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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컴퍼니 Feb 24. 2017

입술이 하나라고 립 제품도 하나만 살 텐가

지지직 / 로레알 컬러 라쉬 르 엑스트라 오디네어 립 라커

"이거 나만 질렀어?" 그렇습니다. 직장인은 종종 접신을 합니다. 바로 지름신을 영접하는 것인데요. 지름신을 영접하게 되면 언제나 지름 지름 앓습니다. 신병은 신내림을 받으면 낫는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지름병은 불치병입니다. '쇼핑'이라는 미봉책이 있기는 합니다. 지름 지름 앓다가 지르면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됩니다. 하지만 다시 또 다른 무언가를 지르고 싶어 지죠. 병입니다. 정 안 되면 참새가 방앗간 찾듯 다이소라도 찾아들어가 1천 원짜리를 흩날리며 부자가 된 기분으로 나오는 게 직장인의 섭리. 잼 중의 잼은 탕진잼 아닙니까. 그렇게 하루하루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이 쓰는 지름 투병기를 빙자한 쇼핑 제품 리뷰입니다.

사진은 천년 전에 찍어놓고 (잔디 파란 걸 보라!) 이제야 리뷰하는 로레알파리 르 엑스트라 오디네어 립 라커. 길기도 하다. 로레알파리 홍보팀 사람들은 이다 외워서 잘 말하나? 갑자기 궁금하다. 나는 홍보팀도 아니고 일개 소비자일 뿐이니 그냥 이 리뷰에서는 로레알 립 라커로 통칭. 네 개를 갖고 있으니 발색도 네 번 올려야 도움이 될 터인 발색 네 번 올리면 뭐하겠누 입술 부르트것지.

내가 소유한 로레알 립 라커. 대략 이런 컬러다. 가격대는 개당 1만 2000원 선. 파워 웜톤답게 가녀린 쿨톤들에게 어울릴 법한 창백한 핑크 계열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총 8종인데 다 사모으면 드래곤볼처럼 좋긴 하지만 통장이 남아나질 않잖아? 그러므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네 컬러만. 왼쪽부터 로레알파리 르 엑스트라 오디네어 립라커 101 로즈 멜로디, 202 코랄 앵콜, 303 루즈 알레그로, 304 루비 오페라. 색 이름도 어려워. 그래도 에뛰드하우스의 부끄러운 코랄이나 숨막히는 핑크, 분노하는 레드 같이 매대에서 말하면 점원도 나도 창피해지는 네이밍 센스보다야 훨 양반이다.

립 라커 팁은 이렇게 생겼다. 아주 딱딱하지도 무르지도 않아서 바르기 편하다. 50%의 마이크로 오일과 선명한 피그먼트의 배합으로 탄생한 제품이라고. 립스틱의 강렬한 컬러와 립밤 같은 부드러움을 합쳐놓았다는데 당연하게도 액체라 립스틱보다는 부드럽게 발리고 립밤보다는 훨씬 선명하다. 하지만 틴트급으로 오랫동안 유지되는 제품은 아니다. 민효린 립 제품, 민효린 립스틱 같은 연관 검색어로 홍보되고 있지만 '언니들의 슬램덩크' 방송에 나온 '그 제품'은 이 제품이 아니라 벨벳 라커다. 딱 봐도 얘네는 질감부터 안 벨벳이잖아? 정보의 홍수에서 허우적대다가 잘못된 제품을 사지 않길 바라며 적어둔다.

처음에는 입술에 발라볼 생각이 없었기에 손등에 그어보았다. 위에서부터 다시 로레알파리 르 엑스트라 오디네어 립라커 101 로즈 멜로디, 202 코랄 앵콜, 303 루즈 알레그로, 304 루비 오페라. 손등의 잔털과 엉겨 붙은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 찬바람 쌩쌩 부는 계절에 바르면 분명 틀림없이 머리카락을 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끈끈하다. 끄은적끄은적 하다. 색은 예쁘다. 하지만 끄은적 하다. 머리 묶고 시크하게 다니는 커리어 우먼이 바르면 멋질 만한 컬러들이 꽤 다. 머리 푼 커리어 우먼은 훠이 훠이 머리카락 잡숫기 싫으면 뒤로 가기 하세요.

펄감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서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다시 찍어 보았다. 역시 순서대로 로레알파리 르 엑스트라 오디네어 립라커 101 로즈 멜로디, 202 코랄 앵콜, 303 루즈 알레그로, 304 루비 오페라. 펄감이 차르르해서 예쁜데 이런 컬러가 또 잘못 바르면 입술에 갈치 비늘 얹은 것처럼 된다. 그러니 좀 더 생기 있어 보이고 싶다면 101이나 202 컬러의 경우 틴트를 살짝 발라주고 그 위에 얹어주면 지속력과 생기를 다 얻을 수 있다. 303과 304는 단독으로 발라도 무지 진하다. 입술 문신한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지 않다면 양을 최소한으로 발라 적당히 그라데이션해주는 것이 덜 촌스러워 보이는 지름길.

하지만 그래 놓고 풀 립으로 바르는 나의 패기. 왜냐하면 그러데이션을 하면 그나마 좀 더 봐줄 만하지만 색상 파악하는 데에는 애로사항이 꽃피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사진을 찍고 내 입술은 멸망했다. 물티슈로 비빔면 비벼먹듯 입술을 비비며 지웠더니 매우 아팠다. 흑흑. 여기는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304, 303, 202, 101. 참고로 투명한 립밤을 바른 맨 입술에 바른 것이다. 304 루비 오페라는 잘못 바르면 정말 웃었을 때 이에 빨갛게 묻어나는 가장 안 예쁜 컬러다. 하지만 스모키 화장 좀 빡세게 해 주고 단독으로 바르면 아주 도발적인 느낌을 주는 컬러. 문제는 스모키 화장을 하면서 립도 진하게 화장하려면 내공이 상당해야 한다는 점. 하지만 밋밋한 맨 얼굴에 발랐다가는 입술만 보일 확률이 높아 적당한 눈 화장은 필수. 303 루즈 알레그로와 202 코랄 앵콜은 상대적으로 무난하다. 특히 코랄은 웜톤의 구세주가 아닌가. 완전한 코랄은 아니고 레드빛이 도는 코랄이라고 보면 된다. 101은 입술 색이 있는 편이라면 단독으로 발라도 좋겠지만 잘못 바르면 아파 보이거나 갈치 같을 수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제일 좋았던 건 약간 진한 틴트를 바르고 마른 뒤에 위에 덧발라 윤기를 주는 거였다.


이렇게 화장대에 입술에 바르는 것 외에는 별다른 용도가 없어 보이는 작은 페인트가 4개 추가됐다. 하지만 도배할 수 있는 벽(입술)은 하나뿐이지. 죽기 전까지 이 제품들을 다 쓸 수 있을까. 하지만 아둔한 나란 존재는 조만간 또 립스틱이나 틴트를 지를 것임이 자명하다. 세상천지에 같은 코랄 같은 핑크 같은 레드는 없으니까.


 글&사진 조랭이 /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일명 지지직) 운영자이자 보기 좋은 회사가 다니기도 힘들다의 주인공. 이 시대 직장인답게 언제나 지름 지름 앓고 있다. 오래 앓다가 한 순간에 훅 지르고 한동안 써본다. 10분 동안 사진 찍고 20분 동안 글 써서 3분 안에 소화되는 리뷰를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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