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꿈은 비행기 승무원

by 박꿀꿀

몇년전 할머니는 대학생이던 내게 그런 말씀을 하셨다.

비행기에서 곱게 입고 인사하는 그,누구여. 비행기 승무원있지?그거 해봐.
할머니는 다시 태어나면 승무원이 될겨.


그도 그럴 것이 우리 할머니는 여행을 참 좋아하셨다. 코로나 직전까지도 할머니는 유럽여행을 다니셨다. 할머니는 해외에 나가는 것도, 세련되게 꾸미고 남들 앞에 서는 것도 좋아하신다. 그러나 슬프게도 할머니는 1938년생이기 때문에 비행기승무원을 꿈꿔볼 기회는 없었다. 나의 20대는 승무원도 꿈꿔보고, 세계여행도 꿈꿔보는 시간이었지만 할머니의 20대는 5남매의 출산과 양육, 그리고 먹고살기 위한 장사로 점철된 시간이다.

그런 할머니의 꿈이란 전혀 생각도 해보지 못한 낯선 것이었다. 내게 할머니는 그냥 할머니였지 꿈꾸는 존재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할머니도 정말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승무원 지망생이었을지도 모르는 일.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다닌다는 나는 어쩌면 할머니를 닮은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우리 할머니는 어떤 동화를 쓰고 싶으셨을까?

나는 할머니의 첫번째 동화를 펼쳤다.

<구렁이 이야기>

이 이야기는 어느 스님이 해준 이야기입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어머니와 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는 음식을 너무 많이 해서 놔두었다가 버리고, 거지가 와도 그냥 보내고는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엄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그날 밭에 웬 구렁이가 들어와서 마당에 둘둘 몸을 말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일터에 가면 따라가고 돌아오기를 1년.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자는데
꿈에서 구렁이가 하는 말이,
"나는 너의 엄마다. 그런데 살면서 음식을 너무 많이 썩혀서 구렁이가 되었다고 하니,
네가 나를 소원을 풀어다오."

그래서 아들이
"그러면 어떻게 하면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드릴까요? "
하니, 어머니가 하는 말이
" 오늘부터 내가 네 옷소매에 들어갈테니 온세상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시켜다오. "
그러면서 또 구렁이로 변합니다.


그래서 아들이 돈을 있는대로 다가지고
아침에 그 구렁이보고 말합니다.
"어머니 내 옷소매에 들어가시오."
그 말을 들은 구렁이는 옷소매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옷소매가 가벼워서 보니 구렁이가 있는데도 없는 것처럼 가벼웠습니다.
그날부터 아들은 방방곡곡 다니며 거지한테 도와주고, 음식도 알뜰하게 먹었습니다.
그제서야 구렁이 엄마는 깨달았답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고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들은 옷소매의 어머니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풀을 베고 방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어머니가 나와 아들에게 말하길,
"아들아, 일평생 살아가며 가난한 사람한테 베풀고 또한 음식은 버리면 엄마처럼 큰 벌을 받으리라"
하시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유진숙 씀-
구렁이이야기 원본.

할머니의 <구렁이이야기>는 음식을 남기지 말고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라는 교훈을 준다. 음식을 함부로 남긴 어머니가 구렁이가 되어 벌을 받기까지 한다. 그런데 어째 벌이 벌이 아닌 것 같다. 몇년 간 전국 방방곳곳 여행을 다닌 구렁이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것도 아들의 옷소매 속에 들어가 아들이 알뜰하게 밥먹는 것도 지켜 볼수 있고 말이다. 꼭 넌지시 할머니의 바람을 담은 것만 같다. 아들들을 너무 잘가르쳐놨더니 다들 해외로 가버렸다고, 차라리 가르치지 말걸 그랬다며 후회하셨다던 할머니. 실컷 아들과 여행을 다니고는 음식을 남기지 말고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라는 교훈을 남기고 간 구렁이는 어쩐지 행복하게 승천했을 것 같다.


나는 동화를 다 읽고 승무원이 되어 비행을 다니는 할머니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우리 할머니가 승무원을 했다면 어땠을까? 승무원 유니폼을 차려 입고, 스카프도 매고, 곱게 화장을 하시고, 좋아하시는 빨간색 매니큐어도 바르고 또각또각 신나게 출근하셨을 테다. 캐리어를 끌며 눈이 안보일만큼 환하게 웃음을 지으셨겠지. 그리고 비행기에 탔을 때, 예의없는 승객을 만나면….

우리 할머니 성격이라면 분명 참지 못했을 것이다. 괘씸하다며 승객과 삿대질하고 싸우는 승무원 할머니의 모습을 상상해봤다.

* 내가 너만한 자식이 있어!
사람이 말이여 그렇게 살면 안되는거여!
당장 무릎꿇어!

...역시 승무원보단 옷소매 속 구렁이가 행복하지 않을까요, 할머니.

할머니가 그린 새.

*실제로 할머니는 10년전 교통사고 후 할머니에게 반말하는 트럭운전사를 저 대사로 굴복시킨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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