울정도로만 먹되, 무겁거나 게으름이 느껴질 정도로 먹는 것은 피해야한다고 했다.
이 요가정신에서의 이상적인 식생활은 무언가 모르게 감명깊었다. 요가에서는 식생활 또한 절제를 하고 중심을 잡는 수련 과정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기 때문에
먹는 것은 중요합니다.
선생님은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이 말그대로 우리의 근육과 뼈와 피를 이루는 모든 것에 일조하기에 언제나 자연의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온 글로리아는 그럼 초콜렛을 먹으면 우리가 초콜렛인가요, 하고 물었다.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지만 나는 속으로 내가 먹은 수많은 엽기떡볶이와 불닭볶음면을 떠올리며 나는 이미 캡사이신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자, 이제 머리로 배우기는 배웠는데..
솔직히 배운 것과 다르게 나는 여전히 음식을 욕망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음식은 더이상 단순히 굶주림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금전적인 가치평가의 대상이 된지 오래인 듯 하다. 그렇기에 세상엔 최대한으로 미각과 뇌를 자극하는 달고짜고매운 별난 음식들이 가득하고, 그것들을 먹는 모습을 담은 영상조차도 상품이 된다. 문제는 가장 큰 목적이 금전적인 이득이다보니 그 과정에서 식재료가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려하지 않게 된다는 점, 애꿎은 동물들 또한 단지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점일 것이다. 비윤리적인 도축과 공장식 축산과 과도한 육식생활은 결국 지구를 파괴하고, 그 폐해는 결국 인간에게도 돌아온다는 점까지..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라는 것은, 식재료들이 개개인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식생활이 곧 우리의 시스템이라는 말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 모든 것을 충분히 안다. 알긴 알겠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치킨과 엽떡과 라면이 먹고 싶다. 이성과 따로 노는 이 마음을 정말 어쩌면 좋지? 아마도 나는 진정 아는 것이 아닐 것이다. 단순히 지식들을 아는게 진정한 앎은 아니라고, 기억은 안나지만 어떤 철학자가 그랬다.
그래도 .. 배웠다고 다 실천할수 있으면 내가 성인이었겠지. 한명의 완벽한 비건 1명을 만들기보단 비건친화적인 사람 100명을 만드는 것이 훨씬 세상에 이롭다고 하지 않나. 적어도 3끼 중 1끼라도 비건을 실천해보자고, 단 한명의 완벽한 비건은 못되어도 적어도 비건친화적인 사람 백명 중에 한명은 되자는 생각으로 지내보자고 스스로를 토닥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