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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장군 Mar 12. 2021

미나리와 파친코

외전 - 감성 리뷰

땅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는 것은 식물뿐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뿌리 박혀 있던 것을 뽑아내어 다른 땅에 심었을 때, 잘 자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주저합니다.


어쩌면, 현재 땅에서 잘 자랄 수 없다는 게 확실해지지 않는 이상, 굳이 다른 곳으로 뿌리를 뽑아 옮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파친코와 미나리는 강요된, 또는 당위에 의해 한국을 떠나게 된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파친코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딘지 쓸쓸하고 어둡게 살아갑니다. 부자여도, 좋은 대학을 들어가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둠이 자신을 집어삼키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는 것뿐입니다. 그 어둠에 결국 먹혀버린 큰 아들의 결말은, 잊지 못할 충격이었습니다.


자신의 뿌리를 알지 못하거나, 그에 대해 떳떳하게 느끼고 이야기할 수 없다면, 그 고뇌를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미나리에서 보여주는 갈등은 알 수 없는 환경,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부부의 꿈이 서로 상충할 때,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입니다. 병아리 감별사라는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그것이 돈벌이가 되기에 몇 년을 줄곧 그 일만 하던 사람들이 많았다니요.

거기서 끝나고 싶지 않았기에 트레일러 집과 주변 땅을 사고, 너무도 부족한 물과 씨름하며 얻어낸 야채들, 미국 아칸소 땅에서 키워낸 한국 종자들.


상품 가치가 있는 배추, 무보다, 그저 널려있을 뿐인 미나리가 우리에게 더 힘을 준다는 역설도 흥미진진했습니다. 한국에서 온 할머니는 영어도 못하고 손자 손녀를 살뜰히 돌보는 데도 별로 관심이 없지만, 화투를 가르치고 땡땡이를 권장하는 깡이 있었고, 그게 할머니가 죽어가던 가족들을 살려내는 약초인 미나리 그 자체였다는 의미로 보였습니다.

정해진 답도 없고 상황은 항상 바뀌지만, 그래도 타지에서는 더 불안하고 더 마음이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감정은 즐겁던 괴롭던 더 증폭되고 이 곳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해, 유한과 무한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파친코와 미나리는, 나무껍질 같은 갈색 작품들이었습니다. 햇살같이 환하거나 파스텔톤의 사랑스러운 로망이 아니라 굴곡진 진실한 삶들. 그 시간들을 함께 읽고 보며, 끝내고 보니 -숲에 있었던 것처럼- 위안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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