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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꿀꿀 Mar 04. 2020

많아도 너무 많다, 유치원이 무슨 콩나물시루도 아니고

유아중심 놀이교육이요? 여기서요?

유치원 교사로서 아주아주 무서운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소집단 활동을 할 때 드는 생각.

(*소집단 활동: 보통 5-6명 정도의 모둠을 나누어 활동하는 것으로 요리, 과학실험 등 안전한 수업을 위해 활용한다. 텃밭 가꾸기 활동 등을 할 땐 10명까지도 나눈다.)


아, 딱 지금 이 아이들 수 정도만 우리 반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면 스스로 나쁜 교사가 된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제 아무리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라도 한 번씩은 이런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 학급에 유아들이 많아도 너무, 정말 너무너무 많기 때문이다.

현재 유치원의 학급 정원은 이렇다.

만 3세 : 16명
만 4세: 22명
만 5세: 26명
*2020년 기준

이 정원을 누가 처음 정했는지 몰라도, 아마 대여섯 살 아이들과 다만 한 시간이라도 제대로 시간을 보내본 적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한 반에 교사는 몇 명일까?

당연히 한 명이다. 상황이 좋은 사립유치원은 보조교사가 한 명 정도씩 더 배치되는 것으로 알지만, 여전히 정교사는 한 명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부모가 되어본 적이 없는 젊은 청년들 조차도, 놀라며 정말 힘들겠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교육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기함할만한 학급 정원을 도대체 왜 줄이지 않을까 의문이 생긴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정 교사 대 아동 수의 비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같은 수의 3세 아동을 우리나라는 성인 1명이 돌본다면, 영국에서는 4명의 성인이 돌보는 수준으로 차이가 난다. 일본은 3배 정도의 차이가 난다.


 아이들은 모두 개별 흥미와 성격, 성향이 다르다. 한 학급에 다문화가정, 조손가정, 한부모가정, 저소득층,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의 유아들이 모두 존재할만큼 가정적/문화적/사회적 배경도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유아들은 교사의 관찰과 세심한 교육적 지원을 필요로 하며, 연령이 어리기에 성인의 직접적인 돌봄 또한 필요로 한다. 2019년도에 개정된 누리과정은 더욱더 유아 한 명 한 명을 중심으로 교육할 것을 요한다. 그러나 이렇게 과밀한 학급에서 어떻게 유아들의 개별 흥미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에 맞추어 수업을 준비하며 교육할 것인가? 가당치도 않다. 당장 코 앞에 있는 유아는 우유를 쏟고 동시에 다른 유아들은 서로 싸우고 울며 선생님을 찾는 상황이 하루에도 수십 번인데, 그런 기본적인 유아들의 필요만 채워주기에도 교사의 몸이 하나로도 모자라다.

게다가 유치원은 아이들에게 단순히 밥을 먹이고 재우고 화장실만 보내는 공간이 아니다. 유아들이 인생에서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또래관계를 맺어보며, 단체생활의 규칙을 배우는 곳이다. 유아들은 유치원에서 양치질을 제대로 하는 방법, 급식을 골고루 먹는 습관, 친구에게 고맙다는 표현을 하거나 갈등을 해결하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해보는 등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처음으로 배워다.


요즘같이 아이들이 귀한 저출생 시대에 정말로 아이들을 마치 짐승을 키우듯 밥만 먹이고 기르면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나 교육자는 정녕 없을 것이다.  만약 교사가 아무런 교육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유아들을 단지 밥 먹이고 화장실만 보낸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아이들이 과연 유치원에 와서 또래관계를 제대로 쌓고, 단체생활의 규칙을 배우며, 세상에 대해 배워갈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교을 논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른다. 자꾸만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차량사고가 일어나거나 현장학습을 가서 사망하는 사건이 빈번치 않게 발생한다. 이런 사건들이 있는 것이 과연 교사가 부주의해서일까? 교사의 눈과 팔은 둘 뿐인데, 에너지가 넘쳐 소리지르고 뛰어다니며 호기심에 가득찬 아이들은 20명이 넘는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유아들 수십 명씩을 성인 한 명이 데리고 있다면 앞으로도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 것이 안전사고다. 과밀한 학급 정원으로 인해 당장 아이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초등, 중등도 학급이 과밀한 것으로 알지만 유치원은 유아들의 연령이 어린 탓에 성인의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유아들 수가 많은 것은 치명적이다. 교사들은 그렇다 치고 작은 공간에서 북적거리며 제대로 교사의 관심을 받지 못할 아이들은? 서로 부딪히며 다칠 수도 있는 안전사고의 가능성은? 아무리 교사가 교육과정 시간인 5시간 동안 총력을 기울여 관심을 준다 해도 아이들이 스물두 명씩 있다면 고르게 관심을 준다고 쳤을 때 인당 겨우 13.6분씩 교사의 손길이 닿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국공립유치원의 비율이 적고, 취원을 희망하는 유아들을 국공립유치원이 모두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그래서 국공립유치원 비율을 늘리고 있지만, 과연 무엇이 더 시급한 문제인지 의문이며 교육부에서는 유치원의 과밀한 학급 정원을 줄일 생각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얼마 전 매입형 단설 유치원을 급속도로 늘리면서 유아 정원이 미달된 유치원들이 있었다. 이에 대해 교육청에서는 도대체 미달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교사들에게 설문조사를 돌렸다. 항목에는 ‘교사의 전문성 부족’, ‘행사 부족’ 등의 항목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를 본 교사들이 분노해 민원을 제기하자 사과와 함께 설문조사가 내려진 사건이 있었다. 단설유치원을 늘려서 취원 희망 유아를 모두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늘어났다면, 그다음은 학급 정원을 줄여주어야 하지 않는가? 일곱 살 유아들을 26명씩 한 학급에 몰아넣고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  문제라고 보이지는 않고 , 원아모집까지 교사의 책임영역으로 돌리고 싶은 모양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정신없는 와중에도 작은 아이들이 재잘대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면  나태주 시인의 시 떠오른다. 그렇다. 아이들은 보면 볼수록 어쩜 이렇게 다를까, 싶을 만큼 다르다. 모두가 다른 색을 띤 꽃처럼 사랑스럽다. 그래서 한 명 한 명 더욱 자세히 보고 싶다. 서로 다른 아이들에게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는 교사의 지도방법은 아이들마다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교사가 조금만 엄하게 말해도 주눅 들어하는 유아에겐 더욱 부드럽게 말을 건네야 하고, 다른 아이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유아를 위해서는 아주 작은 대답에도 크게 격려해주어야 하며, 유난히 한 가지 놀이행동만 반복하거나 다른 아이들보다 발달이 더딘 모습을 보이는 유아들은 더욱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그러나 과밀한 학급에선 이 모든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아이들의 눈을 한 명 한 명 마주칠 때마다 이렇게 예쁘고 소중한 아이들을 더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마음이 든다. 내가 특별히 사명감을 가진 교사라서가 아니다. 내 주변의 교사들은 대부분 그렇게 말한다. 아이들이 5명만 적었어도 더  많이 신경 써줄 텐데, 더 즐거운 활동들 많이 하며 배울 텐데 하고 말이다. 더 이상은 교사들에게 과한 노동뿐 아닌 죄책감까지 떠안게 하지 않았으면, 아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었으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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