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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컴퍼니 Feb 22. 2017

손님 이건 덕후 같은 님을 위한 만화 그리기용 펜이세요

지지직 / 사쿠라 피그마 만화 그리기용 오리지널 키트(망가 세트)

"이거 나만 질렀어?" 그렇습니다. 직장인은 종종 접신을 합니다. 바로 지름신을 영접하는 것인데요. 지름신을 영접하게 되면 언제나 지름 지름 앓습니다. 신병은 신내림을 받으면 낫는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지름병은 불치병입니다. '쇼핑'이라는 미봉책이 있기는 합니다. 지름 지름 앓다가 지르면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됩니다. 하지만 다시 또 다른 무언가를 지르고 싶어 지죠. 병입니다. 정 안 되면 참새가 방앗간 찾듯 다이소라도 찾아들어가 1천 원짜리를 흩날리며 부자가 된 기분으로 나오는 게 직장인의 섭리. 잼 중의 잼은 탕진잼 아닙니까. 그렇게 하루하루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이 쓰는 지름 투병기를 빙자한 쇼핑 제품 리뷰입니다.




누군가 내게 지금 막 떠오르는 지름의 3대 개미지옥을 꼽으라면 알파문구와 아트박스, 핫트랙스를 꼽을 것이다. 일단 들어가면 뭔가 집어 들게 되기 때문이다. 다이소는 프로 지름러들의 예루살렘 같은 곳이니 패스하자. 서두가 설득력이 없었지만 아무튼 오늘은 알파문구에서 지른 사쿠라 피그마 만화 그리기용 오리지널 키트 리뷰. 석봉이 어머니가래떡을 썰려면 도마가 필요한 것처럼 왼쪽의 스케치 노트는 그냥 그런 용도다. 손바닥에 그려서 리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별도의 리뷰가 필요 없는 오늘의 도화지. 좋지는 않다. 만약 다른 스케치 노트가 있었다면 이 제품을 사지는 않았을 것 같다. 종이가 너무 스케치북스러운데 심지어 얇다.

그나마 이 노트의 장점은 윗부분에 절취선이 있어서 잘라서 쓸 수 있다는 것 정도인데, 그 마저도 깔끔하게 뜯어지는 게 아니라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집에 신발과 립 제품만큼이나 많이 있는 펜이지만 또 샀다. '만화 그리기용' '오리지널 키트' 하니까 조금 있어 보이길래.

사쿠라 피그마 펜들을 활용하면 윤곽 그리기, 굵은 선 그리기, 검은색 칠하기, 세밀하게 그리기, 강조하기가 된다지만 사실 각각 굵기 다른 펜을 사면 해결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렇게 합리적으로 알뜰살뜰 똑소리 나게만 소비한다면 인생을 충동으로 풀무질하고 담금질하는 프로 지름러의 자세가 아니지. 그냥 특이해 보이고 예쁘다 싶으면 특이하고 예쁜 쓰레기여도 지르는 것이다. 이 제품만 있으면 사진 속 그림 정도로 퀄리티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는 걸까? 두근두근? 도키도키? 콩닥콩닥? 심쿵심쿵? 손님 이건 물건 팔기 위해 프로에게 의뢰해서 그린 샘플이세요. 

언제나 새 펜은 설렌다. 왼쪽부터 사쿠라 화이트 겔리롤, 피그마 브러시 펜 FB, 피그마 마이크론 08, 05, 01, 005.

선을 그었을 때의 느낌은 대략 이렇다. 늘 생각하지만 겔리롤 참 안 나오네. 예전에 몇 번 다른 색을 써본 적이 있어서 예상은 했지만 오랜만에 사느라 조금은 발전했을 줄 알았다. 내 졸업앨범 사진처럼 여전하구나.

일단 피그마 마이크론 05로 조랭이 캐릭터를 그려 보았다.

그리고 더 굵은 피그마 마이크론 08로 테두리 강조.

피그마 브러시 펜 FB로 배경색을 칠했다. 그런데 너 이런 식으로 제대로 안 나오고 우리 팀 모 선배 기획안처럼 설렁설렁 나올래? 원래는 빽빽하게 채우고 싶었는데 너무 안 나와서 저 모양이 되어버렸다.

그림상 별 필요는 없지만 굵기 비교를 위해 피그마 마이크론 01과 005로 디테일한 부분을 그려줬다. 그려놓고 보니 역시 안 그리는 게 나았어. 하고 나니 안 하는 게 나은 점 또한 우리 팀 같구나.

망할 사쿠라 겔리롤. 어떻게 해도 수정펜(화이트)처럼 위에 하얗고 깨끗하게 그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저기 밤하늘에 회색으로 빛나는 별이 희미하게 보이는가. 그게 화이트 겔리롤로 그린 것이다. 어릴 때 검은색 도화지에 화이트 겔리롤로 편지를 쓰다가 점점 글씨가 흰색에서 회색이 되어 사라지며 본의 아니게 비밀 편지가 되어버리는 아련한 경험을 했었는데 그때의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필기감다. 경험상 이런 종류의 하얀 펜은 사쿠라 겔리롤뿐 아니라 어디 제품도 진한 색 위에 제대로 나오는 법이 다. 프로 펜 지름 낭비러의 말이니 믿어도 좋다. 점 표현은 가지고 있는 수정펜을 잘 조절해 쓰고, 선을 그어야 할 때는 포스터컬러 흰색과 세필붓을 활용하는  낫다. 여하튼 이렇게 펜 리뷰는 끝. 개인적으로는 이 세트를 사기보다는 필요에 따라 마이크론 005~08 중 필요한 굵기의 펜을 사고, 브러시 펜 FB은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대체하는 게 훨씬 경제적이고 속도 덜 터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화이트 겔리롤은 제발 사지 마세요 두 번 사지 마세요 백의민족이라고 해서 꼭 흰색 써야 하는 것 아닙니다. 이렇게 또 책상 위 입주민이 늘어나 버렸다.




글&사진 조랭이 /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일명 지지직) 운영자이자 보기 좋은 회사가 다니기도 힘들다의 주인공. 이 시대 직장인답게 언제나 지름 지름 앓고 있다. 오래 앓다가 한 순간에 훅 지르고 한동안 써본다. 10분 동안 사진 찍고 20분 동안 글 써서 3분 안에 소화되는 리뷰를 지향하고 있다. kooocompan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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