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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컴퍼니 Feb 09. 2017

겨울 다 지나서 올리는 올 겨울 내 구세주 이야기

지지직 / 보네이도 히터

"이거 나만 질렀어?" 그렇습니다. 직장인은 종종 접신을 합니다. 바로 지름신을 영접하는 것인데요. 지름신을 영접하게 되면 언제나 지름 지름 앓습니다. 신병은 신내림을 받으면 낫는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지름병은 불치병입니다. '쇼핑'이라는 미봉책이 있기는 합니다. 지름 지름 앓다가 지르면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됩니다. 하지만 다시 또 다른 무언가를 지르고 싶어 지죠. 병입니다. 정 안 되면 참새가 방앗간 찾듯 다이소라도 찾아들어가 1천 원짜리를 흩날리며 부자가 된 기분으로 나오는 게 직장인의 섭리. 잼 중의 잼은 탕진잼 아닙니까. 그렇게 하루하루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이 쓰는 지름 투병기를 빙자한 쇼핑 제품 리뷰입니다.


올 겨울 나는 일부 기업들이 왜 자기네들 물건을 잘 팔고자 정치권이나 이곳저곳에 로비를 하는지 참으로 알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왜냐하면 너무 추워서 하늘에다가 누가 난방기구 잘 팔리게 요번 겨울은 좀 춥게 가봅시다 로비라도 했나 알아보고 싶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여름에도 조금만 냉방 돌아간다 싶으면 으슬으슬 대는, 방아깨비처럼 부실해 보이는 나 같은 타입은 이런 날씨에 뭐가 됐든 그게 몸을 녹여줄 수 있다면야 주저 않고 지갑을 여는 것이다. 당시 기억이 맞다면 이 사진을 찍은 게 밤 9시~11시 사이. 즉 퇴근하고 집에 와서 싸늘한 방에 앉아 있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충동적으로 뭔가를 사러 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뚜뚜뚜뚜뚜뚜뚜뚜... 탕진잼 타깃을 스캔하고 있습니다.

빠르고 쾌적한 건강 난방! 그렇게 겨울 다 지나가는데 쓰는 보네이도 히터 리뷰. 평소 5만 원 이상의 '물건'을 오프라인에서 사는 일이 거의 없는 나지만 이날만큼은 웃풍이 심한 방에서 동사하고 싶지 않다는 강렬한 열망 때문에 모델명을 검색해서 온라인 가격과 5000원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곧바로 질렀다. 1만 원 넘게 차이가 났으면 한 번 더 고민했을지 모르겠지만 5000원이면 뭐, 퀵 배송받은 비용으로 치자고 파워 합리화에 들어갔다. 합리화 종료 후 상자를 들고 낑낑대며 계산대로 향했다. 손가락은 그다음 날 빨면 된다는 심정으로.

이렇게 거금을 들여 샀으니 이것은 필히 리뷰를 해야 한다! 이 리뷰는 약 15만 원짜리 리뷰다! 방이 좁기 때문에 어디서 찍어도 예쁠 수가 없어서 매장에서 사기 전에 사진을 찍었다. 카드 형태 거울을 놓고 사이즈를 비교했다. 별로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 이런 사진까지 찍어뒀다는 건 반드시 리뷰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발로였으나, 정신없이 살다 보니 겨울이 다 지나고서야 글을 쓴다. 지금이라도 쓰지 않으면 뭔가 아까워! 바꿔 생각하면 사자 마자 어맛! 잇님들 이 물건 아시나요? 하며 쓰는 게 아니라 그만큼 잘 쓰고 나서 쓰는 글이니 구매를 고려하고 있다면 조금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보네이도야 워낙 유명하지만 히터까지 내놓는 줄은 몰랐다. 일반 보네이도 제품의 명성을 익히 듣고도 안 사고 버틴 나인데 히터를 사다니. 심지어 당시에는 리뷰도 거의 없던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던 물건을. 이 날 진열대에 놓여 있던 제품들을 살펴보며 제품명 + 비추, 제품명 + 단점 등으로 검색하다 보니 살 수 있는 제품이 없어서 그나마 단점이 제일 검색이 덜 되던 (당연하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제품을 골랐고 그게 이 제품이었다.

원래 설명서든 PPT든 화살표를 활용해 어지럽게 설명하면 이해는 잘 되지 않지만 있어 보인다. 마치 극장에서 영화 상영 전 경쾌한 음악과 함께 비상 탈출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라고 안내하면서 모든 문으로 나가는 화살표를 동시에 보여줘서 결국 어디로 나가야 할지 모르게 만드는 것처럼. 어찌 됐든 한 줄 요약하자면 전원을 올려봐 넌 따뜻해지고 온풍을 틀어봐 넌 행복해지고.

뜯자마자 당황했다. 에너지 비용. 18만 2000원. 매월. 음... 어떡하지. 환불할까? 가정 이외 사용 시 5만 4000원. 그런데 난 가정에서 쓸 거잖아? 환불할까? 아니야 저건 그래도 최소한 1시간 이상 매일 틀었을 때의 이야기겠지! 나는 그 정도로는 안 틀 거니까 30분 정도 튼다고 치고 9만 원 정도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누진세 계산하기 귀찮으니까! 그럼 음 음 일단 9만 원이면 30일로 나누면 하루에 3000원 꼴이니까 하루에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숏 사이즈보다 600원 저렴한 가격으로 따뜻하게 공기를 데우고 잠들 수 있는 거니까... 여러분 이렇게 합리화가 무섭습니다.

늘 그렇듯 사용 설명서를 정독.

나루토 질풍전이나 블리치 같은 애니메이션에서 나올 법한 고난도 기술. 몰아쳐라 (뜨거운) 회오리바람! 

앞뒤 막지 말고 드라이기처럼 뭐 말리는 용도로 쓰지 말고 평평하지 않은 데에서 쓰지 말고 너무 높은 곳에서 쓰지 말고... 여기서 하지 말라는 것들을 제하다 보니 결국 놓을 수 있는 자리가 침대 바로 옆 스툴 위뿐이었다. 건조한 히터 바람을 다이렉트로 마음껏 얼굴에 불어넣을 수 있게 된 것. 해피!

최소 실내 온도 22도 이하에서 작동한다. 그보다 온도가 높은 방에서는 켜지지 않는다. 고장이 아니니 이럴 때 설명서를 숙지해두면 당황하지 않고 난방 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 확실히 전기를 엄청 먹는다. 설명서를 보면 알 수 있듯 확장형 전선이나 멀티탭을 쓰지 말고 벽면에 있는 콘센트에 바로 꽂으라고 되어 있는데, 방 구조상 그렇게 바로 꽂으면 히터와 내가 이산가족이 되어야 했다. 결국 안 켜질까 봐 불안해하며 멀티탭에 꽂았는데 다행히 작동이 됐다. 그러다 한 번은 전원을 켠 채로 멀티탭에 코드를 꽂았다가 대 참사 발생. 전기 과부하 찬스가 온 것인지 방 전체 전기가 나가 버려 신나는 외박 체험을 하기도 했다. 이 전기 먹는 하마 같은 놈.

든든하게 생겼다. 세상 모든 회오리는 다 몰아치게 할 것만 같은 남친돌 아니고 남친히터 비주얼.

왼쪽부터 바람세기 조절, 에너지 조절, 전원. 전기세가 겁나 온도와 에너지 조절 레버는 줄곧 1단(1000W)에 놓고 바람 세기는 3~5에 두고 썼다. 트는 즉시 자동차 히터처럼 뜨뜻하고 답답하고 건조한 바람이 방안을 꽉 채워준다. 그 덕에 오래 틀 필요도 없었고 오래 틀 정도로 부자이거나 대범하지가 못해서 하루에 20~30분 정도 틀고 방이 따뜻해지면 전원을 끈 후 그대로 잠을 청하곤 했다. 매일 썼는데 가장 중요한 전기세가 평소처럼 나왔다. 다음 달에 요금 폭탄을 맞으려나 싶어 약간 설레었으나 제품을 사서 쓴 이후 전기 요금 고지서를 두 차례 받는 동안 모두 평달과 같은 요금이 나왔다. 다만 나는 집에서 온종일 생활하지 않고, 퇴근하고 반짝 전기를 쓰며 평소 쓰는 전기는 형광등과 노트북과 휴대전화 충전기와 냉장고와 세탁기 정도임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덮어놓고 전기 쓰면 거지 꼴을 못 면한다. 원하는 온도로 맞춰두면 알아서 작동을 멈추는 기능도 꽤 쓸만했다. 결론적으로 올 겨울 너무 추워서 충동구매한 월동 제품 중 난방 텐트와 함께 베스트로 꼽을 만한 물건이다. 단점은 방이 폭풍 건조해진다. 사하라 사막이 부럽지 않다. 이거 틀 때는 수건 한두 장 정도는 적셔서 방 안에 걸어두자. 그리고 이제 곧 꽃 피는 봄이 오면 너는 여름 가을까지 어디엔가 처박혀있겠지... 일반 보네이도가 아니라 이열치열 수행을 할 게 아니라면 선풍기로도 쓸 수 없으니... 그래도 아직은 아니야. 너무 걱정 말렴... 입춘 지났는데도 춥더라... 겨울은 바버야... 추위밖에 모르는 바버...




글&사진 조랭이 /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일명 지지직) 운영자이자 보기 좋은 회사가 다니기도 힘들다의 주인공. 이 시대 직장인답게 언제나 지름 지름 앓고 있다. 오래 앓다가 한 순간에 훅 지르고 한동안 써본다. 10분 동안 사진 찍고 20분 동안 글 써서 3분 안에 소화되는 리뷰를 지향하고 있다. kooocompan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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