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enjoy, Be happy!
벌써 요가원에 온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그간 한국에서 전기장판을 켜놓고 누워서 과자나 주워먹던 무겁고 뻣뻣한 몸을 하루종일 요가로 혹사시키려니 온 몸이 근육통으로 지끈거렸다. 나는 앞으로 굽혀봐야 엄지발가락에 간신히 손이 닿는수준인데, 이곳 요가원 동기들은 무슨 고무지우개마냥 몸이 휙휙 잘도 구부러진다. 바로 요가선생님을 해도될정도로 프로인 친구들도 많은데다 유럽에서 온 몇몇 수강생들은 정말이지 마네킹같은 몸매에 잘 단련된 근육까지 갖췄다.
-아, 여기가 내가 있어도 될 자리가 맞는걸까.
게다가 모든 t를 dd로 발음하는 인도식 영어발음에 적응하기도 힘든데, 요가수업에 이어지는 인도인 선생님의 이론수업과 철학시간까지 참석해야 한다. 그렇지만.. 누가 여기에 오라고 칼들고 협박한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해서 내 돈까지 내고 온 것이 아닌가.
나는 오늘도 울며 겨자먹기로 철학수업에 들어가 앉았다. 단상에 기다란 턱수염을 한뼘이나 기른 맨발의 선생님이 앉았다. 선생님과 다함께 '태초의 소리'를 뜻한다는 옴— 소리로 철학시간은 시작되었다.
옴(OM)-
오늘의 주제는 요가의 근원과 기초정신에 대한 이야기.
요가의 무슨무슨 파가 있다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듣자마자 까먹었다. 그냥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우리가 이번과정에서 배울 것은 아쉬탕가 요가라는것은 잘 이해했다. 밥을 먹은 뒤라 어쩐지 의식이 점점 몽롱해져가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요가벨트를 던지고 소리치는게 아닌가.
Oh my god, It’s a snake!(으악, 뱀이다!)
주변이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다행히 나만 졸은 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며 정신을 차린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선생님을 봤다. 선생님은 벨트를 집어들더니 ‘휴, 어두워서 착각했네. 이건 벨트일 뿐이잖아?’하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러더니 우리를 향해 물었다.
Q.내가 만약 방금처럼 벨트를 뱀이라고 착각했을때, 벨트는 내 의식 안에서 뱀이었어요. 이것은 그렇다면 벨트일까요, 뱀일까요?
오. 이거 좋은 질문인데. 약간 멍해진 우리를 향해 선생님은 계속 말했다.
-모든 것은 우리의 의식이 만든 허상이에요. 밖의 저것은 나무고, 이 앞의 학생 이름은 마틸다고, 이곳은 요가원이고.. 그걸 누가 정었나요? 우리의 의식이 그렇게 규정지었을 뿐이죠. 그렇다면 리얼리티, 진짜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역시 철학시간다웠다. 사실 세상의 모든 것이 우리의 의식이 만든 것이라는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꿀벌에게 보이는 세상과 개에게 보이는 세상과 인간에게 보이는 세상은 모두 다르니까, 사실상 실제 세상이란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는 우리의 감각을 통해 알고 규정할 뿐. 당장 나만 하더라도 철학시간이라고 규정된 시간을 졸음의 시간으로 썼으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두터운 턱수염 사이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물에 떠가는 거품이 있다고 생각해보죠. 거품은 화학작용으로 생겨 몇시간뒤면 사라집니다. 만일 거품이 떠가면서 ‘난 어디로 가고있는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줄까요? ‘응, 넌 화학작용으로 그냥 생겨났을 뿐이고, 몇시간 뒤면 사라질거야.‘ 우리도 거품과 마찬가지아닌가요? 우연히 생겨나 죽음을 향해 가고있고, 잠시 이 시대를 살다 떠날 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거품일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너무 많은 생각을 가지고, 답할 수 없는 수많은 질문을 안고, 과거를 돌아보며 살아갑니다.
You are here. Just enjoy. Be happy!
(당신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냥 즐기세요. 행복하세요!)
가슴이 약간 벅차오르고 눈물이 조금 고이는 이야기였다. 철학시간이 끝난 뒤에도 선생님의 이야기가 마음속에 맴돌았다. 여기에 와서 몸이 조금 아프다고 걱정하던 일, 다른 수강생들의 몸매를 보며 나도모르게 비교하던 일도 떠올랐다. 다 지난 과거를 붙들어놓고 꺼내보느라 현재를 흘려보내던 수많은 날들, 그리고 오지않은 미래에 대해 걱정하느라 지나쳐버린 수많은 순간들이 떠올랐다.
참 그렇다. 고작 몇십년, 잘살아야 100년 넘짓을 사는 인간의 삶이라는 건 정말 잠깐인데. 그 안에서 나는 물질이든 외모든 시시때때로 변하고 사라질 것들에 너무 집착해오지 않았나. 거품처럼 바람불면 사라질 것들을 기준삼아 남들과 비교해가며 나 스스로를 괴롭게 하지는 않았나.
이제는 지나고보면 아무것도 아닐 일들로 나를 지지고볶고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다만, 웃으며 살아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