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 대단한 결심은 아니었지만)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뒤 약 4주간 이른바 언론고시라 불리는 논술시험을 준비했다. 그 기간 동안 다섯 곳의 언론사에 지원했으며, 네 곳에서 논술시험을 통과해 세 곳에서 최종 합격, 나머지 한 곳은 중도에 포기했다.
물론 조중동 등 메이저 언론사는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나아가 내가 다니고자 하는 회사에 대해 그리 큰 애착은 없었다. 내가 대충 준비했으니 남들도 쉽게 붙겠지 혹은 메이저 언론사가 아니기에 금방 입사했을 뿐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너무 오만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도 수백명의 지원자가 있었고, 같이 입사한 동기는 기자가 되기 위해 중학교때부터 꿈을 꾸며 수년간을 준비했다고 하였다. 나도 모르게 나는 그들의 노력과 절박함을 짖밟은 셈이다.
입사 당일, 부사장과의 면담에서 부사장께선 “좋은 기자란 무엇인지에 대해 답해보라“고 질문하셨다. 좋은 기자? 애초에 기자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않은 내게 ’좋은 기자‘라는, 그 의미도 불분명한 단어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었다.
좋은 기자, 좋은 기자, 좋은 기자… 기레기가 일상 용어가 되고, 언론계의 위신이 땅에 추락한 상황에 좋은 기자가 애당초 가능한가? 그냥 어용언론인이 늘 하는 행태처럼 밥 잘 얻어먹고, 사람 만나며, 싸돌아다니는 게 오늘날의 기자 아닌가.
언론에 대한 동경이 없는 나로서는 대중들이 기자를 기레기라고 비하하는 것에 충분히 이해한다. 과거 펜의 힘을 빌려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호위호식하다가 이젠 AI, 유튜브 등 신기술과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몰락하고 있지 않은가.
애초에 기자라는 직업이 지식인 혹은 권력의 감시자로 평가됐던 것도 허상이다. 시대가 기자를 그렇게 만들었을 뿐, 정언유착은 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기자들은 존재하지 않는 과거 유산을 되찾으려고 탁자 위에서만 공론할 뿐이다. 실상은 술 잘 마시고 출입처 직원들과 잘 부대끼다가 소위 글빨만 좀 세우면 되는 게 기자의 전부임에도.
좋은 기자라는 질문에 대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없고, 거창해야 할 이유조차 없다. 그저 묵묵히, 벌어진 사건에 대해 기록만 잘 하면 되는 게 기자다.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한자 뜻 그대로, 기자는 기자(記者)다.
#2
그러나 이런 냉소적 비판도 그저 ‘쿨한 찐따’가 떠드는 공허한 항변일 뿐이라는 걸 잘 안다. 기자를 포함해 모든 직업인은 저마다의 소명의식을 품고 있지 않은가.
“노동은 신성하다”는 정치적 레토릭을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떨어지는 와중에도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는 집요함, 바로 그것이 인간의 본성 아닌가. 자신의 노동이 헛되지 않도록, 내 삶이 의미를 지니도록 몸부림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인간은 의미를 희구(希求)하는 존재다. 그렇다면 기자는 어떤 의미를 희구해야하는가.
정보 사회. 오늘날 정보는 인터넷과 유튜브, SNS 때문에 매우 빠르게 생성된다. 정보사회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고 '좋아요'를 누른다. 스토리는 24시간 내에 소멸되며, 다음 스토리로 대체된다. 생성된 정보는 스와이프 한 번으로 가볍게 흘려보낸다.
사람들은 더 이상 정보를 면밀히 들여다보지 않는다. 정보는 그저 잠깐의 요깃거리에 불과하다. 화려한 시각효과로 공허함을 치장하고, 숏폼 콘텐츠 형식으로 빠르게 주입되지만 끝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허무만 짙게 자리잡을 뿐이다.
내면의 공허는 정보 중독으로 대체된다. 사람들은 끝없이 새로운 정보를 갈구하며, '불완전한 나'를 숨길 수 있는 감성 사진과 셀카로 스스로를 꾸민다. 하지만 이는 풍성한 나를 창조하는 행위가 아닌, 잠시 덮어두는 행위에 불과하다.
오늘날 정보는 풍부하지만, 서사는 사라졌다. 잃어버린 서사에서 독자들은 글을 읽고도 본인의 진정한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지 못한다. 이는 단순히 독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전달자의 책임도 크다. 기자들은 단독 경쟁과 정보 사회의 구조에서 그저 단편적인 정보만을 제공하는 데 그친다. 심층 기사나 현장 취재와 같은 창조 행위는 언론사 비즈니스 현실과 조회수 논리에 가로 막혀 설 자리를 잃었다.
#3
정보의 과잉과 서사의 부재 속에서 해법은 무엇일까. 좋은 기자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가. 기자란 단순한 정보전달자가 아니다. 정보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는 고고학자가 돼야 한다. 그들이 만들어 낸 정보는 궁극적으로 서사로 변해야 한다. 비록 '1일 1발제'와 '비즈니스 현실'의 벽 앞에서도 기자는 스토리텔러로서의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정보 과잉 사회에서 의미의 족적을 남기도록 분투해야 한다.
또한 기자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독자들을 이끄는 도슨트가 돼야 한다. 기사에서 제공하는 정보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기사의 중요도는 어떠한지를 독자들이 이해하도록 친절하게 설명하는 직업인이 될 필요가 있다.
기자는 가르치는 사람이 돼선 안된다. 독자들의 지식 수준이 높아진 지금, 시대에 뒤떨어진 훈계조의 글쓰기는 독자에게 반감만 살 뿐이다. 대화를 해야 한다. 새로운 관점과 질문거리를 던지면서 독자가 능동적으로 기자가 쓴 이야기에 참가할 수 있도록, 정보의 의미를 확장하도록 협동해야 한다.
기자에게 필요한 것은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이다. 이는 충실함이 바탕돼야 한다. 단순한 사건을 정보로 나열하는 게 아닌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고고학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이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도슨트의 역할에 성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험난한 여정이겠지만, 할 수 있는 선까지 충실하게 최선을 다해야겠다.