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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장군 Nov 04. 2020

과도한 자원과 부족한 자원

뉴질랜드에서 생각을 보내요

없이 살아요

뉴질랜드에는 옷, 장난감, 가구, 소품.. 의식주 중 의와 주 또는 그 밖의 모든 물자가 부족하다. 찰랑거릴 정도의 선택지만 존재하고, 대부분 비싸다. 싼 건 왜 싼 지 확실히 알 수 있다. '싸지만 좋은' 물건은 원래 없거나, 드물게 있었더라도 늘 품절이다.

오클랜드나 웰링턴, 크라이스트처치 같은 예외적인 도시 환경에서도, 서울이나 한국 대도시와 비교하면 저럴 지니, 뉴질랜드 국토의 대부분인 외곽/지방으로 가면 당연히 '없이 산다'. 수 백명에서 수 천명 수준의 작은 마을이 많고, 그곳에는 읍내 또는 그보다 못한 편의시설이 존재한다. Four Square라는 superette 수준의 슈퍼마켓, 의원, 몇 개의 카페/레스토랑과 기념품샵, 조금 떨어진 곳에 작은 성당이나 교회, 그에 딸린 묘지 정도가 있다. '쿠팡'도 '아마존'도 없고 뉴질랜드 또는 호주 버전 온라인 쇼핑 중소 사이트가 약간 있긴 한데 과연 배달해줄까 싶은 생각이 든다. 10-20km에 집 한 채씩 있는 경우도 아주 흔하니까.

남섬의 1/3에서 '데이터 없음'이 뜬다고 한다. 이 사실을 남섬여행을 하면서, 전날 주유소에서 기름넣는 것을 깜빡하여 60km를 기름 없이 덜덜 떨며 가면서 알게 되었다. 아니 한국에선 산 정상에서도 빵빵하게 데이터가 터졌는데? 급한 산모는 대체 어찌 하는 걸까?(알고보니 여긴 임신 출산에 지역 내 '산파' 배정이 기본이다) 등등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뭘 어찌 해야 하는지 찾아보고 싶어도 구글이 안터지니 머리도 먹통이 되는 경험을 했다...

내 삶에 맞춰진 노동시간, 스스로 해결하는 많은 삶의 부분들

내가 동경하던 '아무도 없는 깨끗한 자연'이란, 무슨 일이 닥쳐도 신속하게 편리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적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래서 키위들은 혼자 왠만한 건 다 처리하는 게 몸에 익어있다. 어느 정도 불편한 버전을, 스스로의 힘으로 적당히 극복해낸다.

인건비가 비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최저시급 $17.7(약 14,200원)인데, 단순히 최저시급 비교보다도, 주택생활에 필요한 수많은 설치,수리,유지보수, 클리닝, 가드닝, 베이비시팅 등등 모든 부분에서, 사람을 부르는 순간 우리나라 2-3배 정도의 비용은 우습게 든다.

대신 사람들의 시간은 많다. 아니 자기 삶에 필요한 형태로 노동을 맞춘다. 파트타임 개념이 일반적이라는 게 놀라웠다. 경제 체계가 60-70%가 중소기업 특히 소기업에 의존하고 있고, 2-3개 정도의 비즈니스를 하는 개인사업자가 많고, 작은 cashflow를 일으켜도 꾸준히 유지에 의의를 두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 전에 언급한 지역 페이스북 엄마 모임에도 맞춤형 케익도 주문 받아 만들고, 방학 미술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에센셜 오일도 만드는 엄마들이 홍보글을 가끔 올리는데, 한 사람이 두 세개 일을 하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내가 친해진 동네 키위 엄마는 변호사인데, 하루 2일은 자기 회사 변호사일을 하고, 2일은 큰 법인에 고용되어 변호사일을 하고, 하루는 volunteer일을 한다. 이런 사람들이 아주 많다. 주 20시간만 일하는 선택지가 꼭 부모의 육아나 가족 돌봄요구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일반적인 옵션이다. '니가 일을 해주기만 한다면 형태는 문제삼지 않는다'란 느낌. 어디까지나 국토에 비해 일할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가능할 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키위들은 '소박하고 독립적인 자기 삶'을 영위하며 산다.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도 한 것 같다. 대단히 화려하고 세련되게 살 (수도 없고)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만, 자기에게 필요한 것들은 자기 손으로 왠만하면 직접 해결하고 산다. 실제로 나라는 돈이 많지만 뉴질랜드 사람들은 연평균 소득 $45,000 NZD 수준으로 우리나라 평균 연봉 3,634만원보다 비슷하거나 살짝 적다. 그런데 이런 숫자보다도, 내 경험으로는, 분명 소득이 넉넉하다고 느끼지도 않으나, 크게 아쉬워하지도 않는 느낌. 저런 많은 개인사업자/소기업에 (상대적으로) 비싼 인건비가 흘러가는 거고, 그래서 그렇게 저렇게 운영해 나가며 여러 cashflow에서 들어오는 작은 소득들로 유연하게 생활을 만들어나간다.

한국의 그 좋은 물건들, 그 멋진 공간들

즉, 뉴질랜드에는 인간과 물자가 부족하고, 한국에는 깨끗한 자연과 여유가 부족하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더라도, 막상 살아보니 이 한 문장이 만들어내는 사회와 개인의 선택의 차이는 크다.

한국에 살면 정말 소비의 선택지가 많다. 무엇을 찾든, 잘 찾으면 좋지만 싼 물건도 많다. 좋은 물건들은 생활을, 우리를 더 편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데 혁혁하게 기여한다. 사람들은 더 좋은 물건을 더 많이 소비하고 싶어지고, 그렇다면 돈이 더 많이 필요하다.

(+멋진 공간도 마찬가지. 현재 세계에서 서울만큼 fancy하고 독특한 공간들이 향연을 벌이는 곳도 드물 것 같다. 수없이 많은 멋진 카페와 식당,바..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https://images.app.goo.gl/KFXR3UyedshtikvE9

사람들은 많기에 노동 시장의 경쟁은 줄지 않고, 사람들은 위의 이유로 소비 중심적이 된다. 우리에겐 서울 또는 대도시의 삶이 보편적이고, 수많은 경쟁력 있는 특히 대기업들이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에 사는 한 우리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더 잘 사고, 더 멋진 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 곳에서 (서울 기준으로) 불편한 상황을 너무 많이 겪다보니, 한국이 가진 강점이 정말 크게 와닿을 때가 많다. 편리하고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건 어느 모로 보나 대단한 점이고, '경쟁력'이라는 말에 잘 어울리는, 눈에 보이는 발전이다.

단지 그 소비와 편리함의 추구에 '끝이 있을까?'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든다. 단순히 풍부한 선택지로 나의 생활을 만족스럽게 채울 수 있는 것이 다가 아니라, 그 이면에 내가 이 노동력 풍부한 사회에서 경쟁해서 나의 소득을 올려야 겨우 남들만큼(?) 가지고 살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좋은 물자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닌데, 아주 많은 돈(&부동산)을 가진 부자여야 이런 노동에서 해방되어 갖고 싶은 거 다 갖고 내 모든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지배적인 사고가 있다.

과연 그럴까? 내가 가진 행복의 분야가 너무 물질에 치우쳐있고,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영역이 너무 제한되는 것이 내가 진정 경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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